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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천재를 그리다-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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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의 마지막 연인이자 화가인 잔 에뷔테론(1898~1920)의 작품도 함께 공개되는 전시. 단순화한 초상화 작가로 당대에 유명했던 ‘꽃미남화가’ 모딜리아니가 폐결핵으로 눈 감기 1년 전에 그린, 고개가 한쪽으로 기운 채 양어깨를 드러낸 수줍은 표정의 잔 초상화와 두 사람의 합작 드로잉 등 전시작은 총 150여점.

아람미술관, 국내 최초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 전시 개최
열정, 천재를 그리다-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 展


올 5월에 개관한 고양문화재단 아람미술관은 국내최초로 우수에 젖은 표정과 긴 목의 초상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 이하 모디)와 그의 영원한 반려자이자 예술의 영감이 되었던 잔느 에뷔테른(Jeanne H?buterne, 1898-1920이하 잔느)의 전시를 마련한다. 잔느는 모디의 아내로 그 동안 미술사에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모디에게 모델로서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그와 함께 작업을 하며 예술에 대한 열정을 표출했던 화가 지망생이었다. 그녀가 미술사에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에 모디를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모딜리아니와 그의 친구들>전에서 소개된 후부터 였는데 이는 잔느가 모디에게 가려져 왜곡될 것을 우려한 가족들의 반대로 그녀의 작품 및 자료들이 뒤늦게 빛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모디의 연인으로, 모디의 전시를 통해 알려져야 했던 잔느는 누구 일까?
위대한 예술은 한 사람의 창조적 고뇌 외에도 그의 예술적 성장을 위해 전력을 다한 조력자들의 헌신과 수고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남성예술가에게 뜨거운 희생과 사랑으로 그들을 조력한 여성은 작품과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이며 그런 의미에서 모디의 아내 잔느는 '모디를 위해서 태어난 여성'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람미술관의 '열정, 천재를 그리다 -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전 은 모디와 잔느의 만남, 잔느가 사랑한 모디와 그의 작품세계, 죽음도 갈라 놓을 수 없었던 그들의 행복하고도 슬픈 사랑이야기를 그들의 작품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느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이 전시는 잔느를 만난 이후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완성시킨 1914-1919년의 모디의 작품들과 모디의 예술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작품 속에 담아낸 잔느의 미공개 작업을 집중 조명한다.

최근의 기획사를 통한 블록버스터 전시들이 유명작가의 이름에 의존한 단순한 보여주기 식 전시라면, 본 전시는 '모디와 잔느의 행복하고도 슬픈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작가와 작품을 인문학적인 자세로 읽고 미시사적 일상적인 관점으로 이를 분석하고 새로이 기술한 전시라는 점에서 여타의 전시와는 전시기획적인 측면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모디의 열정, 생명의 에너지를 그리다
- 모딜리아니의 삶과 예술


이탈리아 고전미술과 철학의 전통에 뿌리를 둔 예술적이고 인간적인 품위와 강한 자긍심을 지녔던 모디. 그는 20세기 초, 다양한 미술사조가 혼재하던 유럽의 미술계에 휩쓸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모색했다.

모디는 조각가 브랑쿠지, 키슬링, 수틴, 피카소, 르느와르와 교제하였으며, 멕시코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그의 연인 러시아화가 말레브나 와도 친하게 지냈다. 그는 에콜드 파리의 상징적 존재로 이탈리아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여 20세기 초 파리에서 고독한 영혼을 예술로 꽃 피웠다. 그의 작품은 탁월한 데생력을 반영하는 리드미컬하고 힘찬 선의 구성, 미묘한 색조와 중후한 마티에르 등을 잘 표현해준다.
특히 그의 초상화는 모델의 개성을 빈틈없이 잡아내면서도, 대상을 단순화하거나 보편화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아프리카의 원시조각에 영향을 받은듯한 긴 목의 여인은 애수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모디는 15세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그가 좋아했던 조각을 하지 못하고 주위 아는 사람이나 창녀들을 모델로 주로 초상화와 누드를 그렸다.
혹자는 모디가 미술사상 가장 잘생긴 화가라고 평하기도 하는데 특히 그의 지독히 외로워 보이는 큰 눈은 보기만해도 많은 여자들의 모성본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모델이 되어주겠다며 찾아오는 여자가 끊이지 않았으며 그를 사랑한 여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미술계의 주류적 흐름과 타협하지 않는 그의 고독한 행로는 점점 더 그를 외롭게 만들어 술과 마약에 빠져들게 하였으며, 성격 또한 점점 괴팍해져만 갔다. 그런 그에게 천국에서도 모델이 되어주겠다는 그만의 여자, 잔느 에뷔테른이 나타났고 그녀로 인해 그는 구원을 받게 된다. 모디는 잔느를 만난 1917년 이후 겨우 삼 년도 안 되는 짧은 시기 동안 '생명의 예술'을 창조한다.




