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1.
“화가 임직순은 아카데믹한 분위기와 개인전을 통해서 자기의 작품을 발표하고 예술가로서 성장해 왔다”(1) 는 이경성의 지적은 임직순의 작가로서의 성장 배경을 요약해주고 있다. 아카데믹한 분위기란 발표의 주 무대가 선전과 국전이란 아카데미즘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시사해 주며, 개인전을 통해서 활동해왔다는 것은 그룹 활동보다는 개인 발표에 치중해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임직순의 이와 같은 작가적 행로는 안정된 세계와 언제나 자신의 내부로 집중해가는 타입의 예술가임을 엿보게 한다. 그는 40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초 입선함으로써 등단하고 있다. 일본미술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았던 곳은 제국미술학교(현재의 무사시노 미술대학)이고 이어 태평양미술학교 순이었으며 일본미술학교는 극소수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적을 두고 있었다. 임직순의 선배로는 곽인식, 승동표가 있고 동기로는 임규삼이 있었다. 이 학교엔 일본 야수파의 거장인 하야시 다께시(林武)가 교수로 있었다. 임직순의 대담한 붓질과 정감이 앞지르는 표현의 특징 같은 데서 하야시의 영향과 감화를 읽어낼 수 있다.
해방이 되면서 그가 적을 둔 곳은 대부분의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중고등학교의 미술교사 자리였다. 인천여고를 위시해서 서울여상, 숙명여중고를 전전했다. 그가 많이 다룬 소재 가운데 소녀상이 많다는 것도 여 중고등학교에서의 재직과 관련이 있다. 학생들을 쉽게 모델로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61년에는 조선대학 미술과에 초빙되어 여기서 14년간을 재직한 것을 통틀어보면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 것이 된다. 이 점은 그를 단순한 한 사람의 작가로서보다 미술교육자로서의 또 다른 위상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가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지향했던 것도 어쩌면 이 같은 교육자로서의 그의 위치에 말미암은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미술전에서의 두 번에 걸친 입선과 이어지는 국전에의 지속적인 참여도 안전과 조화에 모토를 둔 아카데미즘이 생리에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국전에의 출품은 입선과 특선을 번갈아 하다가 56년 <화실>이 문교부장관상을 받은 이후 연 4회의 특선을 차지해 추천작가의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이 가운데는 57년 대통령상(좌상)이 포함된다. 그의 국전에서의 성적은 그의 동년배의 작가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비교적 빠른 것이 된다. 국전에서의 그의 위상은 모범생이란 수식에 가장 걸 맞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0년대 후반부터 활발해가던 그룹 활동에 일체 가담하지 않았던 것도 국전 모범생으로서의 그의 위상에 관계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화풍상으론 당시 출범하였던 창작미술가협회(이준, 류경채, 이봉상, 고화흠, 박성환, 박향섭, 홍종명, 박창돈 등)에 밀착된 것이었고 이 단체에서의 가담 권유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국전의 중심 멤버들로 구성된 목우회의 참여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그는 아무데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룹을 통한 이념투쟁이나 으레 따르기 마련인 화단 정치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조용한 그의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국전에서의 대통령상 수상과 이어지는 추천작가로서의 반열에 이르는 사이 그의 작품은 어느 면 절정을 장식해주고 있다고 할 정도로 무르익어가는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어느 정점에 이르고는 바로 정체상태에 빠진다든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는 터인데 임직순은 오히려 이 시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풍요로운 자기 세계를 추구해나간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고 있다.
2
그가 아카데믹한 분위기에서 자기 성장을 꾀했다는 지적은 일생 동안 그가 다룬 소재의 범주가 보여주는 일정한 맥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다룬 소재는 인물, 정물, 풍경으로 압축된다. 이는 인상파의 모티프의 선택이란 미술사적 문맥과 맥락된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소재를 추구한다는 인상파의 태도는 회화를 설화나 종교나 역사의 무거운 주제에서 현실의 세계로 끌어내린 것이 되었다. 구상 계열의 작품의 범주가 인물, 정물, 풍경이란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예외적일 수 없으나 같은 소재라도 그가 선택하고 있는 모티프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독자적인 취향을 엿보게 된다. 작가에 따른 모티프의 선호는 그 작가의 내면을 반영해주는 키포인트이기도 하다. 모티프가 집중된다는 것은 모티프를 통한 자기만의 세계의 확립을 추구해나가는 것이 된다.
