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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벽 Invisible Wall
나의 최근 작업에서 현대 사회에서의 개개인의 외로움과 단절 속에 감춰진 인간의 이중적인 심리 상태에 관심을 가져 왔다. 이러한 부조리로 인한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나의 관심은 장벽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군중 속에 융화된 듯하지만 단절된, 즉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한 것이다. 이 벽은 사회와 개인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멀거나 가까움에 상관없이, 우리가 의식을 하던 하지 못하던, 당신과 나 사이, 심지어 자신의 내면에서조차 있는 그러한 벽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벽들은 이중적인 또는 왜곡된 형태로 굴절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굴절은 고립된 인간으로서의 외로움에서 나온 결과물들이고, 이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하여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작업 방법에 대한 접근은 다양하다; 가끔은 선에 의존하고, 삼차원적 움직이는 공간에서의 왜곡된 이미지들로 구성되기도 하며, 때론 평편한 평면에 공간적인 느낌과 움직임의 효과가 나는 매체들을 탐험한다. 또한 깊이에 대한 상상을 위해 사진과 그림을 결합하고 홀로그램을 이용하여 관객과 작품과의 의사소통의 통로를 만들고자 한다. 작품 속의 홀로그램은 그러한 매개체로써 양면적인 공간의 역할을 한다. 홀로그램은 벽으로 인해 우리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너와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보기에 따라 그 속의 이미지가 크게, 혹은, 작게 보이기도 하고, 왜곡되어 보이기도 한다. 현상의 세계보다는 가상의 세계, 현실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비뚤어져 보이거나, 이미지가 사라져 보이거나 한다. 이런 것은 개체화 되고 파편화 되면서 실체를 못 보거나, 흐릿하게 보거나, 아니면 흐릿하게 보고 싶어 하거나 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모여서 만들어 진다.
고립된 현대인을 표현한 이미지의 홀로그램은 filler로 싸여있고 막혀있다. filler는 또 다른 벽의 의미이고 단절된 것을 보여주고자 하며, 그것은 가상의 현실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홀로그램 이라는 창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는데, 이러한 가상의 세계는 고립되어 있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데 실체를 못 본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정적인 사회와는 달리 개인주의적인 현대는, 혼자에 익숙하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벽이 가로 막혀 있지만 벽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 속에서 자기만의 바깥을 보는데, 그것은 고립된 내안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너와 나를 갈라놓은 것은 벽인데 그 너머에 있는 너를 볼 때는 돌려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있고 내 작품에 매개체로서의 홀로그램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 홀로그램은 창이고 그 홀로그램을 통해 갇혀있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본다. 창은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 박명선의 작가노트에서
장준석│평론가
박명선은 자연과 친밀한 파주의 한 조용한 공간에서 작업을 한다. 서울에서 파주까지는 자동차로 강남에서 강북으로 다닐 만큼의 거리이다. 그러나 전철을 타면 오히려 더 멀게 느껴지는 듯하다. 용인에 사는 필자가 박명선의 작업 공간을 찾아가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로 바쁜 일상 때문에 약속을 번번이 미루다가 무례함을 무릅쓰고 밤늦게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게 되었다. 평론가라면 대부분 꺼려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도 편집 주간이기에 간혹 할 때가 있다. 작가를 만나러 가는 전철 안에서 온갖 생각을 다해가며 눈을 감고 있다가 어느덧 강북의 한 전철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밤늦게 대화역까지 마중 나온 작가의 마음이 고마워서 피로감을 잊을 수 있었다. 얼마나 갔을까! 자연의 풍광이 어느덧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작가의 작업실은 조용하고 한적한 전원생활을 연상시키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생활공간 옆에 따로 지은 작업실이 작가만의 소중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반가운 손님이라도 만난 듯 살갑게 대해주는 작가의 마음에서 인간미를 느끼며 그동안의 작업들을 하나하나 볼 수 있었다. 작가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 거리를 가야 되었던 게 대부분이지만, 작업실을 찾을 때마다 그들의 작업공간과 생활을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다.