잔느의 열정, 천재를 만들다
- 잔느 에뷔테른의 삶과 예술


천재화가 모딜리아니가 병으로 운명하자 잔느는 이틀 뒤 8개월된 아이를 임신한 채 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하고 만다. 우리에게는 모디의 수 많은 여성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만 회자되어오던 그녀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진 건 불과 10년이 채 안 된다. 그러나 그녀의 기묘한 눈빛과 신비한 매력은 모디의 대표적인 초상화를 통해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하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목이 긴 여인. 그녀가 바로 모디 초상화의 대표적인 주인공, 잔느 에뷔테른이다.
잔느는 15살의 어린 나이에 화가를 꿈꾸며 미술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옷과 장신구를 직접 디자인 할 만큼 예술적인 재능이 충만한 소녀였다. 18세의 나이에 이미 32세 모디의 예술적 재능을 인지하고 존경했던 그녀는 14세 연상의 모디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죽을 때까지 그의 예술적 동료와 연인이 되었다. 그녀에게 모디는 예술적 스승을 넘어서 삶 자체였고 그가 더 좋은 작품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강인한 희생정신과 성숙함을 지닌 여인이었다.
잔느를 단지 모디의 수 많은 여인 중 한 사람으로 조명하는 것으로 그치기에는 그녀의 그림에 대한 욕망과 열정이 남달랐다. 어릴 때부터 드로잉에 재능을 갖고 있던 그녀는 오빠의 권유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장소 몽파르나스로 옮겨와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공부한다. 초기에는 거친 붓 터치와 강한 색상을 사용해 주로 풍경화나 정물화 작업하는 야수파 적인 작업을 하다가 모디를 만나면서 서로의 예술적 지향점이 유사하다는 것을 터득하고 인물화 위주의 작업으로 전환한다.
2000년 10월 베니스에서 열렸던 몽파르나스 화가들의 그룹전시 에 처음으로 그녀의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당시 몇 점의 정물화 및 풍경화를 제외하고 대부분 생생한 성적묘사가 두드러진 셀프 누드화였다. 이는 작품 제작 당시의 예술계에서 금기시되었던 과감한 성적묘사로 부르주아 질서를 위반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기존의 사회적 통념이나 예술계의 정형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과감하게 표현한 그녀의 작품에 여성주의적 도해법을 적용시킨다. 당시 남성의 시각을 통해 표현된 여성누드의 전형적인 표현방식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여성 스스로 자신의 누드를 거침없이 표현하였다는 데 당혹함을 느꼈을 것이다. 모디의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여성으로서만 알려져 있던 그녀는 사실은 넘치는 예술적 에너지와, 자신이 선택에 대해서 후회 없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이었던 것이다.
모디를 통해 사랑에의 욕망을 채우고, 예술적 영감과 지적 자극을 얻고자 했던 그녀에게 모디의 죽음은 결국 자신의 죽음과도 같았을 것이며 이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그녀를 자살로 몰아갔을 것이다. 희생적이고 수동적이며 순종적이라는 나약함 때문에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와 영원한 사랑을 꿈꾸었던 짧은 기간의 강렬한 기억과, 또 다른 자아로서의 모디의 부재에서 오는 고통과, 영원한 그의 모델이고자 했던 욕망은 그녀의 자살을 더욱 아름답고 애잔하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모디가 신체적 결함과 정신적 불안정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 그녀의 강인함과 인내력, 희생정신은 지금의 모디를 존재하게 만든 몇 점의 여인초상화를 그리는데 기여한다. 공허한 눈빛에 소용돌이치는 그녀의 욕망과 열정은 모딜리아니라는 천재화가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그들의 열정, 행복하지만 슬픈 사랑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드릴께요″


