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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가상과 실체의 간격 속에서 이분화 된 도시의 의미를 리얼리즘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도시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비평적 담론을 도출하고자 하는 전시
WHERE IS WHERE?
도시를 생각한다.
나형민
전통적인 자연관에 의하면 산수(山水)는 가고 싶고(可行), 보고 싶고(可望), 기거하고 싶고(可居), 궁극적으로 즐기고 싶은(可遊) 동경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산수에 대한 이념을 많은 예술가들은 질료(質料)로써 외화시켜 표현해 왔으며, 자연을 모방한 산수화(山水畵)가 원본(자연)을 대신한 와유(臥遊)의 대상으로서의 역할이 가능하였다. 그러므로 산수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짜 산중에 있는 듯한 ‘경치 밖의 뜻(景外意)’과 거기에 살고 싶고 마냥 놀고 즐기고 싶은 맘을 불러일으키는 ‘의미 밖의 묘(意外妙)’가 있어야 한다고 곽희(郭熙;북송)는 말했던 것이다.
이처럼 고상한 운치(高致)가 서려있는 산수(林泉)가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도시는 삶의 다양한 편의성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범속(凡俗)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산수와 도시라는 대립된 항이 하나는 긍정의 대상으로 또 다른 하나는 부정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온 것이다. 도시의 세속적 이미지는 도시의 발생시점부터 지속되어 왔지만, 부정적인 인식이 가속화 된 시기는 근대화로 인한 산업화 도시화 이후일 것이다. 이는 오염된 환경과 각종 사회 문제, 인간성 상실 등등의 모든 현대산업사회 도시화의 문제점들이 자연 발생적이라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발생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여러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왜! 도시에 기거하고 있고 도시의 삶을 동경하는 것일까? 실례로 한국의 도시화율은 2005년 기준으로 80.8%, 80년의 56.9%에 비해 23.9%포인트가 올라갔다. 이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이 100% 도시화된 도시국가를 제외한 여타국가와 비교했을 때 도시화의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도시화율은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의 비율이 얼마인가를 파악하는 지표로써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유입되고 기거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화로 인한 환경, 주거, 교통 등등의 수많은 난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시민화(都市民化)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실체적인 도시의 모습이 아닌 이상화된 도시 이미지를 동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도시의 가치가 '효용가치'가 아니라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는 상징적 기호와 이미지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교환가치'로서 도시의 상(象)이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는 소비사회로 규정되는 현대사회에서 문화상품은 상징적 기호와 이미지에 의해서 가치가 결정된다고 하였다. 실례로 값싸고 실용적인 상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명품을 선호하는 것은 명품에 담겨진 사회적 권위와 위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즉, 현대인은 사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둘러싼 사회적 이미지, 즉 기호를 소비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둘러싼 도시의 가상적 기호와 이미지들은 도시의 실상을 실체로부터 분리시키고, 그것들을 스크린 표면 위의 이상적으로 재포장함으로써 도시의 현실을 간과하게 만든다. 즉, 오늘날 도시 이미지는 산수화(山水畵)의 관념화, 이상화와는 달리, 리얼리티 자체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잘 구성하기도 함으로써 실제적인 도시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는 보다 더 현실적인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 과잉현실)’이자,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시뮬라크라(simulacra - 인공현실)’가 되어 현대인들에게 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기실 정보통신(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의 발전으로 도시와 농촌, 안과 밖의 경계가 점점 소멸된 공명(共鳴)공간화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유입되고 도시는 점점 확장되고 있다. 이는 지역이나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고급화, 명품화된 아우라(Aura)를 뒤집어 쓴 도시이미지에 대한 동경의 산물인 것이다. 잘 정비된 도로와 편리한 편의시설, 깨끗한 주거 공간 등이 도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로써 그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도시의 이미지는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자 문화의 기반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는 가고 싶고(可行), 보고 싶고(可望), 기거하고 싶고(可居), 즐기고 싶은(可遊) 향유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럼으로써 기의와 기표로서의 산수와 산수화의 전통적인 기호 의식은 붕괴되고 그 자리를 현대 도시의 이미지가 대체함으로써 산수화가 제시하였던 도원경(桃源境)의 역할을 도시의 가상성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상성이 부지불식간에 현실로 느껴지고, 가상현실이 자연스럽게 인식될 때, 가끔 나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심지어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조차 혼란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