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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자연(無爲自然)에 나타난 선(禪)
내 작업을 중심으로
김영미│ 화가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모두 아름답다고 알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추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보는 각도에 따라 아름답거나 단순히 좋은 것으로만 생각하면 반드시 좋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이 뜻은 有와 無는 서로 만물을 생성하듯 보완하고 좋지 않은 것과 좋은 것조차 서로 조화롭게 완성해야 하며 그것은 어느 것 하나 불변이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자연이란 <있는 그대로>란 뜻이겠지만 노자는 ‘있는 그대로’ 라는 것을 천지조화의 구체적인 영위<營爲>로 본다. 이 말은 인간이 작위적인 기교를 부린다거나 본인을 의식하여 부당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존재하며 어떤 일도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면 초록 잎 새를 트게 하고, 여름이면 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하여 결국, 가을에는 결실을 보게 한다. 그런 다음 비로소 겨울이면 본래의 제 모습, 그러니까 나목으로 발가벗게 된다.
노자는 이런 만물의 상생화육<相生和育>이란, 천지간의 조화와 작용을 파악하고 있으며 그 작용을 무위자연이라 일컬었다. 그러므로 노자의 무위자연 철학은 인위적이거나 인지적으로 문명-문화에 오염됨에 접근하지 않는 근본적인 자연의 모습을 일컫는다고 할까?
이것은 우리 인간이 본디 가진 원초적인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고 본래 자연스런 모습으로 돌아가 자연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 문명의 변화 속에서 천지간에 지닌 본연의 모든 조화로움을 훼손 하면서까지 일상의 영위내지 자연의 내면성을 버리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위와 인지에 왜곡되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걸리지 않는 그런 인간의 참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결국은 인간 내면이 지닌 무위의 성정을 말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자연 본연의 자세이자 생활태도거나 있는 그대로 보이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禪)에 의거해 “덕이 있는 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무 생각이 없는 듯 행동하면서 사려하지 않고 옳다거나, 좋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따위의 마음가짐에 그 중심을 두지 않는다 ”. 온 세상의 이익을 같이하는 것이 자기의 기쁨이면서 다 같이 풍족함을 본인의 평안으로 삼는다. 이런 사상을 근거로 무위자연에 나타난 선사상을 기반으로 내 작품에 대입시키는 작업들이 최근 몇 년간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느 것이든 동일시하기도 하겠으나 그런 속박이나 구속을 매개체로 하여 선을 다루듯 다루지 않는 것이 내 작업의 직접적인 표현방식이다. 어떤 그림이든 화면에 펼쳐진 작품에는 인물이나 동물이 주가 되고 온 세상 널리 산재한 모든 대상을 한 가족이나 커뮤니티로 묶어 어느 대상에 치우침 없게 서로 상생하듯 화합해 가는 의미로 동물, 인물들을 자연 안에 다 풀어 놓듯 그린다.
그래서 그림의 화면에 이 모두를 가두지 않고 서로 상생하며 배려하는 차원의 그들이 표현되는 것이다.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듯 하나같이 명상의 세계를 갖게 하는 것이다. 본디 자연이란 것이 서로 다른 그 무엇이 아니듯, 화면 위에 함께 상생의 조화를 보여주고 그리하여 모든 만물이 자연 안에 서로 조화로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아무것에도 얽매이거나 속박당하지 않는 작품세계를 펼쳐 보이려는 것이다. 이것은 종래 단지 충실하게 사물의 표정을 담으려 매달렸던 그 무엇과는 상이하게 다르다.
전에 시도한 작업들은 가능한 대상에 충실하면서 그 대상에 가감 없이 파헤치는 작업이 주종을 이루었다. 가능한 사실적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에서 보여 지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려 한 반면에 근 3~4년에 걸친 무위자연에 나타난 선사상을 대입한 그림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제시한 작가의 의도를 엿보게 하는 작업들을 해 오고 있다. 이는 요 몇 년 후까지도 꾸준히 집고 넘어가야 할 과제이며 연구해야 할 대 명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