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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2008 한국추상회화 50년의 궤적을 되짚어 보고 한국추상미술의 미래를 가늠하기 위한 전시. 서울시립미술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기획되었다.
<한국추상회화; 1958-2008>전은 한국현대미술 융성의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58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추상회화 50년의 궤적을 되짚어 보고 한국추상미술의 미래를 가늠하기 위한 전시이다. 또한 올해는 서울시립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이 되는 해로서 이를 기념하여 특별히 기획된 전시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한국추상미술이 걸어온 반세기를 <공간과 물성>, <행위와 유희>, <반복과 구조>, <색면과 빛>이라는 네 개의 테마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지난 50년간의 한국추상미술의 무대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작가들 가운데서 위의 네 개의 테마에 적절한 작가 44명의 작품 80여점을 추렸다.
<공간과 물성>의 섹션은 회화의 평면성과 재료의 특수성의 문제를 꾸준히 탐구해온 작가를 중심으로 뜨거운 추상미술에서 출발하여 점차 독자적인 방법론을 확립한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행위와 유희>의 섹션은 격정적인 표현추상에 감화를 받은 작가들과 후기 표현적인 추상을 지향하는 작가들로 이루어졌고, <반복과 구조>의 섹션은 우리의 추상미술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으로서 단색파의 패턴화와 구조로서의 평면을 의식한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색면과 빛>의 섹션은 일련의 색면 추상의 작가들과 빛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작가들로 구성되었으며, 빛이 지닌 계시적인 감흥을 작품 속에 원용하려는 경우와 빛의 순수한 현현에 집중하는 경우를 엿볼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기획한 <한국추상회화: 1958-2008>전은 한국 전후 추상미술의 역사 50년을 되돌아보는 전시라는 점 외에도 그 접근 방식을 과거의 서구식 미술사조에 맞추는 형식을 배제하고 추상미술의 형식논리에 근간이 되는 네 가지 요소를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의 현대 추상회화의 정신과 형식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보고자 하는데 의의를 갖는다. 또한 이번 전시는 과거의 분류방식을 과감히 해체시키고 새로운 경향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국현대미술사의 흐름을 조성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1) 공간과 물성이제는 전설이 돼버린 말이지만, 한국현대미술은 미군의 군홧발에 묻어서 들어왔다고들 한다. 이는 1950년대 당시 일본의 미술수첩과 미군의 라이프지에 소개된 유럽의 앵포르멜과 그 미국식 버전인 추상표현주의가 한국현대미술의 태생적 배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빗댄 표현이다.
이 전시에 초대된 상당수의 작가들은 화력을 시작하는 초기에 이런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와의 영향관계를 수용했던 편이다. 유럽에서의 앵포르멜이 전후의 피폐해진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그와 유사한 배경 위에서 그 심리적 정황을 비정형의 형식에 담아냈는가 하면, 이로부터 나름의 독자적 형식을 추상해낸 것이다. 흔히 뜨거운 서정추상으로 범주화되는 이 경향은 그룹 악튀엘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차가운 기하학적 추상으로 정의되는 또 다른 경향이 그룹 오리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요샛말로 주정주의와 주지주의의 두 경향이 각각 앵포르멜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로서 현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반성의 결과가 1970년대 모노크롬 회화의 경향으로 나타났다. 주지하다시피 모노크롬 회화는 사물현상 자체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모노파와 연관돼 있으며, 그리고 최소한의 형식요소에 천착한다는 점에서는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중첩된다. 서구 모더니즘의 형식논리와 동양의 미학에 연유한 관조의 정신세계(스스로 존재하고 드러나는 사물현상을 관상하는 어떤 경지)가 모노크롬 회화 속에 어우러져든 것이다.
