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난달 2007-10 창작지원을 통해 기획된 전시로 하나의 길 위에 사실적으로 재현된 도심의 공간을 작가의 감성적 코드에 따라 표현해낸 작품들.
시간의 중첩된 잔상풍경과 기록풍경조동석 | 갤러리 스페이스 아침 디렉터
길의 속성은 여러 갈래로 나뉜 수많은 가능성의 연속이다. 목표를 향해 딛고 나아가는 걸음의 향보에는 항상 몇 갈래로 나누어지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김 없이 하나의 길을 선택하여 접하게 된다. 많은 길이 얽히고 설케 있는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길 밖에 남지 않게 되고 그 위에서만 거닐게 될 것이다. 하나의 선, 홀로된 길은 외관상으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결정지어진 운명적인 루트가 여기에 속한다. 모든 길은 하나의 길로 모아지고 하나의 사건에 집중되어지기 시작한다. 사람은 출발점과 도착점을 항상 정해놓고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는 평범한 길에 자신만의 통찰력을 발휘하여 목표에 의미를 둔다는 것을 지칭할 수 있다. 그것은 살아 숨 쉬는 삶의 체취의 길 위에서 걷고 뛰어다니고 싶은 의지에서 우러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길은 걷기 위한 무기성의 도구적 통로가 아닌, 인간의 온기가 서려있는 생명기록의 루트와 같은 것이다. 일상의 평범한 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자신 하나뿐인 인생의 기록적 풍경의 일부이다. 수많은 길의 갈림길을 거침에도 불구하고도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져 있기에 길은 하나이며, 그 길을 선택하여 걷는 인간도 마찬가지로 오직 한 사람이다. 이들은 인생의 옳고 그름의 길을 벗어나 삶의 일방통로만을 개척하며 걸어 나아가야 하는 숙명에 처해있다. 유일무이한 길은 시간의 연속성과 더불어 삶의 기록적 풍경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인간은 매번 시작지점에서 출발하여 도착지점에 도달하고 다시 되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시간의 회전성은 하나의 길과 함께 이동한다.
그렇지만 시간의 회전은 사건의 중심을 움직이게 만들며, 하나의 길 위에 시간의 사건이 전개되고 결말을 맺는 것을 도와주게 된다. 시간의 사건은 기록적 풍경과 밀접한 관계로 하나의 길 위에서 벌어지는 같은 공간의 중첩된 다른 풍경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길이 시간에 의해 기록적인 풍경이 변모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인간에게 기록적 풍경은 우림의 길과 도심의 길로 양분되어진다. 우림은 자연의 순환적인 시간에 의한 영원성을 가진 것에 반해서 도심의 길은 인간에 힘에 의한 목적지향적인 다양한 변이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도심의 길은 인간에게 삶의 길이 인공적으로 조성되고 구성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빌딩과 잘 조성된 도로의 지속적인 발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동일한 길에서의 풍경을 다른 모습으로 상이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삶의 윤택과 편리성을 찾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 그대로 녹아 드러나는 반사거울의 창과 같은 것이다. 매일 지나치는 하나의 길 위에 인간의 거침없는 목적지양적인 요구성이 빚어내고 있는 기록의 잔상이다. 김윤경은 외형적으로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목적지향적인 다변성”을 반대적 입장의 관점에서 우리의 외로운 삶의 사실성에 입각한 “고발성 기록적 풍경”으로 말하고 있다. 콘크리트의 인공적인 재료에 의해 건설되어지는 건축양상들이 새로운 욕망에 의해 되풀이되며 재건축되는 한 단면의 현상을 시간적 변화성을 염두에 둔 어긋난 조각으로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유리에 비춘 깨어진 도시의 잔상으로 조각을 집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전제이다. 사실적인 현상 풍경이 인공적으로 비추어진 허상 풍경들 사이에서 “시간이 재조합된 잔상적 풍경”과 “사실성에 비추어진 진실한 삶의 기록적 풍경”의 하나의 길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두 가지 이색적인 풍경구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시간이 재조합된 잔상적 풍경”은 사실적인 풍경을 허상으로 위장시키고 있다. 건물의 풍경은 모두가 사실에 입각한 시각적인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겉으로 깨어진 유리창에 비추어진 잔상풍경으로 모아져 있는 착각으로 보인다. 충격에 의해 깨어져 서로 어긋난 선들 사이로 서로들 간의 파편 조각 결합들이 만든 짜깁기 건물풍경이다. 현실속의 건물이 그대로 등장하는 것은 외형적으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가진 욕구에 대한 열망성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실의 시각적인 진실성에 대한 부분을 인정과 동시에 시간의 연속성에 대한 진리성을 망각하지 않은 데에서 온 것으로 본다. 