한마디로 박명선은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시도하려는 작가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여 학교도 종종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주변에 친구가 별로 없었다. 이런 연유로 그녀의 어린 시절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는 혼자 그림을 그리고 이를 스스로 즐기는 시간이 많아져 있었다. 박명선의 어린 시절은 이렇게 그림과 함께 시작된다. 학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그림만을 그릴 정도로 그의 어린 시절은 하루하루가 그림 그리는 일로 채워지게 되었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필자가 찾은 박명선의 작업실은 다른 대부분의 작가들과는 달리 좀 더 진지해 보였고, 그녀가 작품에 매달리는 시간과 열정이 많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진행되는 속도가 조금은 더디 나가는 듯하였다.
영국에서 미술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박명선은 자신의 예술적인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만학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국내에서 다른 분야의 전공을 했으나 그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30대 후반에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영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영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기후나 환경 등이 자신의 체질과 맞지 않아 고생이 심하였다. 우선 생활의 리듬이 깨지면서 잠자는 문제가 조금은 어려웠고, 아직도 약한 체질이라 잦은 병치레를 하였으며,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기에 힘들게 그림을 그렸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잦았기 때문인지 박명선의 의지력이 더욱 남다르게 생각된다.
박명선은 영국에서 졸업할 무렵인 2000년에 남자들도 해내기가 쉽지 않은 1인 퍼포먼스를 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예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작가는 1인 퍼포먼스를 통해서 사람들과 마음의 벽을 허무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었다. 친밀할 것만 같은 가족 간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요. 이건 나 자신한테도 있어요. 물질의 풍요 속에 사람들과의 정이 점점 줄어드는 것에 대한 하나의 경고성 메시지였다. 골머리 아픈 세상을 제대로 알고 싶지 않은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은 세상사의 여러 부분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면서도 이에 관여하기를 귀찮아한다. 이것이 언젠가부터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박명선의 그림에는 마음에 빗장을 걸어 잠글 수 있는 열쇠나 벽의 이미지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는 미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들의 삶과 정신 현상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이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성향을 지닌다. 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오늘의 현대인의 우울한 모습과 비정상적인 정서와 메말라 가는 인성 등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주요한 문제를 지닌 이슈로 보여주고자 한다. 많은 시간을 쏟아 부으며, 아름답고 얄팍한 그림 그리기를 마다하고 미술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작업이다. 그러기에 작가의 그림은 진지할 수밖에 없다.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현장의 중심에서 작가는 오늘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한 때 영국에서의 그녀의 그림은 무척 어두웠다. 그만큼 작가의 작품에는 많은 생각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벽은 두꺼웠고, 작가가 바라보는 이러한 현대인의 삶의 모습이 어두운 색감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힘들게 대학원 공부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 온 작가의 심경에는 많은 변화가 있는 듯하였다. 영국과는 달리 자신의 마음과 정신의 고향인 한국에서의 생활은 마음을 보다 순수하고 편하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이전의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그녀의 작품 세계는 좀 더 감성적이고 순수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분명 박명선의 최근 작업은 작가가 말한 대로 우리의 한국적인 색감에 대한 고민이 많아져 있다. 작가는 홀로그램을 사용하여 작업을 시도하면서도 항상 빛바랜 삶의 숨결이 숨 쉬는 그런 색을 찾고자 노력한다. 세월이 묻어나는 색, 조금은 헐어도 인간의 손길이 닿아있는 색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여전히 실험성이 짙은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의 예술성은 아마도 타고난 기질이 아닌가 싶다. 그녀가 홀로그램을 통하여 최근 시도하고 있는, 체취가 담겨있는 깊은 맛을 지닌 색감은 공간적인 것에 대한 탐구와 함께 인간 삶에 대한 예술적인 탐구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그녀의 열정은 앞으로 더욱 좋은 작업과 함께 주목을 받을만한 작가로서 우리 앞에 서게 될 것을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