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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영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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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STAL Seeing-기억과 이미지의 조응에 대하여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9점의 유리구 영상 설치작품인 김희선의 신작 <Crystal Seeing>은 기본적으로 작가가 다수의 지인들과 직접 인터뷰한 넌 픽션 다큐멘터리 형식에서 출발한다. 이 신작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개인사에서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에 관한 것이다. 작가는 이전 작업들에서부터 일관되게 인간과 그들로부터 비롯된 현상에 대한 깊은 사유를 창작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최근 작가는 현실과 허구를 뒤섞고 사생활과 타인의 삶의 경계를 허물며 일상적인 사건들을 확대시키고 조작하여 보편적 교감을 창출하는 독특한 작업을 시도해 왔다. 브레인 팩토리에서의 신작 역시 애정이 짙게 베인 이웃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이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그녀는 타인들의 소중한 기억을 우리 앞에 들고 왔다.

어찌 보면 소소한 사건들을 숨쉬듯 편안하게 들려주는 사람의 광채를 머금은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 영상이 떠다니는 모니터는 전시장 바닥에 놓인 서로 다른 크기의 유리구들 속에서 은은하게 맑고 투명한 세피아 톤, 혹은 에메랄드 빛을 뿜어내고 있다. 작가는 영상이미지의 사실성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오히려 진정성을 강조하는 문학적인 수사법을 택하고 있다. 마치 행복이라는 감정의 빛깔이 양 무채색으로 탈색된 인터뷰 영상은 매우 느리게 흘러가며 그 때의 절정의 순간을 물방울 모양 유리 캡슐에 붙잡아두려 하고 있다. 거기에서 이격된 각각의 목소리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며 조화와 부조화의 경계에서 웅얼거림의 하모니를 이룬다.

누군가의 앞에서 자기의 은밀한 기억에 대해 털어놓는 일 만큼이나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어보면 그와의 짜릿했던 스킨쉽, 최고로 광택을 낸 자두를 선배에게 건네며 두근거리는 연정, 젖 먹는 아이와의 눈빛 교감 등 각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어렵사리 털어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사실 둘 사이의 대화를 통해 예상할 수 있거나, 아니면 기대치 못한 ‘대답’을 들으려고 일반적인 인터뷰 방식을 동원하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대화를 타고 흘러가는 타임 라인 중 우연히 찾아오는 아주 찰나의 순간에 넋이 나가 듯 기억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표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전혀 예기치 못한 일에 대한 탄성의 순간이라고 할까. 사람의 뇌에 죠그 셔틀을 붙이지 않는 한 우리는 뉴런 깊숙이 저장된 정보의 더미에서 기억이란 것을 자유자재로 끄집어 낼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해 마음대로 조정을 할 수는 없을지언정 기억은 어제 오늘 내일의 순서로 어김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거스르는 힘을 갖고 있다.

기억의 조각은 이미지에 대응한다. 여기서의 이미지란 마치 모래밭에서 선광한 사금가루가 반짝거리는 사금가루처럼 빛이 나며, 귀한 보석의 결정과도 같은 투명함을 띠고 있다.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 기억을 재생하는 현상을 플래시백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뇌리를 스치는 과거에 관련하여 저장된 이미지의 시리즈가 순간적으로 봉인이 풀리면서 재생되는 현상을 플래시백(Flashback)이라고 하는데, 향수 차원으로서 과거의 기억을 현재 속으로 끌어들이는 다소 퇴행적인 영화적 장치로 이용되기도 한다. 희노애락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써 우리의 현실은 우울하고, 적응하기 어려우며 그래서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여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한 욕망의 결핍이 과거를 현재 속으로 끌어당기어 이 둘을 병렬시키거나 융합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여기 그녀의 작품 속에서는 본래 공존할 수 없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과 이미지가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시공간이 열리며 존재와 이미지, 그리고 남겨진 기억의 의미를 묻는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곳이 튀어나오는 풍선 효과처럼 김희선이 건드린 타인의 행복감에 대한 기억은 ‘행복한 눈물’이라는 작용과 반작용의 단순한 작동원리를 넘어서 스스로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교차를 거쳐 의외의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제임스 엘킨스의 흥미로운 저서 <그림과 눈물>에서 말하기를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른바, 감동적이거나 아름다움에 압도당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상태를 견딜 수가 없었다는 대답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영상 속에서 황홀한 표정을 지우면서도 눈가의 이슬을 머금고 있는 인물의 기억 이면에는 인생의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여러 겹 겹쳐 있으며 어쩌면 쓰디 쓴 아픔이 담겨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희선은 삶과 예술의 관계라는 묵혀 두었던 질문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한 기억을 소환하는 순간과 우리가 최고의 예술을 체험할 때의 희열이 일맥상통한다고 말한다.

- 최흥철(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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