이러한 두 가지(진실의 본질성, 시간의 연속성)를 특성을 통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인공적인 인간미에 대한 냉철한 비판적 비수를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성에 의해 감추어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완벽성이라는 자만성이 여기에 속한다. 스스로가 세워둔 세상에서 만들고 부숴버리는 반복과정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사실성에 입각한 진상속에서 허상의 잔상으로 정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루 동안에 걸어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려낸 건물의 풍경들은 모두 정면을 응시하도록 재조합하고 있다. 건물의 상호와 특징적인 요소를 가장 많이 지니고 있는 부분은 정문에 해당하는 앞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오고가는 출입구가 숨통을 연결시켜주면서 가장 경계심이 강한 경계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건물이 가지는 위풍당당한 모습은 일개 인간의 거만한 모습과 흡사한 이미지를 심어준다. 이러한 사람과 건물이 동일시하려는 초기적 요소는 2004년 전작 ‘내가 다니는 풍경’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하늘과 지면을 최대한 배제시키고 지평선 중심에서 수평으로 길게 건물들을 펼쳐 늘어뜨리고 있다. 그녀의 수평선에 위치한 건물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풍경을 정면만 포착하여 재결합시킨 것으로 매우 관조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 일렬로 나열된 건물 하나하나는 자신이 정면으로 바라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모아 나열한 것으로, 여기에서 주목 할 점은 건물의 정면을 응시시키는 파노라마식나열과 사진기의 시간과 빛의 역학적 변화성의 따른 관계를 살펴보아야한다. 파노라마식 배열과 함께 사진의 파노라마식 촬영은 시간개념의 차이가 깊숙이 작용하여 다양한 변화의 추이를 기다린 결과물로 보인다. 사진의 연속촬영에서 시간의 빛은 같은 피사체의 만나는 부분과 부분이 각각의 다른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관찰적사고로 얻어진 자료적 결과는 같은 건물이지만 약간은 다른 이색적인 색채와 구조물의 굴곡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변화요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마치 칼에 베워져 흘려 내려가는 조각처럼 창문과 창문이 어긋나고, 벽돌과 벽돌 간에 색들의 채도가 다른 것처럼 그녀는 건물의 피사체를 통해 시간을 베어 버렸다. 이처럼 시간을 베어버린 결과의 구조물에 대한 파격성이 이번 신작 ‘스튜디오 가는 길’에 와서는 한층 구체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차적으로 관조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건물의 형상에 포커스가 맞추게 되면서 정확한 구조물의 조합구조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확대된 이미지는 극대화로 이어져 화면은 이제 건물구조의 정면과 측면이 재조합되면서 발생되는 부피감과, 원근감에 대한 미묘한 시각적인 환영을 빠져 들게끔 한다.
“거울의 깨진 잔상”과 “사진조각의 조합된 잔상”은 피사체에 대한 투영된 잔상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모아져 사실성에 대한 허상성의 깊은 고찰로 보인다. 유리의 깨진 조각 잔상처럼 보이는 이미지의 조합은 여러 장의 사진 조합결과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사진조각을 모아 다시 건물을 세우고 붙여 길을 만드는 과정은 자신이 원하는 길의 사실에 근거한 진솔성이 가미된 이야기를 구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사진조각을 컴퓨터의 이미지로 조합 편집된 다음에 그것을 출력하여 재현하는 과정을 거친다. 사진촬영과 컴퓨터작업의 조합과 편집과 출력의 두 번의 진상에서 걸러지게 되는데 이는 의도된 잔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해석된다. 유리의 깨진 잔상이나 사진의 조합된 잔상은 결국 하나의 진상과 허상 사이에 존재하는 그녀만의 잔상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의 공간은 잔상과 허상에 대한 서로 상대적으로 맞물려 조합과 분열이 난무하고 있다. ‘전화 부스’에서의 매우 어긋난 조각들은 마치 허상에 대한 반발심처럼 극과 극으로 자기력이 발생하듯 서로 끌어당기며 밀리기도 하는 결합성과 분열성의 이중적인 면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차적으로 사진 한 장의 국한된 시점에 벗어나 사진을 겹치면서 생성되는 차별성이 있는 공간운용법을 보여주고 있다. 수평적인 정면시점조각들 간의 차이점을 극대화시켜 “등위시점”을 “상하조합시점”으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정면을 응시한 시점은 이전과 동일하나 공간 재조합 과정의 틈 사이에서 상하의 높이를 조절하여 시점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높낮이 시점차이는 수평선상의 획일적인 공간을 활동적이고 살아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장치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조합의 과정에서 건물의 밑에서 위로 올라 보듯, 하층부분은 넓게 자리 잡고 상층부분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게 결합하여 시점의 면적대비비율성 차이를 높여 시각적 대비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다. 