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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나비, 의자로 꾸는 꿈 하계훈 | 미술평론가
남현주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장지에 채색을 한 한국화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된 소재는 우리의 민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꽃과 나비, 그리고 이러한 민화적 소재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서양의 고풍스런 모양을 한 앤티크 가구인 의자를 꼽을 수 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한 공간에 배치된 이러한 상이한 사물들이 자아내는 이질감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세심하고 정교한 묘사와 화려하면서도 깊이 있는 색채의 표현에 의해 상당부분 누그러뜨려질 뿐 아니라 그들 사이의 조형적 상호작용에 의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녀의 작품은 이러한 사물들과 그 사물들을 품는 붉은 색이나 노랑 또는 푸른 색 등의 원색과 금분이나 은분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공간으로 기본적인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한때 남현주는 우리 전통가구의 장이나 한옥 대문의 문처럼 구성된 벽걸이형 작품을 제작하여 문을 열고나서 작품을 감상하게 되어있는 형식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겉의 문을 닫았을 때의 작품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러한 작품의 문을 열면 그 안쪽에 펼쳐지는 정경은 구스타프 클림트나 알폰스 무하와 같이 장식성이 강한 아르누보풍의 서양 작가들의 작품을 재현한 화면과 고전적인 서양식 가구가 만들어내는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화면이다. 작가는 관람자의 동작과 시선을 집중시켜 문틀이 형성하는 프레임 안쪽에 시선을 모으게 하고 그곳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내면의 풍경을 드러내준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형식상으로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보다 긴밀한 감각의 상호소통을 유발시키며 주제 면에 있어서는 한국적인 것을 통해 외국의 보편적 미감과 만나게 된다는 동서 통합적 미학으로 해석이 가능하게 해준다.
남현주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장지와 분채 등의 전통적인 재료를 가지고 전총적인 이미지와 이국적인 이미지를 정성스럽게 재현해내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그것을 화가의 꿈과 희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작가는 우리 전통회회의 현대적 변용을 고민해왔다. 다시 말해서 그녀의 작품에서는 동양적 회화원리에 근본을 두면서 서양적 미감을 동시에 흡수하고자 하는 작가의 창작 의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남현주의 작품을 자세히 뜯어보면 꽃이나 나뭇잎 그리고 의자 등이 우리의 민화에 표현된 것과는 다르게 입체감과 명암이 아주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으며 허공을 나르는 나비들도 그 날개를 펼친 모습들이나 나비 하나하나의 묘사와 그들의 중첩상태 등에서 서양화적 표현과 원근법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사실적 묘사의 노력과는 다르게 사물이 놓인 공간은 매우 평면적이고 그래픽 아트처럼 보여서 정성스럽게 묘사된 장면의 사실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사실성을 저하시키는 것은 꽃이나 의자 등이 놓인 공간에서 그림자를 제거함으로써 그 사물들이 현실적인 특정 공간보다는 가상적으로 상정된 허공에 놓여있다는 느낌을 주게 되는 데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작품은 결국 현실에서 유리된 꿈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관심 깊게 보아야 하는 것은 의자들이다. 남현주는 여러 차례의
외국 여행에서 다양한 형태의 이국적인 의자에 집중해왔다. 그녀가 화면에 도입한 의자는 작가 또는 누구라고 딱히 지칭할 수 없는 존재의 암시로 볼 수 있으며 그 존재가 처한 현재의 상황을 암시한다. 그리하여 그 존재는 화면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계하며 작가의 창작의욕과 창작환경의 현실적 제약에서 오는 괴리,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접합하려는 노력과 화려한 표현력을 억제하지 못하는 태생적 기질과 감수성. 이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 다소 버거운 듯 화면 안에서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빛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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