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색을 이용한 아름다운 칼라 입체작품.
조각적 물질의 피부에 핀 색 박영택 | 미술평론, 경기대교수
최성철은 밝고 가볍고 흥미있는 조각을 선보인다. 물질에 색채와 회화적 흔적의 삽입, 친근한 일상의 소재들을 단순화시킨 형태감이 이를 반증한다. 색채와 디자인적 문양의 개입이 중력이 법칙을 받는 물질의 중량과 덩어리감을 가볍게 부양시키는 편이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부피가 은연중 지워지고 전적으로 피부에 펼쳐진 색채의 열락을 보다보면 사물은 납작하게, 평면적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물질과 덩어리에 의해 자리하는 조각의 관습적인 언어로 말해지는 조각이 아니라 전적으로 시각성에 호소하고 몸을 유혹하는 감각적 조각에의 초대다. 재료의 성질과 무게감이 지워진 자리에 홀연 색채와 무늬, 선과 면, 붓의 터치들이 가득하다. 물성의 피부를 덮고 물질의 체취를 가리고 부착된 이 색과 회화적 요소들은 조금 낯설다. 뜻하지 않은 결합으로 인해 보는 이들이 지닌 조각에 대한 기존의 관념이 조금씩 물러나 앉은 자리로 화려하고 명랑한 색과 색 면들이 풍경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 풍경들은 인체를 단순하게 변형한 것이거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나, 달팽이, 풍뎅이, 그리고 새, 닭 등을 희화적으로 만든/그린 것들이다. 아울러 그것들이 몇 개씩 연결되는 순간 이야기조각, 그러니까 설화적이고 우화적인 세계, 그 조각적 서사의 세계를 부풀려준다. 만들기와 그리기가 분리되지 않고 한 작품 안에 공존하면서 그 두 개의 영역이 물려서 자아내는 이야기 조각이다.
물론 조각이란 시각에 호소하고 몸으로, 구체적으로 밀려들지만 대부분 그 조각들은 크기, 중량, 촉각으로 채워진다. 조각은 우선적으로 만지고 싶고 그 둘레를 배회하고 그 크기와 자신의 몸을 대비하면서 가늠하게 된다. 부정할 수 없고 환영적이지 않은 조각은 실세계 자체이다. 공간을 점유하고 빛과 동선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며 직립해있는 조각이란 대부분 돌과 철, 나무로 완강하다. 더러 부드럽고 유연하고 시간에 의해 소멸하는 재료들도 쓰여지지만 여전히 조각의 물질은 영구성과 영속성을 증거한다. 시간에 저항하고 중력에 개입되는 그 물질은 현실계를 지배하고 차지한다. 그래서 조각은 우리 삶의 환경이 된다. 조각적 재료의 역사는 강고해서 지금도 조각의 일이란 단단한 재료를 구조적으로, 공간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물성의 변화를 추구하거나 물질의 표정을 다채롭게 만드는 것이자 공간에 물질을 어떻게 위치시키느냐의 문제다. 그것은 이미 조각적 재료의 성질과 그 특성에 상당부분 의존되어 있다.
반면 최성철의 조각은 재료의 성질, 조각적 구조가 중요시되기 보다는 화려한 색채가 우선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물질의 피부에 색채를 입히고 얹혀놓았다. 색은 물성의 촉각적 성질과 바탕면의 질감, 공간과의 관계보다는 우선적으로 시선에 다가와 박힌다. 종래에 익숙하게 이해하고 있던 조각적 재료인 대리석이나 철 위에 원색의 색상을 알록달록하게 칠해놓는가 하면 기하학적 구조들을 연속적으로 채워나가면서 이를 검은 윤곽선에 의해 마감시켜 마치 색유리창이나 모자이크 혹은 장식성이 강한 디자인을 연상시킨다. 어느 날 그는 당연시되어온 조각의 재료인 대리석을 깍고 다듬어 무엇인가를 추출해내거나 그 돌의 물성을 해석하는 작업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태리 까라라 채석장의 엄청난 규모에 놀라고 서구대리석 조각의 전통을 경험한 비서구국가의 조각가가 겪는 문화적 충격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미 아득한 세월동안 그 돌과 함께 해온 그간의 서양조각의 역사의 무게에 대한 두려움일 수 도 있으며 그것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에 대한 반성일 수 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모더니즘 조각 역시 조각의 물성과 재료에 대한 현상학적 이해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회피일 수 도 있다. 그가 선택한 나름의 해결책은 그 전통과 역사를 지닌 물질/조각적 매체를 지우고 덧칠하고 다른 것으로 은폐하는 방식이다. 그에게 그린다는 것, 색을 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형상화 시킨다는 의미보다는 지우기, 삭제하기, 감추기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그의 작업은 기존 조각의 재료의 피부, 표면에 기생하는 작업이다. 돌과 철의 피부에 색과 장식적 문양을 일정한 모듈로 해서 이를 반복해 점유해나가는 방법론이 그것이다. 각각의 색 면들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공간을 증식해나가고 그 하나하나의 색 면은 검은 색으로 둘러쳐지면서 견고하고 안정감 있는 색상의 궤적을 형성시켜준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본원적이고 원초적인 장식과 함께 몇몇 조각들은 수평의 대지에 누워있거나 펼쳐져있기도 하다. 바닥에 놓여진 작품들은 아이들이 올라앉아 쉬거나 놀이기구를 타듯 유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환경조각, 공공조각의 성격이 강하게 감지된다.
