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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초대전
한풍렬 展오광수 | 전 국립현대미술관장.미술평론가
한풍렬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동양화를 수학했다. 그의 작품이 때로 어떻게 분류되어야 할지 모르게 장르상의 구획이 애매한 것도 이같은 수업의 내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양과 서양은 역사와 문화가 다르다. 그렇긴 하지만 동양이나 서양이 다같이 회화라는 공통된 관념과 형식을 지니고 있음은 사실이다. 종이나 천이라는 지지대 위에 일정한 안료를 가해 일구어 놓은 평면형식의 예술인 한에서는 동양과 서양이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바탕의 질료나 이 위에서 시술되는 물질이나 이를 운용하는 방법상에서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동양은 오랜 세월 수묵을 위주로 한 그림이 발달되어 왔고, 서양은 유채라는 안료에 의한 그림이 성행되어 왔다. 그것은 곧 물과 기름의 차이가 엄청나게 다르듯 동양과 서양의 회화의 방법 역시 물과 기름만큼이나 그 결과가 달리 나타나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현대회화는 지역개념의 구획을 타파하고 회화로서의 통일된 개념에 이르려는 끊임없는 노력도 한편에선 전개되어 오고 있다. 두 회화 영역을 타파한다는 것은 고루한 양식 개념에서 벗어나 보다 열린 방식에서 회화를 인식하고 접근하자는 태도이다. 동양화니 서양화니 따지기에 앞서 회화로서의 완성과 밀도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한풍렬의 작업태도를 꼭 이전 문맥에 얽매여 볼 수는 없으나 그의 작품은 적어도 장르 분류상의 고지식함을 벗어던지고 회화로서의 자유스러움을 구가하려는 의식이 분명함을 엿보게 한다. 그의 화력을 되돌아보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80년대만 하더라도 그는 추상적 화풍을 지향했다. 일정한 상형적 흔적들을 근간으로 한 구성의 작품이었다. 그러다가 90년대에 이르면서 분방한 운필이 자적하는 표현적인 추상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추상적 톤이긴 하나 부분적으로 대상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간헐적으로 떠오르는 세계였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이들 암시적인 이미지들은 더욱 구체화되면서 때로는 정물로, 때로는 추상에서 구상에로 변모되어온 내역은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전이되어온 변화만큼이나 표현의 풍부한 진폭을 지닌다. 그의 화면에서 발견되는 풍부한 회화적 요인도 이 같은 다양한 경험의 누적이 발효하면서 나타나는 결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의 화면은 먹과 조개껍질의 가루와 기타 혼합재료에 의한 질료로 덮혀 있다. 단순한 종이나 캔버스가 아니라, 캔버스에 종이를 바르고 이 위에 호분과 곱게 빻은 조개껍질의 가루를 섞어 바른 일정한 막을 만든 후에 여러 색료로 시술한다. 따라서 지지대인 화면은 종이나 캔버스가 지니는 생경한 물질성을 벗어나 세월의 흔적 같은 퇴락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가 무엇을 그릴 RK는 먼저 이 같은 바탕의 생성에서부터 어떤 연유를 이끌어내는 데서 시작된다. 말하자면, 화면은 무언가 생성하는 은밀한 내면을 품고 나타나 무로서 이 위에 서식되는 이미지나 표현의 몸짓은 극히 자연스럽게 유도되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근작은, 그의 말대로 경쾌한 스케치 풍경들이 중심을 이룬다. 여행을 통해 얻어진 이국적 풍경 등이다. 중국 계림의 산악 풍경을 비롯해서 로마, 피렌체, 파리 런던, 프라하 등 서양의 도시풍경 등이다. 이들 풍경들은 이곳을 여행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겐 아늑하면서도 감미로운 한 때의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아직도 이곳들을 가보지 못한 이들에겐 이국적 취향에 잠시나마 젖어 마치 현장에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스케치란 순간적으로 파악하는 어떤 풍물의 인상기다. 그런 만큼 속사에 의한 분위기의 파악이 스케치의 요체이다.
한풍렬의 하면에서 조성되는 약간 퇴락한 듯한 바탕은 이 같은 풍물, 오랜 세월의 고풍한 도시 등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 무거우면서도 감미로운 우수가 깔린 도시의 분위기는 재빠른 운필과 색조의 적절한 가미에 의해 선명하게 걷잡힌다. 바랜 대기가 있고 서늘한 바람이 있고 부서지는 햇샇이 있다. 두고 온 세월 같은 아득하면서도 감미로운 정서가 화면을 누빈다.
한풍렬의 작품을 앞에 하고 있으면 재기 발랄한 감성의 작가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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