임직순은 인물 가운데서도 여인, 여인 가운데서도 단연 소녀상이 압도적이다. 서양화가들이 으레 다룸직한 누드의 소재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그런가하면, 정물은 화병에 꽂힌 꽃으로 한정된다. 테이블 위에 꽃과 과일 등을 중심으로 배열하는 일반적인 정물의 범주에서 비껴나 있다. 풍경은 굳이 제한된다기보다 그가 다룬 풍경 가운데는 유독 산이 들어간 것이 많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물, 정물, 풍경이란 일반적 소재에서도 그 독자의 시각과 기호가 선택의 폭을 극도로 압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임직순의 인물 가운데 소녀가 많다는 것 외에 대부분의 인물의 포즈가 좌상이란 공통점을 들어낸다. 좌상이란 포즈 자체가 안정된 구도를 유도한다. 캔버스의 인물 사이즈가 좌상을 배치했을 때 밀도 있는 구도가 획득된다는 것은 좌상을 다루는 작가들이라면 이미 숙지하고 있는 일이다. 한 때 국전에서 좌상 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인물 좌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도 캔버스의 조건에 기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안정된 포즈와 밀도 있는 구도에 상응되는 인물상은 단연 좌상이란 점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우리의 국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의 대표적인 아카데미즘의 전시인 일전(日展)에도 나타난 현상이었다. 임직순의 <좌상>이 공교롭게도 이후 많은 좌상을 유도해준 것이 되어 좌상 붐의 계기가 되었다는 오해도 불러있으켰다. 그러나 임직순의 좌상은 어느 시기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가 일생을 통해 가장 지속적으로 다룬 소재이기도 했다. 50년대에서 80년대로 이어지는 인물상이 한결같이 인물 좌상이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임직순의 인물 좌상이 다른 작가들의 좌상과 구분되는 것은 포즈 위주에서 벗어나 인물과 주변이 점차 혼융되는 독특한 표현의 세계에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여인이 앉아 있는 주변과 배경이 꽃으로 장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인물과 꽃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상호 침투하는 형상을 들어낸다. 어디까지가 꽃이고 어디까지가 인물인지 구획되지 않을 정도로 개별성을 떠나 일체화를 도모한다. 꽃에 묻힌 인물인지 인물 속에 파고든 꽃인지 알 길이 없다. 꽃과 여인은 그가 가장 많이 다루었던 소재로서 그가 지닌 미의식의 어느 단면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는 여자의 얼굴을 자주 그려왔다. ……여자의 얼굴은 나에게 있어 매혹적이며 끊임없는 예술적 정감을 불러일으켜주는 화제이다. …… 젊은 여자와 꽃은 내 작품 속에 곧잘 등장하는 소재이다. 여성 이상의 무엇을, 꽃 이상의 무엇을 던져주는 미적 감동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2) 젊은 여자와 꽃이 각각 개별로서 선택되지만 종내는 어떤 미적 감동 속에 일체화하고 있음을 위의 언급에서 유추해낼 수 있다. 이 미적 감동이란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자에 끌리고 꽃에 끌리는 것은 외모의 아름다움에 가린 보이지 않는 생명의 힘에 끌리기 때문이다.”(3) 그렇다면, 임직순의 화면에 빈번히 등장하는 여인과 꽃은 그것들 뒤에 감추어진 생명의 힘을 표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인인지 꽃인지 구분되지 않는 경지는 바로 생명의 힘이 뿜어내는 열락임이 분명하다. 생명의 힘에 의해 뿜어져 나오는 생의 열락은 보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이경성이 임직순의 작품을 언급하는 다음의 대목에서도 이 점이 지적되고 있다. “화가 임직순의 작품은 정이 있고 맛이 있다. 정이 있다는 것은 본다는 행위를 통해서 마음 속에 정화작용이 일어나고 그렇게 일어난 정화작용을 통해서 흐뭇한 생명감을 낳는다. 맛이 있다는 것은 본다는 행위를 통해서 심리적인 만족감을 느끼고 그렇게 얻은 만족감을 통해서 깊은 조화에 이른다”(4)
3
여인과 꽃이 생명의 힘을 표상하는 대상이듯이 또 한편 여인과 꽃은 색채를 구현하는 가장 적절의 대상이기도 하다. 꽃을 그린다는 것은 꽃이란 대상이기에 앞서 색채를 구사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꽃으로의 대상보다 색채로서의 현상이 언제나 앞질러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색채 화가들이 꽃을 주 모티프로 선택하는 것은 꽃을 그리기에 앞서 색채를 구사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이 경우 꽃은 단순한 꽃에 머물지 않고 색채를 표상하는 매체로서 선택된다고 할 수 있다.