천재화가 모딜리아니와 그의 작품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와 그의 연인들, 특히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잔느 에뷔테른과의 관계를 둘러싼 수 많은 에피소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이로인해 픽션으로 밝혀진 일화들 조차도 수 년간 여러 이야기들로 미화된채 회자되면서 이제는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진 채 영화속 연인처럼 살다간 비운의 주인공으로 포장되어 다양한 텍스트들속에서 수 많은 인용구들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욕망은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 더 애절하게 만들어 그들의 사랑을 이 시대 마지막 비극적 로맨스로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과 지속적인 사랑이 만들어낸 거짓 일화들 속에도 실제로 그들의 삶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느껴질 만한 운명적인 일화들이 있다. 15살의 나이에 이미 화가의 꿈을 지녔던 어린 잔느는 몽파르나스의 가난한 예술가들과 교우하며, 때론 그들의 모델이 되어주며 미술학교를 다녔다.
수업후에 잔느는 카페 로통드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 어느날 깔끔한 코듀로이와 붉은 스카프를 두른 이탈리아 화가 모딜리아니를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물론 모딜리아니는 그녀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잔느의 기억속에 그는 이미 '잔느 타입'의 어떤 사람이었던 것이다. 1917년 어느 조각가에 의해 둘이 본격적으로 소개를 받기 전까지 잔느에게 있어 모딜리아니는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공원에서나, 카페에서나, 여러 번 마주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마치 우리가 항상 알고지낸것만 같아..우린 정말 닮았어…" 1917년 봄, 조각가 Chana Orloff는 어느날 화가들의 모임에서 모딜리아니에게 잔느를 소개한다. 잔느를 처음 본 순간 모딜리아니는 어떤 전율같은 것을 느꼈고, 그녀의 유난히 조숙한 모습과 반항기, 정의할 수 없는 기묘한 눈에 매료되었다고 한 지인에게 전했다. 1916년 몽파르나스에서의 가난했던 시절, 그의 열렬한 후원가였던 즈보로프스키는 그랑쇼미엘 8가에 있는 빌딩 꼭대기에 모디와 잔느의 작업실을 내어준다. 1917년에서 2년간 잔느는 수업이 끝나면 작업실에서 그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물론 이때도 그의 여성편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또 다른 여인들을 모델로 삼아 작업실로 끌어들였으며, 여전히 친구들과 술자리를 즐겨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여성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도 잔느는 크게 흥분하거나 화를내지 않았다. 그에게 타모델들과 맺는 관계는 예술적 영감으로서 불가피한 것이라고 이해했고, 그것을 통해 그의 그림이 세간에 알려지게 되기를 보다 더 바랬기 때문이었다.

어릴때부터 폐결핵을 앓던 그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자 즈보로프스키의 권유로 둘은 니스해변가로 요양을 가게된다. 거기에서 본격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으며, 이 시기 모딜리아니의 대표적인 초상화들이 가장 많이 탄생한다.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딸 잔느 모딜리아니가 태어난 것도 니스에서였으며, 목이 긴 여인으로 유명한 몇 점의 초상화들을 제작해 잔느에 대한 그의 애정이 남달랐음을 보여주는 곳도 니스였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도 잠시, 아이가 태어나고 생활고에 쫓기던 모딜리아니는 또 다시 방탕한 삶에 빠졌고, 성격도 점점 괴팍해져갔다.

