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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상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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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갖는 대규모 개인전. 빛에 의한 새로운 공간 표현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자랑하는 작가의 작품은 홀로그램, 레이저, 발광소자 등 첨단 과학을 응용한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보는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품은 아주 색다른 공간체험도 선사한다.





지각과 환영, 실재와 가상, 그 이중의 변주



박숙영 | 조형예술학, 이화여대 교수


예술이 인간의 상상력으로부터 창출되는 것이라면, 예술가가 취한 과학은 상상력을 구체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
일찍이 금속 용접 조각을 통해 조각 영역에서 새로운 공간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준 최병상은 1990년대 이래 과학이 우리의 의식과 감각을 변화시키는 특수한 예술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적 직관에 의해 물질로 제작되는 조각과, 과학 기술에 기반을 둔 홀로그램과 EL, 그리고 레이저로 형성되는 빛의 시각적 이미지, 이 둘의 결합이 생성하는 고유한 감각으로 세계와의 교류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다양한 형태의 실험 속에서 태극에서 유래된 형상을 작품 구성의 기본 요소로 삼아 그의 삶의 지표를 이루는 기독교 신앙을 표현해오고 있다. 그 요소는 홀로 존재하기 보다는 둘 이상의 조화를 이루는데, 그것은 삶의 어떤 관계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이 구현된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우선 그의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조각의 회화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각의 특정한 면을 홀로그램 등으로 처리하여 작품에 대한 관람자의 시선을 3차원의 입체에 앞서 표면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일찍이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의 표면을 연마하여 거울과 같은 광택을 내어 주변 환경을 표면에 담아내거나, 색채를 입혀 금속의 물질성을 변환시켜왔다.
이와 같은 실제 무게와 부피를 지닌 조각과 그 표면 사이에서 일어나는 시각적 관계에 대한 오랜 탐구는 마침내 홀로그램의 적용으로 더욱 심화된다. 조각의 물리적 부피감을 빛의 표면 뒤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빛의 표면은 단순한 표면이 아니다. 그것은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는 또 하나의 공간으로서 홀로그램만이 지닌 기술적 특성이 만들어내는 3차원의 공간이다. 고전적인 기하학적 시각과 단절된, 그리고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관습에서 벗어난 공간이다.



작가가 일상에서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홀로그램을 조각에 활용하는 것은, 그리고 대기를 가르는 빛의 자기지시적 성격에 의해 특수한 효과가 창출되는 홀로그램의 미학을 조각에 적용하는 것은 특정 예술의 전통적 규범을 벗기기 위해서는 순수한 자유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아울러 테크놀로지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의 창조적 상상력은 과학과 같은 실재에 대한 구체적 지식에 의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조각의 표면 위에서 펼쳐지는 홀로그램 공간은 3차원의 물질적 공간 속에서 또 다른 3차원의 영상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것은 정신적인 비물질의 공간으로서 현실 세계의 중력이 사라진, 작가가 탐구해온 초월적이거나 영적인 세계를 담아내는 표현의 장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십자가 위의 예수상과 못 박힌 손을 세계의 혼돈을 연상케 하는 수많은 선들 사이에서 발견하게 된다. 숨은 그림을 찾는 기분으로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조각 형태의 이미지와 작가의 서명도 찾아낼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의 조각은 물질세계에 있는 우리에게 형이상학적 차원을 일깨운다.



한편 최병상의 조각은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홀로그램 이미지를 통해 관람자의 지각적이고 정신적인 과정을 전개시킨다. 홀로그램이 작품에 대한 관람자의 경험과 그에 수반되는 심리적 활동을 위해 사용된 것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관람자의 시점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과정 중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무지개 빛깔의 다양한 이미지들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고무시킨다. 그리고 물질로 된 조각과 함께 무한한 공간의 잠재성 속에서 창출되는 4차원적인 시각적 환영은 관람자들로 하여금 실재와 가상 사이를 넘나들게 한다. 이러한 이원적 교차와 용해에서 비롯되는 움직이는 빛의 이미지는 조각에 대한 관습적인 지각에 도전한다. 관람자들은 홀로그램으로 인해 조각의 형태는 일정하지만 지각과 환영, 형태와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의 작품은 한 지점에서 단숨에 조각의 형태를 파악하는 전통적인 감상 방식에서 벗어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품을 관람하도록 한다.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새롭게 생성되는 감상 방식은 마침내 창작 과정에 관람자를 직접 개입시키는 작품을 불러온다. 관람자의 출현을 알리는 소리에 따라 조각의 표면이 변화하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조성하는 상호대화적인 매체로서 레이저를 사용하는데, 관람자가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소리를 내거나 작품을 접촉하면 다양한 레이저 형상이 매번 새롭게 작품의 표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람자는 자신의 구체적인 등장에 의해 변화하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방식에 따른 리얼리티와 만나게 된다. 이로써 조각은 주변 환경과 무관한 독립적인 형상에서 벗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험하는 상황이 되며, 이 속에서 관람자는 시각적, 촉각적, 청각적 감각 등을 동원하여 총체적으로 자신의 지각을 시험한다.



이와 같이 최병상의 조각은 예술과 과학의 만남 속에서 금속이라는 물질과 빛이라는 비물질의 이원적 결합을 통해 지각과 환영, 실재와 가상, 현실과 초월 등 두 영역 사이를 오가며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새로운 미학적 관계를 실험한다.




최병상 작품전
3rd Choi, Byeong Sang Exhibition
2007.7.4 - 7.16

선화랑
Tel 02.734.5839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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