세부적인 차이를 도외시한다면, 이렇듯 1950, 60년대의 앵포르멜 경향과 1970년대의 모노크롬 경향이 한국추상회화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이후 추상회화의 다양한 경향들은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로부터의 일정한 변용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공간과 물성의 참여 작가들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추상회화와는 다른 공간의 경험으로 우리를 유도한다. 이를테면 정창섭과 하종현의 작품에서는 캔버스와 그 위에 얹힌 이미지의 지층이 분리되지 않는 일체화된 오브제로 나타나기도 하고, 박서보는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이 무화되기도 한다. 윤명로는 행위와 호흡이 합치되고, 이반은 회화의 흔적이 생태를 표상하는 등의 유기체적인 속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작가들은 재료 고유의 물성을 강조하는데, 함섭은 콜라주를 통해 그리고 한영섭은 탁본을 통해 한지의 본성을 드러낸다. 더불어 조문자는 추상과 형상이 그 경계를 허물고 서로 어우러진 유기적인 화면으로써 흡사 생활일기와도 같은 사사로운 감정을 담아내기도 하고, 김수자는 일상사에 바탕을 둔 여성적 감수성을 반영하며, 때로는 차우희와 같이 자기 내면에로의 여행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로부터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가 접해있는 경계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이를 넘어서는 변용 가능성이 엿보이며, 단순히 모노크롬 회화로 환원되지 않는 차이 나는 인식과 이에 따른 다양한 형식의 지점들이 확인된다. 그럼으로써 순수한 추상이나 절대추상의 존재를 의심케 한다. 추상이란 실은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재현적이고 서사적인,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요소들이 최소한으로 압축되거나 걸러진 형식임을 재확인시켜준다.
■ 참여작가 : 박서보, 정창섭, 하종현, 윤명로, 이반, 차우희, 조문자, 김수자, 한영섭, 함섭
2) 행위와 유희 한국의 전후 추상회화에 대해 논의할 때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것이 그 형성과정에서 나타나는 앵포르멜 또는 추상표현주의와의 상관성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단 전후 추상회화 뿐만 아니라 20세기 한국 미술사 전반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인간성에 대한 반성과 그 대안으로 떠오른 현대적 실존주의는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후 추상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상황적 동질성을 형성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한국의 현대 추상회화는 미군정하에 시작되었다.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은 한국의 미술계를 변화시킨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사실 역시 화단에서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고대 이래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영향권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던 우리의 역사적 상황은 부정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사실이지만 외래문화의 유입 자체가 한국 문화의 특성을 결정 지우는데 부정적인 요소만은 아닐 것이다. 전후 앵포르멜 경향의 유입은 한국 현대미술에 나름의 성과를 제공했는데 그간에 미술계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들을 보면, 우선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미술은 당시 국전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아카데미즘 미술에 반기를 들고 한국 현대회화의 지평을 확대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담당했다. 반국전을 내세우는 단체들로서 현대미협, 모던아트협회, 신조형파, 백양회, 60년미술가협회 등을 중심으로 추진된 실험정신이 추상미술에 대한 조형의식으로 집단화될 수 있었다. ‘국전 대 재야’라는 이원적 구도는 모더니즘 계열을 폭넓게 수용한 현대작가초대전에 의해 형성되었으나 앵포르멜적 경향은 첨단의 아방가르드로서 새로운 분위기를 주도했다.
전후 앵포르멜 경향의 한국 추상회화가 남긴 가장 큰 성과는 ‘행위와 유희’에 나타나는 정신성에서 발견될 수 있다. 행위와 유희는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의 근간이 되는 미학적 원리였다. 이른바 ‘자발적 제스추어’, ‘서체적 기술방법’, ‘표현적 재료사용’, ‘설명적 형상의 거부’ 등과 같은 특성은 ‘또 하나의 예술’, ‘서정적 추상’, ‘타쉬즘’이라는 다양한 용어의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전후 추상미술의 경향적 동질성을 찾을 수 있는 요인들이었다. 한국의 전후 추상미술이 보여준 행위와 유희는 구성적 추상과 대립적 관계를 보여주는 서구의 미술사적 문맥이 아니라 상황적이고 따라서 보다 자유로운 즉흥의 행위와 유희로 특징되어 있다.
