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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림ㆍ홍승혜ㆍ홍정희전:약동(躍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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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적인 시각과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약동하는 생의 에너지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여성작가 3인의 회화와 판화 작품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2007년의 시작점에서 능동적, 진취적으로 한해를 계획할 수 있는 힘을 이끌어내고자 기획한 전시
Spring beyond the Movement


‘생기 있고 활발하게 움직임’을 뜻하는 ‘약동(躍動)’이라는 개념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는 생명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즉, 자연의 동적 에너지를 ‘새봄의 약동’, ‘약동하는 젊음’과 같이 움직임ㆍ새로움ㆍ생명력의 의미와 연결지어볼 수 있는 것이다.

‘창조적 진화’로 대표되는 베르그송(Bergson, Henri, 1859~1941) 철학에 따르면 순수지속(durée pure)으로서의 생명은 이질적인 것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향해 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상태를 낳는다. 이 때의 생명은 내적인 생명 충동, 곧 동적이며 예견 불가능한 힘인 ‘생의 약동(élan vital)’을 통해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것으로, 그는 이러한 생의 약동이 모든 생명의 다양한 진화나 변화의 밑바닥에 존재해 도약을 미는 근원적 힘이자, 끊임없이 유동하는 생명의 연속적 분출이라고 언급했다.

하상림, 홍승혜, 홍정희는 현재 회화 및 판화작업을 통해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대표적인 여성작가들로, 각자의 개성적인 시각과 다양한 작업을 통해 약동하는 생의 에너지를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꽃과 같은 자연의 형상에서 얻어낸 곡선과 신비로운 색감의 조화를 통해 음악적 리듬과 율동을 형상화하는 하상림의 작업과 기하학 형태의 반복과 겹쳐짐을 통해 이미지가 마치 유기체와 같이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는 홍승혜의 작업, 그리고 구체적인 형상이 드러나지 않지만 강렬한 원색의 대비와 독특한 질감을 통해 역동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홍정희의 작업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재해석된 꿈틀거리는 생명의 움직임과 그 유희를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각각의 작업에서 보여지는 움직임과 약동하는 생명력은 관람자로 하여금 작품 안에 내재된 비가시적 에너지의 흐름 또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베르그송이 언급한 변화와 진화의 개념에 맞닿아 있는 것으로, 이러한 ‘약동’의 이미지들은 공간을 확장 및 변화시키며 능동적이고 발전적인 삶의 자세를 제시한다.










여행길에 꽈리 한 다발을 사서 무심히 작업실에 걸어 놓곤 그 모습이 말라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수분이 날아가고 두껍던 열매의 표피는 슬쩍만 닿아도 부서질 듯 애처롭게 얇다.
색을 잃고, 살아있는 것도, 그렇다고 딱히 죽었다고도 표현할 수 없는 정지 상태 그대로...
-무척 편안하다.
나의 꽃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화면에 선으로 옮겨온 열매의 모습이 다시 잎이 되기도 꽃이 되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담겨진 그 모습은 생명과 죽음 모두를 두루 거친 시간의 흔적으로 자리한다.
커다란 캔버스에 춤추듯 선이 움직이고 그사이 화석처럼 각인된 꽃의 이미지들은 수없이 덧칠해진 붓질들 사이에 편안하게 안착하길 바란다.
나의 작은 손으로 감히 생의 존재를 그려 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나,
그것이 살아가는 이 시간들을 뚫고 지나가는 내 삶의 방식이다.

- 하상림의 작업노트










홍승혜의 작업은 공간을 최소한의 형태로 환원시키는 데에 주안점을 두기 보다는 그렇게 형성된 최소한의 형태나 공간에 약간은 불안한 질서를 부여하여 증식시키고 배양하고 있는 쪽에 더욱 배려를 하는 편이다.
극단적인 형태의 환원의 결과가 ‘그리드’다. 대체로 이러한 그리드는 덧셈과 곱셈이 가능한 형태로 화면 안에서 증식을 한다. 홍승혜도 마찬가지다.
곱하기를 더하기로 풀어놓으면 이를 다시 곱하기로 묶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역반응인 셈이다. 일반적인 미니멀 아트에서의 그리드가 그렇다. 환원된 형태 자체가 난공불락의 단단한 그리드로 고정되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거친 ‘시간성’이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역도 비가역도 아닌 그리드의 이합집산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녀의 경우 풀어진 더하기를 다시 곱하기로 묶을 수가 없는 비가역반응을 보여준다. 이미 시간이 거칠게 개입되어 그리드에 변형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곱하기도 아니고 더하기도 아닌 묘한 계산이다. 그녀 스스로 ‘계산된 불확실성(calculated uncertainty)’이라고 불렀다. 그건 환원된 기본단위인 그리드의 중심을 흔들거나 또 원래 시간이 가진 불규칙성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모든 생명현상이란 시간 위에 놓여졌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비가역반응의 룰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녀는 자신이 만든 최소한의 공간단위인 그리드를 증식시키는데, 딱딱한 벽돌처럼 계속 쌓아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랑한 세포처럼 주변에 맞닿은 동료 그리드들 속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스스로 알아서 증식하고 변이하며 진화하도록 만든다.

<홍승혜의 공간 배양법>에서 발췌
- 황인, 아트 액티비스트






홍정희는 물감을 마치 농부가 새로 일구운 밭에 씨를 뿌리듯 솜씨 있게 다룬다. 어쨌든 그의 캔버스 표면을 진하게 우아하게 장식하고 있는 짙고 선명한 색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필법이 하나하나가 번번히 자신감에 차있고, 하나하나가 특유하고 그 자리에 적합하고, 다른 색과 색채적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역동적인 매제를 능숙히 다루면서도 넓고 탁 트인 그림의 공간을 주고 있고, 두껍게 칠한 채료에 붓이 빨리 움직여서 액체가 끈끈하게 발려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어, 요소 하나하나가 색채의 유동성을 표현하고 있다. (…)
그의 작품은 추상화이지만, 간혹 이 세상과 비슷한 점이 여기저기 보인다. 추상공간이 풍경을 상기시키나 이 작품들은 퇴행적인 풍경화의 화면의 공간에 대한 저항을 보이고 있다. 1990년도의 일련의 “탈아”라는 명제의 작품에는 채료가 어떻게 두꺼웠는지 표면에 거품같이 일어, 매개체의 용암 같은 농도를 강조하고 있다. 한 작품에서 작가는 노란 배경에 연분홍의 진한 조각을 강한 표현으로 실험 삼아 쓰고 있어, 마치 황토색의 무중력 우주에 무거운 형상이 떠다니는 것 같은 그림의 수수께끼를 마술같이 그려내고 있다. 또 하나의 역동적인 병행이 적색이나 녹색의 벌판에 하얀 선들을 긁어 몇 작품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부조상의 특수문자가 함께 모여 구조상의 형상같이 보이나 그것들은 간혹 단색의 벌판의 근사한 색조의 분류와 일치 해당한다. 이것들은 다의성의 그림 평면과 병행하는 선으로 농후한 표면을 또렷이 표현함으로서 다의성의 공간을 설치시킨다. (…)
홍정희의 그림은 호기심을 일으킨다. 발랄하고 강건하며 개방적이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생성한다. 그의 그림들은 환희에 찬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 추상화를 매혹적인 한 미적 공간으로 이끌어 간다.

- 제라드 맥카시(Gerard McCarthy, 미술비평가 및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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