결국 2년이 채 못되어 다시 파리로 돌아와야했고, 이때 이미 그의 건강상태는 극도로 악화되어었다. 돌이킬수 없는 건강 때문에 불안함과 분노 사이를 오갔던 그의 정신상태는 잔느에게도 불안함을 안겨준다. 도와주는 이도 별로 없고 재정적인 지원도 전무한 상태여서 별달리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그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다시피 도움을 요청했다. 그가 취중에 난동을 부리기라도 하면 경찰서에서 그를 찾아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겨우 몇 명의 도움으로 그가 입원해 있을 때 인근 여관에서 숙박하던 잔느는 베개밑에 면도칼을 두고 잠들었다고 한다. 다가올 그의 죽음에 대해 그녀 역시 조금씩 죽음을 준비했던 것이다. 이때 그녀는 스스로 자살하는 그림을 그리는 등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병약했던 상태였다. 병원에 실려간 모딜리아니는 입원 3일 후 사망한다. 사인은 결핵형 늑막염이었다. 그리고 근 이틀이 지난 1920년 1월 26일 새벽, 잔느는 가족과 함께 머물던 아파트 5층에서 창문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그때 그녀는 8개월된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충격에 휩싸인 잔느의 가족들은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관계를 부정하고 원망하면서 둘의 시신이 함께 묻히는 것을 반대한다. 그러나 수 많은 지인들의 요청으로 10년 뒤 결국 모딜리아니가 묻힌 페르라셰즈 묘지에 잔느의 시신을 뉘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지독한 사랑과 욕망, 그림에 대한 열정은 수 많은 지인들에게 회자되고, 그들의 추억이 되어, 여전히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수 많은 사람들에게 '화가와 여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전해져오고 있다.






◎ 전시구성

Section 1. 몽파르나스의 화가 모디와 잔느
1906년 파리로 건너온 모디의 나이는 22세였다. 당시 몽파르나스에 모여든 많은 화가들과 교우하면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던 그는 지인들의 초상과 누드를 주로 그렸다. 예술에 대해 한결같은 정열을 지니고 있었던 그의 몇몇 스케치들을 만날 수 있다. 한편 잔느의 일생에 대한 정보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오빠와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그녀의 미술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재능을 가늠할 수 있다. 그녀에게 절친한 친구이자 때로는 미술선생님의 역할을 하기도 했던 그녀의 오빠는 일찍부터 드로잉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잔느를 북돋아 몽파르나스 미술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데 일조한다. 그녀의 화풍은 일상생활의 지도를 그리는 것처럼 정확하게 묘사하여 일상적 환경을 그림의 무대로 삼은 것이 특징이며, 어린나이였지만 당대 최고의 소묘화가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수준의 감수성과 데생 감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돋보인다.


Section 2. 몽파르나스에서 피어난 사랑
그들의 만남이 이뤄진 시기는 1916년 모디가 잔느를 그린 소묘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몽파르나스의 미술연구소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데생을 공부하던 잔느가 1918년까지 몽파르나스에서 지내는 동안 이탈리안 화가 모디를 만나 사랑을 키우면서 함께 작업하던 시기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잔느는 모디에게 있어 회화라는 같은 분야에서 활동했던 최초의 유일한 반려자였기에 그녀의 예술가적 재능에 매료된 모디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으며, 모디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잔느의 다양한 작업들을 감상할 수 있다.




Section 3.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니스
1918년 5월 모디는 건강의 악화와 몽파르나스에 퍼진 독감을 피해 잔느의 모친과 함께 니스로 요양을 떠난다. 그곳에서 딸 잔느 모딜리아니가 태어났으며, 당시 둘의 소소한 행복을 표현한 많은 데생이 남아있다. 특히 이 시기에 잔느의 많은 초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니스에서의 행복은 계속되는 생활고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러한 니스에서의 생활은 모디가 친구에게 보낸 매우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돈을 빌리기 위한 내용이 대부분인 서신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던 그들의 예술적 교감은 이 시기에 탄생된 유화 및 데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모디의 초상화는 모델의 긴 목을 강조한다. 둥근 삼각형의 어깨, 긴 얼굴, 긴 코, 가늘고 긴 눈썹은 코선과 연결되어 있으며 눈매는 그윽하다. 모디의 초상화는 비슷한 듯 보이지만, 인물의 개성과 모디가 모델을 보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면에서 독특한 개성을 인정받고 있다.


Section 4.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1920년 그들의 죽음은 화가와 연인의 대표적인 일화로 현재까지 그들에 대한 관심을 부추겨왔다. 1919년 니스에서 다시 파리로 돌아와 1년 후 결핵성 늑막염으로 사망했던 모디의 마지막 작품들, 그리고 모디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던 잔느의 심경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이를 통해 모디의 사후 이틀만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잔느의 애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되어있다.


