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위상 – 대지> 에서 <위상 – 회화>까지
- 세키네 노부오(關根伸夫)의 작품에 대해

세키네 노부오란 이름은 60년대 후반 일본에서 등장한 <모노파> 란 미술운동과 더불어 우리들에게 알려졌다. <모노파>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각도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그것이 서구의 예술 문맥에서 벗어나 최초로 독자적인 일본의 미술운동으로 자부되는가 하면, 모노파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극단적인 부정의 입장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모노파를 이야기할 때 한국인 이우환과 재일 한국인으로 나중에 일본에 귀화한 하야시 요시후미 (林芳史, 애석하게도 지금은 타계하였다)와 세키네 노부오(關根伸夫)가 먼저 언급된다. 이들은 어느 시점에 의기 투합하여 사물을 보는 관점에서의 혁신을 유도한 <모노파>란 흐름을 유도하였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세키네 노부오의 <위상 – 대지>의 발표에서였다. 68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일정한 대지를 원통형으로 파서는 이 흙을 고스란히 옆 자리에 같은 원통형으로 쌓은 것이었다. 이 기발한 흙의 작품 (일종의 대지예술 또는 환경예술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은 당시 일본 미술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이로서 생각과 행동을 같이 하는 몇몇 예술가들이 모였으며 이를 모노파라 명명하기 시작했다.

<모노파>는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미술운동으로서 근래에 와서는 세계 여러 곳에서 회고전이 열린바 있다. 2000년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특별전으로 한국의 단색파와 일본의 모노파전이 기획된 바 있다. 한국의 단색파와 일본의 모노파는 전혀 다른 문맥에서 전혀 다른 지역에서 전개된 운동이긴 했으나 때때로 이를 묶어 보려는 외국인들이 없지 않다. 심하게는 한국의 단색파가 일본의 모노파의 감화를 받은 것이란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도 없지 않다. 아마도 <모노파>를 이론적으로 다듬고 앞장 서서 밀고 나간 이우환이 한국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우환과 동조한 하야시가 한국인 출신이었다는 것이 묘하게도 이 두 운동체를 묶으려는 착각현상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대를 통해 한일 교류관계가 활발하게 전개되었을 때 이 두 운동이 서로 정신적으로 조우하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세키네는 70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 작가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유럽에 진출하여 약 2년간 여러 곳에서 전시를 가지면서 체류하였다. 국제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획득한 것은 이 무렵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귀국하자마자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어떤 관계도 없을 듯한 <환경미술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환경미술이란 새로운 영역에 투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럽 체류시 그가 어떤 영향과 감화를 받았는지 모르나 적어도 그가 언급하고 있는 대목을 살펴보면 환경미술에 대한 자각이 유럽체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미스마 도시타카(水間敏隆)가 “모노파의 발전형으로 필드를 확대시킨 것이 환경예술이며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라고 애써 모노파와 환경예술을 연계시키는 점에서가 아니라도 세키네의 영역이 더욱 확대된 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이 방면의 많은 작품이 생산되었다. 그리고 그가 한 말 “모든 조형과 창조의 의식이 자신을 에워싼 환경에 무언가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음미케 하는 것으로 퍽 인상적이다.

그는 최근에 와서 <위상 - 회화>란 <위상 - 대지>와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회화 영역을 발표하고 있다. <위상>이란 개념에 대한 그의 언급을 참고해보자. “세계는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무묘(蕪妙)한 지대이다.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곳의 인식을 깊이 해 갈 때 근대적인 창조 개념의 허무감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행위라고 하는 것은 위상 변환(位相 变換)을 응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위상을 변환시키는 것인가? 그것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무묘(蕪妙)한 지대를 사람은 느끼고 싶기 때문이며 선자(禪者)가 말하는 <깨달음>과 동등하고 근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다. 그래서 “연속된 피막으로서 회화를 파악할 때 이를 <위상회화>라고 한다”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이미지의 표상도 아니고 평면 표현으로서의 회화도 아닌 표면을 없애지 않고 피막의 변환만 이루는 회화라는 독특한 개념이 창출된 것이다. 이점에선 지구 표면을 요철의 변환을 시도한 <위상 - 대지>와 선명한 맥락을 이루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