그에게 조각은 심오한 물성의 배치나 재료의 해석이기 이전에 누구나 쉽게 보고 즐기고 주변 환경 속에 스스럼없이 들어가 관객들의 몸과 함께 하나가 되어 일체가 되는 그런 조각의 세계, 일상과 조각의 경계가 순간 무화되는 그런 풍경을 꿈꾸고 있어 보인다.
행복한 색들로 뒤덮인 조각이야기박부경 | 선화랑 큐레이터
니키드 생팔 또는 로버트 인디애나, 올덴버그처럼 독보적인 조형성과 강렬한 색채감각을 지닌 조각 작품들은 이제 우리에게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근래 국내 조각계에서도 작가만의 개성 넘치는 양식과 감각적인 색감을 띤 작품들이 과거의 고답적인 조각 작품들과는 다른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대리석 또는 브론즈 등을 주재료로 한 구상 혹은 비구상의 일반적 조각 작업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차세대 조각가들에게 지속적인 연구와 실험의 결실로 얻어졌다. 조각가 최성철이 바로 그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러한 신념 속에서 현재 자신만의 표현양식을 찾아 작업을 이어온 지도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작가의 이름은 한국 색채 조각의 대명사 되었다. 누구에게든 그만의 강렬한 색조의 독창적인 조각작품들은 즐거움과 흥겨움을 준다.
작가 최성철은 본인의 작품에 컬러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전인 이태리 유학시절 거대한 까라라의 돌산 앞에 서서 늘 미켈란젤로를 닮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다 한다. 거대한 돌덩이에서 소름끼칠 정도로 정교한 조각 작품이 탄생되어 나옴에 경탄하며 그 또한 그러한 경지에 이르고자 열성을 다한 적이 있다.
게다가 그 시절 늘 조각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이태리 곳곳의 여러 작품들을 접한 것은 더더욱 그를 한동안 섬세한 구상조각의 길로 빠져들게 했다. 그의 작품 중 로마의 '진실의 입'을 연상케 하는 작품, '광장-절규'를 보면 신화적 이미지와 작가 자신의 혹은 한 인간의 극한 감정을 토로하듯 커다랗게 벌린 입의 모습에서 그 시절의 미의식이 조금은 엿보이는 듯하다. 그 절규처럼 그는 권태로움과 답답함을 벗어던지고 싶었던 것일까...