정면의 등위시점을 조각의 결합과 분리의 원리를 적절히 이용하여 화면의 다층적인 볼륨감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조각이 지니고 있는 시간의 차이는 변화되는 현실에 대한 반발적인 표현으로 조각의 재조합과 재결합 그리고 분열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도시의 빠른 생명성으로 유입시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매일 비슷하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도시의 풍경을 이처럼 재조합과 분열을 통하여 미세한 조직의 움직임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성에 비추어진 진실한 삶의 기록적 풍경”은 인간에 대한 솔직한 외로운 담화문이다. 그녀의 도심거리에서는 인간 존재여부를 찾아 볼 수 가 없다. 오직 도심의 풍경들만이 화면의 중심에서 주인공처럼 가득 채워져 있다. 도심의 건물들은 인간의 대용물로 모든 상황전개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한다. 이들은 인간을 대신하여 외로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들 간의 연결된 건물의 유기적 구조성은 사회적 상호 유기적 관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003년 전작 ‘있는-카페’에서 홀로 중앙지평선 길 위에 등장하는 카페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고립되어 있으며 적막이 흐를 정도로 조용하면서 냉철하게 표현되어있다. 이러한 외로운 정서는 이번신작에 와서도 그대로 전달되어 건물의 구조자체에 새어나오는 슬픔이 전체화면에 전율까지 느끼게 한다. 여기에 덧붙여 간판, 전봇대, 전선, 신호판 등의 극사실적 표현은 현실성에 대한 현장성을 살려주고 있다. 또한 길의 목적지가 되는 ‘집’, ‘사곡다방’, ‘파트타임’의 장소처럼 꾸임 없고 지극히 일상적으로 평범한 곳을 재현하는 그녀는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 낸 도심 안에서 숨김없이 사실적인 인생이야기를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걸어 다니는 길은 언제나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숨겨놓은 터전으로 본 것이다. 간판에 등장하는 상호는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충전소와 같으며 그 곳에서는 스스로 즐거움과 행복을 찾기도 한다. 사실성에 근거한 묘사법은 현시점의 시간성을 그대로 옮겨 놓게 되는데, 간판의 많은 이야기가 삶의 사실적인 기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길 위에 펼쳐진 사실적인 도심풍경은 인간의 인생의 지도가 기록되어진 삶 속 체취의 길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서 건물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탐욕성과 더불어 만들어지는 현실사회내부의 외로움에 맞서 세상에 대한 표출방법으로 진실성을 가지고 침착하고 냉철하게 다가가고 있음을 대변해준다. 숨김없고 치밀하게 계산된 묘사력은 사실적 일상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관찰자의 소화력을 발휘한 것으로 인간 삶의 고발성 성격의 기록적 풍경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하나의 길 위에 펼쳐진 도심의 공간은 인간에게 있어 욕구의 발상지이며 해소지 역할을 한다. 극 사실적인 묘사는 피사체에 대한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건물과 사람이 공유체가 되어 살아 있는 기록이 되어버리는 순간을 일컫고 있다. 이러한 숨 쉬고 있는 기록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구조적 재제를 정리해 보면 1. 시간의 연속성 - 정면을 응시한 파노라마 인생, 2. 재조합의 재현성 - 진상과 허상의 잔상관계, 3. 확장된 공간성 - 등위시점의 상하조합시점변형, 4. 극 사실성 - 사실적 묘사와 기록적 풍경의 관계로 구분 지어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현실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 사실감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단연코 왜곡하지 않으려고 한다. 단지 사실성에 근거한 그녀의 감성적인 코드를 입력하여 하나의 사실적변이의 조각을 만들어 낼 뿐이다. 그것은 자신과 결부되어져 있는 모든 현상자체를 진실성이 곁든 삶의 한 조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도심은 스스로 의도한 대로 흔적이 모여 조합되고 결합하길 바라고 있다. 솔직 담백한 사실적 재현법과 잔잔한 재조합구조가 폭넓은 시야와 함께 한층 더 시끌벅적한 유기적 조합구조로 변모한 또 다른 길의 풍경이 기다려진다.
난달2007-10창작지원기획
스튜디오 가는 길
김윤경 개인전
2007년 8월 8일 - 8월 14일
2007년 8월 08일 pm 06:00
갤러리 스페이스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