유럽의 앵포르멜과 한국의 전후 추상미술의 경향을 비교할 때 차별성을 보여주는 준거는 바로 행위와 유희에 나타나는 본능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성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유럽의 앵포르멜 미술은 사실주의의 조건을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었고 전통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획득한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작품의 제목뿐만 아니라 회화의 독자성(identité), 전통적 규칙으로서 구도(composition)나 구성(construction)등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전후 추상미술에 나타나는 행위와 유희는 전면적이고 본능적인 면이 있다.
■ 참여작가 : 이수재, 오수환, 이강소, 석난희, 노정란, 곽훈, 신성희, 이두식, 장성순, 최욱경, 김인중
3) 반복과 구조자연적 형태가 소멸된 화면의 추상은 조형과 물질 자체에 대한 관심을 수반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현대 한국추상회화의 전개에서는 형태나 구성 등 순수조형에 대한 관심보다는 추상회화에 담긴 정신성에 집중되는 현상을 본다. 이는 구상에 담긴 자연 형상의 재현이라는 특성에 대한 반기이지만 전통 회화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 복고적인 성향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초기 앵포르멜이나 뜨거운 추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에서 부각되는 붓질이나 공간에 대한 파악 등은 그러한 면을 강하게 반영한다.
비정형 회화로서 앵포르멜이 그토록 빠른 속도로 한국 화단의 젊은 작가들을 잠식하여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당시 기성세대가 고수하던 세계가 구상이었기 때문이다.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양성되고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통해 기반을 다진 미술계의 중심세력은 이른바 아카데미즘이라는 구상적 경향의 작가들에 경도되어 있었다. 따라서 기성세대에 대한 반기가 바로 구상의 상대편에 있는 세계, 추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편 추상미술은 구상적 형태를 해체한 지역에 남게 되는 미학적 기준인 정신성이나 심미성을 특징으로 하기에 한국의 전통이라는 맥락과 연계 지을 수 있었다. 전통회화는 시각의 문제가 아닌 심상의 표현이 주제였기에 동양사상과 추상은 불가분의 관계로 이해되었고, 추상미술이 결코 서구적인 것만은 아닌 양식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전후 세계 미술에 대한 편입과 민족적 양식 수립이라는 정체성의 문제에 봉착해 있을 때 추상은 기성에 대한 반기이자 민족적 미술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였다.
1950년대 후반의 추상이 비정형회화에서 출발한 것이나 붓에 의한 선의 표현방식에 집중하거나 여백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 화단의 주요과제였던 민족미술의 수립 또는 한국적인 것의 표현이란 무게는 작가적 양식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쳐, 선과 색에서 동양적인 정신 혹은 구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여백이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켰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향토색과는 다른 차원의 것으로 외부적인 요소보다는 내면에서 표출되어 형상화하는 내용에 치중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 시기 추상회화에서 일군의 작가들은 반복적인 선의 사용이나 중첩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의 선으로 이루어진 화면이 아닌 중첩이나 반복은 서구적 서체추상과 차별되는 점이다. 또한 표면의 공간, 이면의 공간을 추구하는 일련의 경향은 여백의 영역에 속하는 추상의 정신적인 면에 집중한 것이다. 이러한 두 영역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중첩을 통한 두께의 추구와 캔버스 자체의 표면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생성하는 화면의 구사를 들 수 있다. 어떠한 표현 방식을 택하든 이들은 반복과 구조라는 형식을 차용하여 추상을 전개한다.
표현방식에 있어 반복이라는 방식을, 내용에 있어서는 화면의 구조 내지는 구축성을 추구하는 일련의 작가들을 다시 분류하여 볼 때 공간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들은 윤형근, 이봉열, 최명영, 김태호, 진옥선을 들 수 있다. 또한 반복된 형태를 통해 화면에 깊이와 공간을 형성한 주요 작가들은 정상화, 이태현, 이승조, 이정지, 이동엽, 김재관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은 색채의 절제와 표면에 대한 거리감 유지를 통해 광대한 여백과 깊이를 생산하여 한국적 정신성을 드러내는 한국 현대 추상회화의 한 특징을 보여준다.