Section 5. 모디와 잔느의 삶과 사랑
모디와 잔느의 어린시절 사진을 비롯하여, 그들이 주고받았던 서신, 지인들과의 교류를 엿볼 수 있는 자료 및, 잔느의 유발 등 각종 시각자료를 집대성하여 선보임으로써 현재까지 회자되어오는 그들의 삶과 사랑, 예술적 교감을 보다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전시개요


○ 전시명 : [열정, 천재를 그리다]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 -展
○ 일 정 : 2007년 12월 27일(목) ~ 3월 16일(일) , 월요일 휴관
○ 장 소 : 아람미술관
○ 주 최 : (재)고양문화재단, 동아일보
○ 후 원 : 고양시, 문광부, 주한 프랑스대사관, 주한 이탈리아문화원
행복이 가득한 집, 네이버
○ 협 찬 : 루이까또즈, 더페이스샵, C&M 경기케이블 TV, 헤르만하우스
○ 출품작 : 총 150여점
- 모딜리아니의 유화 및 드로잉 45점
- 잔느의 유화, 과슈, 아크릴, 드로잉 65점
-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공동 드로잉 1점
-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자료 (엽서, 사진, 머리카락 등) 40여점
○ 입장료 : 일반 10,000원, 초중고 8,000원, 미취학아동 5,000원
20인 이상 단체 2,000원 할인
장애우 5,000원
만2세 이하 및 65세 이상 무료
○ 도슨트 설명시간 : 오전 11시, 오후 3시 (화~토)

※ 입장료 할인 이벤트
- 고양시민은 문화재단의 주인이십니다.
고양시민 초청의 날에는 고양시민에 한하여 지정된 지역의 날에 50%할인
- 월요야간 커플데이 (14:00~22:00) 1명의 입장료(10,000원)로 2명이 전시관람 (월요일은 미술관 휴관일로 17:00~22:00 에만 개관)
- 고양문화재단의 공연(12월~3월에 한함)티켓 소지자 40%할인
- 고양문화재단 온라인 예약시 20%할인

* 할인은 일반관람료에 일괄적용되며 중복할인 불가능









◎부대행사


(1) '화가의 아내 그리고 연인' 강연회 (1월 중 토요일 14:00~16:00, 아람마슬 지하 1층 영상실)
1월 중 매주 토요일에는 [화가의 아내 그리고 연인]이라는 주제로 화가 및 예술가와 그들의 그들의 예술을 뒤에서 지원하고 예술의 영감이 되어준 숨은 조력자들인 그들의 연인에 대한 강연회를 준비하다.

1월 12일 박영택(경기대 교수) ; 20세기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의 화가와 연인
1월 19일 전영백(홍익대 교수) ; 19세기 유럽 미술사에서의 화가와 연인
(모딜리아니를 중심으로)
1월 26일 노성두(미술사가) ; 16세기~ 유럽 르네상스, 바로크 미술사에서의
화가와 연인

(2) 퍼포먼스 '천국의 연인, 잔느와 모디' (2008년 1월 26일 16:00)
2008년 1월 26일에는 1920년 1월 24일에 사망한 모딜리아니와 26일 자살한 잔느의 87주기 위령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 이벤트

(1) 협찬사 이벤트
- 루이까또즈는 잔느 서거 87주년 기념으로 1월 26일 126번째 관람객에게 핸드백 증정
- ㈜더페이스샵은 2월 매주 금요일을 THEFACESHOP DAY 로 지정하여 2008년 졸업생(학생증 소지자)중 THEFACESHOP DAY에 방문한 관람객에게 바디크림 선물
(스위트바디모이스쳐밤 7,700원 상당, 선착순 1,000명)

(2) 발렌타인데이 초컬릿 한정판매
-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사랑을 기념하는 "모디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사랑" 초콜릿을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해 한정 판매하며 입장료 2매를 선물로 지급한다.

(3) 모디와 잔느의 추억여행
모딜리아니 영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 모디와 잔느의 만남부터 그들의 사랑의 행적을 답사하는 몽파르나스 여행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이외에도 기타 다양한 이벤트 성 행사가 준비되어 관객들을 맞을 예정이다.

*상기 일정은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열정, 천재를 그리다>展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

2007.12.27-2008.03.16

고양 아람미술관
Tel 1577-7766, 031-960-0180
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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