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일상의 승천과 천국의 강림으로 요약되는 작품세계는 일상의 고단한 삶을 행복이라는 물감으로 채색하고, 희망을 상징하는 화려한 꽃 머리칼을 휘날리며 그의 화폭 속 인물들은 달콤한 꿈을 꾸는 천국의 모습이 화면에 펼쳐져 있다.
조합된 유토피아
- ‘긁기’ 속에 담긴 희망의 기원
김미진 | 홍익대 미술대학원 부교수, 예술의 전당 전시예술감독
이종근의 그림은 사물 하나하나가 드러나도록 사실적으로 그려져 소박하게 보이면서도 매우 화려하다. 보라색 톤으로 그려진 수국의 모습은 매우 정직하게 각각 형태를 드러내고, 호박그림도 세밀하게 표현된 개체들로 꽉 채운 구성은 많은 에너지를 생성해 풍성한 느낌을 준다. 수국 그림을 보면 한 무리의 꽃은 각자의 역할이 있는 듯 그 모습이 몹시 당당하다. 섬세한 보라색 톤으로 된 꽃잎들은 네잎 크로버의 형태를 갖고 있다. 그 꽃송이 사이로 연초록색 톤으로 채색된 잎들 역시 힘차고 생명력이 넘치게 표현되었다. 수국 꽃송이들 사이에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숨어 있다. 붉은 색으로 그려진 그들은 단색의 화폭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며 사랑스런 느낌을 만들어낸다. 다른 부분에서 귀가 높이 솟은 토끼 옆모습도 보인다. 수국화의 윗부분에선 빨간 입술을 한 새도 있다. 수국덩어리들로 이루어진 세계에 언뜻 보이는 숨어 있는 사람과 동물들은 서로의 세계가 동화된 유토피아다. 이종근은 그의 그림을 통해 희망을 전달하려고 한다. 복잡한 구조물이나 형태보다는 일상 속에서 평범한 행운의 상징을 화폭에 가득 담아 놓았다. 호박, 네잎 크로버, 수국, 나팔꽃, 사과 등은 흔히 볼 수 있는 자연물로서 복이나 행운을 상징하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이다.
고통 속에 숨어있는 소망
이종근은 평범하고 친근한 사물로부터 이 세계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부분들을 탐구한다. 같은 모양처럼 보이는 호박은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호박하나마다 껍질과 알맹이 그리고 성격이 다르게 보인다. 그것의 본질적 요소를 생각하며 하나씩 만들어가는 이종근의 표현법이다. 자연에서 누렇게 완숙된 형태로 익어가는 호박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시련이 있었을 것이다. 비바람, 벌레와 많은 고난과 시련 끝에 하나의 결실을 맺은 모습이다. 그 안에는 표현뿐만 아니라 간절한 기원도 포함된다. 이종근의 작업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날카롭고 가는 선으로 물감이 긁혀 표현된 것이다. 섬세한 에칭 판화기법과 회화의 터치가 접목된 그만의 독특한 테크닉이다. 물감으로 색을 칠하고 적당히 말랐을 때 날카로운 칼로 밑에 색깔들을 긁어 채도와 음영을 만들어낸다. 마치 연필로 데생한 것 같은 보기에는 아주 편안하지만 한 터치씩 표현하게 되는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마치 하나의 호박을, 수국을 나팔꽃을 피우기 위한 생명의 산고처럼 말이다. 이종근은 평범한 사무용 칼로 작업한다. 그것은 매우 날카롭고 뾰쪽하여 섬세한 터치의 마티에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무뎌지면 곧바로 끊어 새날을 얻게 되는데 그는 사용한 칼날들은 병에 가득 모아 놓았다. 이 병에 모인 칼날들은 비록 드러나지 않지만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은 양면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편안하면서도 기분 좋은 이종근의 그림이 있기까지는 작가의 시간과 노력, 힘과 고통으로 상징될 수 있는 날카로운 칼날들이 잔뜩 쌓여 있어야만 했다. 그 안에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 초월의 의미가 있고 질료로 싸워 이상적 형태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이종근의 작가정신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이들의 행복과 건강을 바라는 개인적인 소망이 묻어있다. 이것은 그의 개인사와 관련이 있는데 아토피를 앓고 있는 그의 어린 아들을 매일 긁어 주면서 낫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 작업이다. 아토피는 그렇게 큰 병은 아닐지 모르나 가려워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에게는 많은 고통을 주는 그런 것이다.
그의 그림은 집을 떠나 작업실에서 그리는 순간에서도 계속해서 아들을 위해 긁어주며 몸이 낫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의 행위며 또 그의 아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픈 이들의 고통에 대한 치유되기를 바라는 기원으로 확대된 개념이기도 하다.
생성의 통일성
이종근은 하나의 자연물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나머지 형태도 같은 공을 들이며 성격을 만들어낸다. 그림의 중앙이나 어느 부분을 강조해 집중을 하게 하는 일반적 방법이 아닌 화면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과 조연의 역할은 없다. 그 덕분에 화면 전체는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살아 있으며 생동감이 넘쳐 보인다. 그렇다고 화면의 부조화는 아니다. 하나의 개체마다 생성의 에너지를 머금고 개성을 갖고 존재하며 그것들이 모여 통일성을 이루며 전체가 되는 살아있는 현상을 그려낸 것이다. 이것은 호박이나 사과, 수국의 하나의 개체들은 하나의 현실을 상징하면서 집합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거시적 세계를 보여준다. 각각이지만 함께 살아가야 하고 또 함께 있을 때 더욱 큰 에너지와 좋은 시너지 효과를 가지는 것이다.
희망으로 승화된 순수의 장소
이종근의 식물이나 과일과 함께 등장되는 인물은 언제나 아이들이다. 그의 아이들이 모델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꿈, 긍정, 희망, 빛의 존재로서의 상징이다. 그들을 통해 이종근은 유토피아를 구현한다. 이곳은 순수한 시간이 흐르며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작업한다. 나팔꽃줄기의 머리를 한 어린아이의 그림 역시 연속적인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막 달려 나가는 어린아이의 머리에서 나팔꽃이라는 개체들은 하나씩 생성되는 것 같다. 각각은 어려움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피어나는 현실적 존재며 그들은 그것의 결합체이다.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상호 연관되어 핏줄처럼 얽혀 있다. 마치 세포가 하나하나 살아 있는 듯 살아있는 것의 결합으로 인격체로 질서 지워져 있다. 서로 소통된 관계로서 연장된 줄기를 통해 발전하는 각각이 겪는 모험을 이종근은 그려낸다. 하나의 개체들은 함께 함으로 완벽한 유대관계가 된다. 화폭은 단순한 개체지만 거대한 복잡성으로 생성의 극을 달한다.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만족을 가져다준다. 서로 합하여 생성된 유토피아의 추상된 응결체, 존재로서의 만족이다. 그것은 복잡성으로 초월적이며 이상적인 미를 만들어낸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복을 기원하는 것을 구현해 낸 것이다. 이종근의 그림에서는 부정적인 면을 찾아볼 수 가 없다. 단지 긍정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꽃피우기 위해 연속적인 시간을 필요로 하는 긁는 기법으로 된 작업에는 강한 부정, 고통, 인내, 수고가 따른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승화된 긍정이 되었고 천신만고 끝에 나온 희망으로 전달된다.
이종근 Lee Jong-Geun
Happy planets
2008.3.20-4.2
빛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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