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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엽 전 - 빛의 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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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공간에 담는 세상의 모든 것



유석우 | 월간미술시대 주간


지금은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라있지만 전준엽만큼 조영방식을 크게 전환한 작가도 드물다. 80년대 초, 민중 미술이 태동했을 때 그는 “임술년” 멤버로 민중미술을 선진에서 이끈 작가였다. 그러나 그는 민중미술이 지닌 한계, 순수 조형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구호가 두드러진 포스터 류의 화면을 제작해야 한다는 현실에 회의를 느꼈다. 그러면서 그는 순수미술의 새길을 찾아 나섰다. 민중미술 편에서 볼 때, 그는 배반자였다.



그러나 그가 거부감을 느낀 것은 반 역사, 반 사회, 반 민중, 반 민주에 대한 구호가 아니었다. 그 구호 아래 본령으로 일어버린 예술에 대한 회의였던 것이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렸어도 그것은 작품으로 명작이었다. 또 조국 스페인에 대한 애정과 반전, 반독재의 투철한 의식을 지녔지만 피카소는 순수예술가로서의 사명을 다한 작가였던 것이다.



전준엽의 작가적 변신은 그런 의식의 토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면 된다. 그의 변신에 대한 평가는 보든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그의 그런 결단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는 사실 역사의식이나 민중의식을 포기했던 게 아니다. 그런 의식들을 녹여 더깊은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변신 이후의 작었인 “빛의 정원에서” 시리즈는 역사의식, 민중의식, 그리고 인간주의를 포괄하고 있으면서 탄탄하게 조형의 격을 갖춘 역작들인 것이다.



90년대 중반까지의 작업들을 우리의 고분벽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낸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역동적이고 사색적인 그 화면은 우리민족의 삶의 의식과 세월을 근간으로 한 조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의 애환과 풍경, 그리고 소멸되지 않는 민족혼을 상징적으로 조합한 화면이었다. 어쩌면 그때까지의 작업을 그가 조직으로서의 “민중미술”은 떠났지만 의식으로서는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대의 직유적이고 구호적적인 개념이 아닌 순수미술로 잘 포장된 것이긴 하였지만, 1995년을 기점으로 그는 “신세한도”라는 가제가 붙은 작품들을 발표한다. 새벽처럼 맑고 신선한 색감과 단순한 구도의 이 작품들은 단숨에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양화이면서도 동양화의 수묵담채가 보여주는 정갈하고 청신한 화면은 축약된 자연과 인생이 오버랩된 감동을 주었다. 절제된 선과 면을 통하여 생을 돌아보게 하는 화면의 매력이 많은 애호가들의 시선을 끌게 했다. 퇴화된 우리 땅 특유의 흙, 세월을 다 안은 듯 의연하게 서 있는 소나무, 순수의 표상같은 푸른 수심, 경쾌하고 장렬한 폭포의 낙하, 그리고 호수, 강물, 광야, 나그네, 새와 꽃잊, 이런 대상들이 등장하는 그림들은 새로운 회하의 패턴을 제시해낸 것이다. 여타의 자연주의와는 다른 어찌 보면 관념적인 구도라고 볼 수 있는 조형은 전준엽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창적 세계라 하겠다. 그의 그림의 특징은 많은 대상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강도 하나고 폭포도 하나고 배도 하나다. 새도 하나, 사람도 하나, 소나무, 꽃도 하나다. 그러나 그 하나의 것들은 수천 수만의 것들을 포괄하고 대변하는 상징이자 의미이다.




자연도 인간도 원초의 고독한 표상으로 그려져 있다. 그렇게 그의 화면은 특유의 색과 면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면서 한편 비어 있다. 그러나 비어 있는 공간엔 모든 것이 존재한다. 인생의 모든 모습들이 다 들어 있다. 햇볕, 바람소리, 평화와 적요, 꿈과 우수가 다 들어 있다. 간명하면서도 생의 모든 정경을 다 느끼게하는 그림, 시원의 어느 마을처럼 적막하게 정지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하는 그림, 그래서 전준엽의 그림은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근래 그의 그림들은 더 사색적이고 묵인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금방 대바람소리가 들릴 것 같은 푸르게 침잠된 대숲 곁을 지나가는 사람, 거기서 우리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범속의 때를 벗어난 그 화면은 탈문명, 탈현실을 희구하는 현대인에게 청량감을 선사한다. 그렇게 그의 그림은 구원과 평화와 안식의 메시지를 알리고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보면 볼수록 무한한 자연의 묘미와 흥취를 느끼게 하면서도 인생의 화면을 늬끼게 하는 것은 이 작가의 장인적 능력일 것이다. 그런역량이 인증되어 한국 미술작가상, 청작미술상, 국제아트페어 특별상, 한국현대미술제 초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고 보여진다. 양화적 아류를 뛰어넘어 동양적 사유와 감성을 정연하게 조형화한 작업적 성과는 오늘 그를 우리 화단의 주요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요인이다.



세계미술 속에 우리는 어떤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을 우리는 전준엽의 작업을 통하여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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