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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갤러리의 첫 번째 기획전. 현대를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자기소외와 고독의 심상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두 작가 윤상윤, 박상희의 작품을 소개. 이들은 현대사회 안에서 개인의 존재의 방식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통해 작가 자신 혹은 동시대인의 내면에 자리한 존재의 그늘을 특정한 풍경 안에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현대인의 일상에 나타나는 고독의 풍경 김라희|리나갤러리 큐레이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온갖 욕망의 구조로 엉켜있다. 인간 내면의 욕망은 개별된 자아의 과잉보호를 위해 파괴적이며, 권력적인 행동도 서슴없이 일삼는 이기주의를 낳게 되었다. 본능으로부터 출발한 다양한 문제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영역에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하는 원인이 되었고, 결국 공허와 허무만이 가득한 정신의 빈곤은 인간에게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움을 냉소적으로 묵살하면서 무의미하게 살아가도록 하고 있다. 이번 '내면풍경:innerscape'전시는 인간관계(Human Connection)의 유대감 상실과 자기소외로 인한 감정의 인상(impression)을 회화작품에서 어떻게 은유적으로 재현(representation)해 내는지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에 따르면 인간이 시대를 지배하는 세계관이 부재하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집 없는 시대'가 오늘날의 현대사회라고 한다.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자각(self-reflection)하게 되고, 마치 몸과 마음을 함께 둘 곳이 없는 사람이 황야를 헤매는 것처럼 고독하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집 없는 시대'의 특징은 한마디로 고독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고독 속에서 인간은 자신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과 반성을 가짐으로써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윤상윤과 박상희의 작품을 통해서 각기 다른 고독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박상희는 평범한 사람들 중 불특정 인물 하나만을 캔버스 화면에 분리시킴으로써 이야기 구성의 연결고리를 단절시킨다. 작가의 이런 거리두기는 타자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감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갖게 하고, 이를 다시 화폭에 담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익숙함을 도리어 낯섦으로 전환 하는 새로움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수영하는 사람들 중 주로 어린아이들 그렸는데, 화면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배치시켜 현대인의 미성숙한 자아 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표현했다. 과감한 공간 분할과 색의 사용은 지극히 독립적이며 파편화된 개인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본성으로부터 점차 무뎌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단절의 심상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면, 현재 영국에 유학 중인 윤상윤은 그곳에서 이방인으로 겪어야 하는 고독의 상황을 화면구성의 직접적인 요소로 연출하여 재구성한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광장의 분주한 사람들 속에, 거리에 세워진 수많은 자전거 사이에, 수업중인 학생들 앞에서 작가자신이 관찰의 대상이 된다. 캔버스 중앙에 놓여진 작가의 마음은 익명화된 주변 인물들과 함께 자신도 덩달아 안정적인 사회적 노선에 위치하고픈 갈망(渴望)으로 드러난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작가는 때때로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치는 좌절을 겪게 되는데, 이때 작가는 다소 엉뚱함을 발휘해 뜻밖의 인물들을 배치시킴으로써 자신이 처한 상황을 환기시키려 하기도 한다.
박상희와 윤상윤은 갈수록 발전하는 테크놀로지시대의 경향을 따르지 않고 본질적인 태도로써 노동집약적인 회화 매체를 선택했다는 접점이 있다. 캔버스 위에 겹쳐진 수많은 텍스트 사이로 보이는 그 무엇은 관람자에게 아련한 연민 내지는 동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며, 나아가 현대사회에 만연한 짙은 고립감은 분명 ‘나 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적용됨’이라는 경각심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한다.
개인 혹은 집단 간의 관계를 끊임없이 구축함으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사회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실상 그런 관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고독과 외로움을 굴레처럼 지니고 있다. 또한 이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위상과 입지를 강화하고자 몸부림칠수록 오히려 더욱 짙어진다. 이번 '내면풍경:innerscape'전시에서 만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미술의 화두로 자리 잡은 이러한 정신적 현상의 풍경은 앞으로 더욱 고조되어 나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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