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평창동 작업실을 가득 채운 무수한 꽃그림을 보면서 작업 양에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림 그리는 일과 삶을 부단히 일치시켜나가는 남천의 생활에서 다소 놀랐다. 돌처럼 앉아 고개를 묻고 꽃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의 큰 몸을 떠올려 보았다. 창밖으로 아름다운 산의 능선이 눈가에 매달려 내내 황홀하고 마당에는 꽃들이 피어있는 좋은 봄날이다. 그러나 정작 작업실에는 꽃이 없고 다만 그가 그린 꽃그림만이 환각처럼 벅찬 향기를 안긴다. 산수화나 매화 그림이 좁은 방에 거한 이에게 천하의 절경을 명상적으로 소요케 했으며 은은한 매화 향기를 몽환적으로 진동시켰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자연을 방안으로 들여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그림은 일종의 산수화나 사군자의 연장선상에서 그려지는 것 같다. 그는 그가 그린 꽃들과 함께 독락(獨樂)의 경지에 거한다. 그림 그리는 일로 소일하고 그 일에서 지극한 즐거움을 맛보고 홀로 즐기는 그런 그림그리기이다. 노년에 얻은 이 독락이 문득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꽃그림으로 발화한다.
수묵 그림을 그렸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붓을 가능한 한 자연스러운, 지극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운영한다. 아니 그것은 최소한의 인위적 요인을 거느리고 숨 쉬듯,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그렇게 무심하고 편안하게 끄적거린 그림이다. 툭툭 치고 나가는 붓질과 붓질이 모여서 얼추 꽃이나 풀, 줄기를 떠올려주고 더러 나비를 보여준다. 자잘하고 촘촘한, 무심하고 자유로운 선들의 맛이 붓에 실려 탄력적인 소리를 낸다. 그 붓질에 색채가 실려 여기저기 환호성을 지르듯 환하다. 민화에서 만나는 소박하고 해학적이며 더없이 건강한 미감을 이 그림에서 새삼 만난다. 그는 민화가 보여주던 그 매력적인, 자연스러운 꽃그림을 싱싱하게 환생하고자 한다. 그것은 졸박하면서도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화면을 가득채운 꽃들은 전면적으로 펼쳐져 보는 이의 눈을 꽃, 자연계로 직접 대면케 한다. 눈과 코를 박고 이 꽃들을 보아야 한다. 개별적인 꽃이 아니라 다양한 꽃들이 모여 이룬 거대한 자연풍경이다. 그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고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 저 꽃은 저 꽃대로, 이 꽃은 이 꽃대로 모두 곱다. 그 꽃 안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 자연의 엄정한 이치와 오묘한 섭리가 그윽하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꽃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자연계에서 받은 인상의 총화이자 결정 같은 것이다. 보고 그리는 꽃은 특정한 꽃에 저당 잡히기 쉽고 그 세부적 모습을 재현하는데 마음을 빼앗긴다면 그가 기억 속에서 추출해 길어 올리는 꽃의 자태는 꽃의 기호이자 상징 같은 것이리라. 물처럼 살고자 한 데서 파생한 것이 수묵화였다면 이 꽃그림은 지천에 피는 흐드러진 꽃과 풀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고 다투지 않으며 싱싱한 생명의 경이를 보여주는 자연의 모습처럼 살고자 한데서 가능한 것은 아닐까? 꽃들이 새삼 그에게 새로운 인생관. 세계관을 깨우쳐준 것 같다.
대지에서 수직으로, 햇살에 가닿고자 키를 다퉈 정점에서, 극한에서 피어버린 꽃들의 그 마지막 지점이 그의 경계다. 햇살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솟아올라 드디어 멈춘 곳에서 그는 마지막 생의 절정을 뿜어낸다. 그리고 그는 경계에서 지극히 가볍게 하늘거린다. 제 몸으로 중력을 이겨 올라간 자유로운 자리에서 마음껏 기지개를 켜듯 발아했다. 뿌리에서 그곳까지의 거리가 그가 거느린 온 생의 지도다. 이 꽃, 저 꽃이 죄다 피었고 그 모두가 차등 없이 아름답다.
“꽃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입니까. 꽃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꽃을 그리고 있지요. 즐겁게 생각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하는 생각 때문이에요.”
먹이 품은 오묘한 색채의 매력에 흠뻑 취했다가 문득 자연의 지극한 색채의 세계를 만난 그는 자연스럽게 그 색채를 그리고 있다. 그는 화가라 당연히 색채를 동경하고 색채의 매력을 따라간다. 검은 색에서 원색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지나는 말로 그는 중. 고등학교 시절에 그린 수채화 체험을 얘기한다. 그 경험과 색에 대한 감각이 지금의 그림을 새삼 가능하게 한 것 같다. 이 꽃그림이 지치도록 그려지면 그는 다른 세계에 빠질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의 또 다른 그림을 만날 것이다. 어디선가 했던 그의 말이 환청처럼 떠돈다.
“그림도 사람도,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처럼 변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