■ 참여작가 : 윤형근, 정상화, 이봉열, 최명영, 이승조, 진옥선, 김재관, 김태호, 이동엽, 이태현, 이정지
4) 색면과 빛‘색면과 빛’을 주된 조형어휘로 사용하는 화가들은 자신들의 스타일을 수십 년간 꿋꿋하게 견지해왔다. 이들은 대체로 일제시대에 태어났지만 해방 후 설립된 한국 대학에서 수학한 1세대들이며, 작품의 형식상 모던한 감각이 공통적으로 점검되는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추상 화가들이다. 특별히 추상 어휘를 작업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이들 화가들은 오랜 작품생활에서 오는 경륜과 함께 조형언어의 조탁(彫琢)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일본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선배들과 달리 본격적으로 추상에 매진하여 구상 일색의 화단 지형도를 바꾸고 참신한 감각으로 추상회화를 풀어냄으로써 각자의 정신세계를 표상하거나 회화구조를 깊이 있게 탐사해가고 있다.
빛을 추구하거나 즐겨 사용하는 화가들로는 하동철, 방혜자, 김형대, 우제길, 이자경 등을 손꼽을 수 있다. 빛을 소중히 여기기는 비슷하지만 빛을 대하는 시각이 작가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하동철과 방혜자의 빛은 위로부터 주어진 빛이다. 일종의 초자연적인 빛이요, 평강을 주는 빛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형대의 빛은 한지를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빛에서 착안한 것이며, 우제길의 빛은 명증한 색깔로 되어 있는 광선에 가깝다. 김형대와 우제길의 빛은 그런 점에서 자연적인 빛의 성격을 띤다. 다른 작가가 빛을 작품의 주된 요소로 끌어들이고 있는데 비해 이자경은 빛을 ‘조명’으로 기용하는 경우다. 저부조의 작품에 광선이 비출 때 높낮이가 다른 골판지가 음영을 거느리며 형형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하인두, 김봉태, 유희영, 전성우, 서승원, 김기린, 홍정희 등은 작품성격상 색면으로 분류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화면의 전체 혹은 특정한 부위를 하나의 색으로 덮어간다. 구획된 부분에 따라 채색이 되며, 조형적 규율에 의한 틀 잡혀진 색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는 아무래도 색깔이 작품의 결정적인 요소로 참여하며 색 자체가 마음과 감정, 이상과 자연을 매개하는 통로로 자리매김 된다. 형태를 보조하는 역할에서 떠나 있지만 인식의 세계, 나아가서는 보다 심층적인 세계를 안내하는 구실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전성우와 서승원, 홍정희는 색채를 재현의 매재로 사용하기보다 회화 조성의 유력한 기반으로 인식한다. 그러면서 물감이 가지는 재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전성우는 번짐과 스밈으로, 서승원은 부유하는 듯 퍼뜨리기로, 홍정희는 색 자체의 성정(性情)을 적나라하게 쏟아내는 방식을 취한다.
그럼에 반해 하인두와 김봉태, 유희영, 김기린은 같은 색면이더라
도 색의 요소를 정신 및 자연과의 교합지점으로 유인한다. 가령 하인두와 김봉태는 순도 높은 색을 미래로 향한 열린 창문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유희영은 시메트리(symmetry)와 발란스 등을 통하여 삶의 균형감각을 일깨워주며, 김기린은 물질을 자연의 무대로 돌려보내는 경향이 있다.
■ 참여작가 : 하인두, 김형대, 방혜자, 김봉태, 김기린, 유희영, 서승원, 하동철, 우재길, 전성우, 홍정희, 이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