색채화가니 형태화가니 하는 구획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대결에서 생겨난 개념이다. 신고전주의가 형태에 치중하는 반면, 낭만주의가 색채의 자율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색채는 형태의 종속적인 가치일 뿐이라고 한 신고전주의에 맞서 색채야말로 회화의 본질이라고 한 낭만주의 치열한 대결이 낳은 산물이다. 모든 화가에게 이러한 적응은 무리지만 임직순의 경우, 색채화가란 수식은 가장 걸 맞는다. 그의 작품은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색채가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색채의 자유로운 구현이 형태를 암시할 뿐이다. 색채는 색채 속에서 태어나고 색채 속으로 침잠한다. 색채는 발랄한 생명감에 들뜨고 다시 조용히 가라앉는 고요 속에 자신의 여운을 남긴다. 우리미술에 이만큼 색채의 생명율을 자유자재로 구현해낸 작가도 많지 않다. 그가 유독 여인과 꽃을 많이 그렸다는 것은 색채화가로서의 자의식의 발동이라 할 수 있다.
인물과 풍경이 전 시대를 통해 고루 분포되는 반면, 정물은 80년대에 집중된다. 정물의 소재가 꽃으로 집약된다는 사실도 어쩌면 꽃과 여인의 모티프의 극히 자연스런 연장에서 바라 볼 수 있다. 정물이 한결같이 화병에 꽂힌 꽃이 모티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인이 앉은 자리의 앞 쪽 탁자 위에나 뒷면에 놓여 있던 화병이 독립된 양상으로 선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정물적 장치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꽃이 놓이고 과일과 과접이 등장하는 일반적인 정물의 구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 예각진 텃치가 동원되는 꽃은 경쾌하면서도 진득한 마티엘이 자아내는 즉흥성은 언제나 작가가 말한 “눈먼 자의 최초의 개안, 나도 그 빛과 색채의 만남으로 건강한 생과 자연에 대한 헌사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5) 는 말에 가장 상응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
이미 지적한 대로 풍경은 초기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지만 특히 후반부에 치중되어 있는 편이다. 80년대 후반은 거의 풍경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경 가운데는 산이 있는 풍경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산은 멀리 바라다보는 대상이지만 그가 묘출하는 산은 숨 가쁘게 앞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그것은 산으로 향하는 작가의 감동의 분출인지도 모른다. 산은 일정한 지명을 지닌 것(북한산, 설악산의 가을, 설악정경, 설악의 설경, 무등설경, 울릉도 정경, 정이 담긴 설악산, 아차산 입구 등)이 있는가 하면, <집과 구름> <구름과 산> <해와 산> <가을의 정경> <집이 보이는 풍경> <산과 구름> <산> 등 특정한 지명을 갖지 않는 것으로 구획 지울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의 풍경적 소재가 산으로 인해 얻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산과 풍경은 일체 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인물 가운데 소녀상이 집중되듯이 풍경엔 산이 집중되는 형국이다.
산이 중심 모티프가 아닌 풍경엔 해안 풍경이 여러 점 있고 나무를 중심으로 한 풍경이 적지 않은 편이다. <어느 날 부두에서> <바다와 배> <어촌의 일우> <바다가 보이는 풍경> 등 일련의 바다를 모티프로 한 작품들은 그가 광주에 체류할 때 자주 사생 갔던 여수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 일대를 다룬 것이다. 나무를 풍경의 중심 모티프로 다룬 일련의 작품들에선 그의 지금까지의 경향과는 다소 이질적이라 느껴지는 대담한 요약과 즉흥성이 농후하게 반영되고 있다. <구름과 산> <나무가 있는 풍경> <붉은 소나무> <휴일의 정취> 같은 작품들에선 무르익어가는 색채와 자연을 향한 감흥이 폭발하는 정감으로 흘러 넘치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대상이 지닌 설명적인 요소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화면엔 생동하는 붓질과 농익은 색채의 어우러짐만이 현전되고 있을 뿐이다. 육중한 마티엘과 경쾌한 붓질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화면의 질료는 은은하면서도 깊은 반향을 자아낸다. 자연에서 오는 생명의 율동과 이를 감동적으로 포착해가는 작가의 조형적 응답이 하나의 드라마를 이루어가는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