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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해서 낯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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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해서 낯선 풍경 : ‘거리’와 ‘골방’의 가역반응







이대범│독립큐레이터ㆍ미술평론가


그때의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90년대’라는 말로 대변되는 시대의 문턱을 지나면서,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1987년 6월, 터질 듯 거리를 메웠던 그 사람들 말이다. 그들의 최근 근황이 궁금해서 일까. 이 시대는 ‘386세대’라는 용어로 그들을 묶어주는 배려까지도 마다지 않는다. 대략 그들의 근황을 살펴보면, 대기업의 간부로 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제도적인 정치권에서 일하는 사람도, 학문의 길로 접어든 사람도, 또는 학원 강사로 또는 백수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유별난 것도 없는 이들의 행적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아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바람을 가진 사건이 80년대와 90년대 접점에서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80년대 / 90년대’를 가르는 그 빗금에는 세계사적인 사상 변화의 움직임이 자리하고 있다. 반(反)자본주의 이론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을 집단적으로 학습한 세대는 이러한 세계사적 변화와 맞물려 새로운 비전을 모색해야 했다. 그러나 점점 확대되어가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그들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80년대와 90년대를 가르는 빗금은 그들 스스로 자본의 파장 안으로 편입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확대 재생산하는 하나의 축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그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이것이 그들의 세대감각이자 운명이다.





이러한 세대의 운명은 ‘거리’를 ‘현장’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상태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골방으로 들어가 ‘개인적’ 인 소소한 일상에 주목한다. 현장을 후일담으로 기억하면서 말이다. 사회구조는 여전히 불평등하고 완강해진 것은 경제적 효율성의 이데올로기인데 개인에게 허락된 것은 고작 자신의 밥그릇에 대한 고민이거나, 컴퓨터 앞에서 펼쳐지는 무한 네트워크를 가장한 익명의 방에서 누리는 자유일 뿐이다. ‘골방’은 어쩌면 예전보다 무기력해진 그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또다시 10년의 연대기적 전환점을 거치면서, 그들이 거리로 나왔다. 넥타이가 아닌 붉은 옷을 입은, 그리고 골방에서 TV를 보며, 맥도날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먹으며,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성장했던 새로운 세대들과 함께 말이다. ‘신세대’로 표명되는 이들은 자본에 대해서 도덕적 자괴감을 가지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향유를 통해서 얻어진 경험을 통해 자본주의를 바라본다. 이러한 시각은 이전 세대들과는 경이로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이하면서도 경이로운 이들의 차이가 만나서 만들어 놓은 2000년대 거리 풍경은 골방에서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던 거리의 풍경과 분명 유사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는 기억이 아니라 새롭게 형성된 현장이다. 골방도 이제는 골방이 아니며, 일상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이들이 바라보는 풍경은 시각적 변용을 통해서 거리를 바라보게 되고, 더 나아가 역사의 문제에서도 무겁게 다가가지 않는다. 역사의 현장을 현실로 끌어들여 과거의 감옥에 갇혀 있는 역사의 사건을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준거 틀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세대감각을 통해서 2000년대에 새롭게 형성된 거리의 풍경을 보여 주고자 한다. 그 풍경은 우리와 동시대인 친숙한 풍경이지만, 거리와 골방의 가역반응을 통해서 만들어진 낯선 풍경이다. 지금 우리는 그곳에 있다. 친숙해서 낯선 풍경 안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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