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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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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으로 표현되는 서정과 서사의 세계


김상철│미술세계 편집주간


일반적으로 작가는 다른 이와는 구별되는 특정한 내용들을 통하여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이를 통하여 자신과 자신의 작업을 각인시키게 된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한 색채 감각이나 사물의 형태, 혹은 표현 기법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작위적인 설정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대개 일정 기간에 걸친 작업 과정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되게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작가로서 박인현을 상기시키는 것은 단연 우산일 것이다. 정교하게 표현되어진 다양한 검은 우산들로 이루어진 그의 조형 세계는 그만큼 강렬하고 인상적이며 특징적인 것이다. 그를 우산작가라고 부르게 된 연유 역시 이러한 인상에 대한 개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사실 박인현의 우산들은 일정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형태적 변형을 통한 조형적 변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표현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와 사색의 변이를 내재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일정한 단계적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박인현이 작가로서의 입문과 입지를 구축한 것은 지난 1980년대 초의 일일 것이다. 당시 그는 비닐이라는 전에 없던 소재를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었다. 투명한 비닐 사이로 언뜻 언뜻 드러나는 생명의 흔적들을 탁월한 묘사력으로 표현해 내던 그의 작업은 이전의 전통적인 동양회화의 가치관이나 조형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대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접근과 이의 섬세한 묘사를 통하여 그가 구축해 낸 화면은 남종화론으로 무장된 전통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그만의 독특한 조형 세계였다라고 기억되고 있다. 당시 그가 보여주었던 탁월한 묘사력과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 방식은 이후 그의 작업에 일관되게 적용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그의 작업을 대별하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결국 작가로서의 입문기의 그가 선택한 전통의 대척점에서 현대를 모색한다는 조형적 위치 설정과 이를 특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와 표현을 통하여 구체화한다는 작업의 방향 설정은 그의 작업 전반을 시종 관류하고 있는 두 가지 핵심 가치인 셈이다.




비닐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감각적인 표현에서 도시 풍경을 거쳐 비로소 우산이라는 새로운 주제에 맞닥뜨린 작가의 조형 세계는 변화의 전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변화 과정은 전통적인 동양화관의 교조적이고 경직된 이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와 내용을 지닌 우리회화를 모색해 보고자 하였던 당시의 시대 상황에 적극 동참하고, 당시의 가치를 적극 수용하고 반영한 결과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그는 분명 현대 한국화의 거칠 것 없는 전사였으며 열렬한 투사였다. 이 시기의 변화와 모색을 통하여 그가 확보한 전환의 내용들은 이전의 작업들이 육안에 의한 대상의 관찰과 감각적인 표현으로 이루어 진 것이었다면, 우산에 이르러 비로소 작가는 대상을 빌어 자신만의 사유와 관념을 표출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가 표현한 우산은 서정적인 낭만과 도시적인 감각을 동시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이들의 집적을 통해 작가가 구현해 낸 것은 뜻 밖에도 또 다른 산수의 이상향이었다. 도시라는 새로운 조건과 상황을 동양회화의 이상적 경계인 산수로 인식하고 이를 우산이라는 특정한 내용으로 재해석한 당시의 작품들은 호방한 스케일과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으며, 결국 그에게 석남미술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으며, 우산작가라는 인상을 강렬하게 각인시켜 준 계기가 된 것이다.




작가의 우산은 이후 몇 차례의 특징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은 그의 작업 세계를 수묵과 채색이 혼재한 독특한 화면을 만들어 내었으며, 전원적 서정에 눈길을 돌린 그의 시선은 질박한 황토색이 물씬 풍기는 또 다른 서정적 풍경을 구성해 내었다. 이후 구상과 비구상이 혼재하는 다분히 실험적인 양식의 작업들을 거쳐 결국 우산으로의 회귀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변천 과정들은 일견 서로 다른 내용들이 혼재한 복잡다기한 것으로 보여 질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일관되게 관류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전통의 대척점에서 현대를 모색한다는 조형적 위치 설정과 이를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와 표현을 통하여 구체화한다는 작업의 방향 설정의 두 가지 핵심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를 지탱시켜 주는 요체는 바로 인간과 생명에 대한 외경과 존중이라 할 것이다. 그가 취한 대상이나 조형적인 설정은 모두 일정한 의미와 복선을 내재하고 있는 일종의 장치들이다. 공해에 신음하며 죽어가는 물고기나 평화롭고 서정적인 자연 풍광은 말할 것도 없을 뿐 아니라 명멸하는 신호등이나 펴지고 접혀진 우산들 역시 생명 현상에 대한 일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조형적 부호이다. 즉 신호등의 깜박거림이나 우산의 펼쳐지고 접힘은 바로 생과 사를 대별하는 상징이자 은유인 것이다. 결국 그의 작업은 줄곧 실험을 통하여 전통 회화의 질곡을 타개하고, 이를 통하여 획득되어진 새로운 형식을 통하여 생명과 자연에 대한 외경과 존중을 형상화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우산은 이제 새로운 면모를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호흡하고자 한다. 사실 우산은 그 자체로 대단히 강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낭만과 우수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해맑은 동심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작가가 만약 이러한 우산의 일차적인 인상과 이미지만을 차용하였다면, 그것은 소재주의의 편협함에 함몰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생명에 대한 사유와 긍정을 표출해 내었으며, 우산을 단순한 소재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특정한 의미를 지닌 상징체계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제 그의 우산들은 또 다른 대상과 소재를 아우르며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지닌 의미 있는 조형 부호로서 화면에 등장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 독도, 인왕산, 모악산 등 상징성 강한 산수 풍광들을 우산을 통하여 재구성하여 조형화하고자 하는 근작들은 이전의 작업들과는 다른 또 다른 장쾌한 스케일의 심미를 보여주고 있다. 일정한 시의성을 바탕으로 상징성 강한 산수 풍광의 양태를 차용하지만, 이를 해체한 후 다시 우산이라는 특유의 형상 부호와 조형체계를 통하여 재조합함으로써 그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주목되는 것은 [박연폭포], [인왕재색] 등을 재해석한 작품일 것이다. 이는 전통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재해석의 시도라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며, 향후 작가의 작업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유력한 단서라 여겨진다. 즉 이전의 우산들이 서정과 낭만을 전제로 한 상징적인 부호였다면, 이제 그의 새로운 우산들은 서정과 서사를 동시에 아우르는 보다 큰 의미의 상징체계로 구체화되고 있다 할 것이다.




작가의 근작들은 수용성 재료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물성의 발현이 두드러지고 있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와 표현이 작가의 조형 방식 중 하나였다면, 이는 물성의 적절한 통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근작들에 나타나고 있는 양태는 보다 유연한 표현 방식으로 엄정한 형태를 추구하기 보다는 그것을 통해 발현되는 감성적인 공기의 포착에 보다 주목하는 경우라 할 것이다. 대상에 대한 표현과 물성의 운용에 있어서 보다 너그러운 용인의 태도와 수용 방식은 그의 사고와 사색이 단순한 형상 표현의 단계를 초월하여 또 다른 경지에 접어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오늘날까지 실험과 모색으로 점철되어진 그의 작업 역정을 통해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변신과 변화는 사뭇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의 치열한 작업 의지와 생명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 그리고 작업에 대한 진지한 자세 등은 그의 새로운 추구와 모색이 일정한 성과를 이루어 낼 것임을 담보해 주는 유력한 내용들일 것이다. 의구한 모양의 우산 속에 담아내고 있는 그의 새로운 표정을 진지하게 살펴보며 그 성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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