작가는 스스로에게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신의 경지에 이른 능력을 좇아가기에 한없이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현실을 감추듯 그리고 한편으로는 현실을 탈피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도중 그는 그가 깎아 놓은 대리석 위에 또는 스테인레스 조각위에 채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결국 현재 그의 작업에 있어 가장 큰 전기이자 의미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은 2005년 '작은 기념비전(선화랑)'에서였다. 닭의 이미지가 변형된 추상적 형태의 브론즈에 채색이 된 작품, '삭풍 지나 새 울음소리가...'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잘 견디고 봄을 맞아 움츠려 굳었던 몸의 기운을 한껏 고조시키며 희망의 소리를 내지르는 듯했다. 브론즈위에 붓으로 채색을 한 작품은 이질감이 느껴지기보다 신선함을 더해주며 산뜻한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일상의 향기전(선화랑)'에서 만난 작품, '또 다른 방'은 백 대리석의 토루소 중앙에 뚫린-기억의 편린들이 모자이크 되어 있는-듯한 공간에 다리 하나를 잃은 의자조각이 놓여 초현실적 이미지를 띠고 있다.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각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자리는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작품에 늘 착색되어 있는 색채는 작품자체가,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미를 더 부각시키는데 중요한 요소로 보여진다. 점차 그의 작품은 수많은 색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감을 엿볼 수 있다. 일반적인 돌조각, 브론즈 작품은 형태를 비롯 원석의 재질이나 덩어리의 양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있다. 그러나 작가 최성철은 그 표면을 색들로 메워간다. 모든 이로 하여금 그 이유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지만 거기에는 작가 나름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작품에 색을 첨가시키는 이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대상의 실제 자연의 모습과 가까워지고 닮아가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 최성철이 본인의 작품에 색을 집어넣은 이유는 이것과는 좀 다르다. 그는 작품의 본질과 감상자의 관계에서 더욱 친밀한 관계를 성립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우선 많은 색들로 덮여있어 형태가 가지는 본래 물질성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된 감상자가 작품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보면서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색이 뒤덮여 있는 듯 보이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칠하지 않은 면적들이 있다. 이로부터 작품의 본 재질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을 감싸고 있는 색의 조합은 마치 화려한 새의 깃털처럼 작품에 활기와 생명력, 그리고 의미 있는 서사구조를 담고 있어 늘 밝고 경쾌함을 전달해 준다.
그는 작업 초창기에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한국의 전통적인 오방색(적,청,황,흑,백)을 기본으로 원색적인 색들을 주로 작품에 사용했었다. 그 5가지 색감에 기초한 원색들의 조합은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의 추상작품처럼 선과 면으로 조합된 기호들의 집합체 같기도 하다. 근작으로 올수록 작품의 색은 원색들의 조합 사이에 중간색 계통의 색들이 추가되어 더욱 화려하게 연출된다. 최근 작품 가운데 '트로이의 꿈' 경우는 다양한 색들의 결합보다도 말과 바퀴의 형상이 조합된 스테인레스스틸의 단순한 형태 전체를 청색으로 채색하고, 그 위에 꽃가루가 흩날리듯 작은 삼각형으로 된 각양각색의 색면들이 추가시켰다. 비록 작품의 실질적인 재료 및 무게감은 은폐되었지만 색으로 전달되는 이미지는 시각적인 상징성이 배가된다.
색과 더불어 그의 작품이 차별성을 갖는 부분은 형태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주로 자연속의 생명, 인간, 추억과 같은 일상의 단편 속에서 주제를 찾는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현실의 재현이 아닌, 어찌 보면 추상적이고 기호화되어 해독이 필요한 이미지로 탈바꿈되어 있기도 하다. 근작 '화려한 외출'의 외형적 모습은 마치 지구가 아닌 외계의 한 생물체를 연상시키지만 이것은 해와 달, 별, 그리고 물고기의 결합이다. 생명의 빛과 에너지가 발산되듯 외곽으로는 삼각의 뿔처럼 돌출되어 있다. 정확히는 파악할 수 없는 요소들의 결합으로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은 관람객에게 그의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게 한다.
최근의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형상 가운데 알 모양의 반구체를 볼 수 있다. 작품 '여름날의 오후'에서 달팽이 주변으로 함께 놓인 반구의 알록달록한 알의 형태는 대지로부터 솟아오르는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근래 각박한 현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경시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다. 본인이 그러한 삶의 어둡고 무서운 이면을 바꿀 수 없는 대신 그것을 그의 작품 속에서라도 해소시키고자 한다. '알', '구'의 형태에 더욱 강렬하고 화려한 색상을 가미시켜 업신여겨지는 생명이 아닌 소중하고 강한 새 생명으로 세상에 잉태시킨다.
최성철 작품의 형태와 색은 특정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는다. 자연과 사람, 우리의 삶 속의 요소들을 작가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자유롭게 재해석하여 또 자유롭고 유쾌하게 표현해 낸다. 그의 마음처럼 그의 작품은 삶 속의 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부분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현대사회의 무미건조한 삶의 공간 속에 놓이면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 놓여진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삶 속의 여유와 즐거움, 행복감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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