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아직 자라지 못한 피터 팬이 세상에서 떠돌며 겪게 되는 좌충우돌 방황 여행기를 현대인의 소외감을 덧입혀 소소한 일상의 환상으로 표현. 전시는 작가만의 외로운 현대인의 환상의 세계 'Wonderland'시리즈와 환상 속에서 유쾌한 영웅으로 변신한 'heroes'시리즈로 두가지 테마 이루어져 있다
이미지의 유머러스함에 감춰진 진한 고독감젊은 날의 초상이자 집적된 기억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작가 강지만의 그림들.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또는 나에게서부터 타인과 동물에 이르기까지 그의 그림 속엔 소소하지만 생각할 여백이 충만한 일상의 행복과 고독감이 물씬 배어있다. 피터 팬을 동경하듯 망토를 걸친, 어딘가 어설픈 어른과 천진난만한 듯 혼자만의 생일을 즐기는 앙칼진 표정의 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주스를 마시거나 뜨개질에 여념이 없는 태평한 사람의 아이러니한 모습들에서 현실을 도외시한 무감각과 보상의 자유가 다중 구조로 다가오는 반면 체제와의 결별, 세상과의 단절, 오늘과 내일에 대한 반추와 기대가 동시에 포착된다. 이를 주체적 실존에 덧칠되지 못한 미완의 자아 찾기와 애증이라고 설명해야 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은 외피적인 코믹스러움의 이면에 존재하는 개성 강한 캐릭터를 통한 회화적 감성의 전복과 일상에 대한 동질감의 획득이라고 할 수 있다.
끈기의 산물인 점묘(노동집약적인)로 이뤄진, 마치 한 편의 인생풍자극과 같은 그의 그림들은 사뭇 진지한 내용을 담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자에게 묘한 웃음을 선사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든가 근작인 <밀고>와 같은 작품을 보면 리히텐슈타인 식의 구체적 설명이 이입되어 있지는 않지만 심리적 반전을 꾀하는 뛰어난 해학성, 앙증맞은 캐릭터자체의 독자성으로 인해 입가에 미소를 절로 번지게 만든다. 하지만 겉보기완 달리 그 속에는 인간사의 쓸쓸함과 외로움, 도시인들의 무관심과 에고이스트적인 이중적 잣대와 시선이 올곧이 녹아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그의 그림들에서는 이미지의 유머러스함에 가려진 진한 고독감이 생경하지 않게 묻어나고 있으며 이는 문명 속에 침전되어가고 있는 휴머니즘을 일깨우는 일종의 역설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드러남과 내재됨이 상반된 전복현상은 강지만 작업의 형식적 관점을 읽을 수 있는 단초가 되며 우리가 ‘장 앙투안느 와토’나 ‘후지다 미라노’의 <피에로>를 보며 멜랑콜리에 빠지듯 그의 작품 앞에서도 밝음과 어두움,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체감하거나 웃음이라는 장막에 숨겨진 애수와 같은 야릇한 감정에 휩싸이도록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아마도, 어쩌면 이는 우리네 삶과 정서를 담보하고 있기에 그러한 것이 아닌가 싶으며 작가 자신의 다이어리이자 곧 우리 현대인들에 관한 날카롭고 애정 어린 자서전이라는 점에서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들은 무심코 간과할 수는 없는 것들이랄 수 있다.
입체적 캐릭터를 통한 자아의 발견두 번째 특징, 즉 <잠수하는 날>, <나만 따라와>, <지난날의 복수극>, <훈수> 등 자신과 관련된 특별한 스토리를 내재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여느 동화가 그러하듯 일인칭 시점 아래 그려지면서도 모든 이들이 청취 가능한 주파수 아래 ‘내레이션(narration)’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강지만의 작품성을 높이는 분명하고도 명징한 요소인데, 내레이션을 맡은 이들은 바로 강지만의 창조적 캐릭터들이다.
그의 개성 있는 캐릭터들은 본래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간극에서 태어나 자라왔기에 만화나 여타 팝아트에서 보이는 것처럼 일견 전형적이지만 무성 영화의 성우처럼 다양한 포지션을 함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회화 소재로써, 현대인들의 상징적 아이콘(Icon)으로써 이중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전형적이지 않은 입체적 캐릭터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렇다면 그 캐릭터들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그의 그림엔 대체로 (동물을 제외하고)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붉은 머릿결을 한 성숙한(느낌의) 여자와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영악한 아이, 그리고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지만 막연히 철없어 보이는 한 아저씨가 그들이다.
예리한 관찰력의 소유자라면 이미 눈치 챘겠지만 강지만의 영민한 기억과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라는 작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 캐릭터들의 농익은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자세히 보면 주인공들은 항상 혼자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으며 코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들은 척 봐도 ‘얼큰이(얼굴이 큰 이)’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서 환상의 나래로 빠져들거나 익살스러운 형태로 화면 곳곳을 누빈다. 하지만 대체로 무뚝뚝하거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화면에 등장하는 동물들조차 어쩜 그리 세상 다 산 존재들 마냥 무심하고 약아빠지게 비춰지는지, 사람이나 토끼나 늑대나 새나 감성적인 측면에선 모두 일체화된 양상으로 전개된다. 그 자체로만 따지자면 인간과 동물 간, 화자와 관자 간 간극은 전혀 없으며 또 하나의 이기적인 사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아 처연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물론 그것이 작가에 의해 위장되고 액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린 재미있고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감춰진 것의 상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작가에 의해 단순한 일러스트레이션이나 흔한 캐릭터에서 진정한 배우로 둔갑하는 데 성공한 그들은 세월과 비례하여 각자의 개성과 향기를 뿜어내며 보편적 공감대를 거쳐 그의 회화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단순히 대중 속 각인된 외피를 모방해 얹혀 놓는 팝아트의 식상한 수준에서 벗어나 고유의 얼굴과 표정 아래 무형의 언어들을 뱉어내는 존재들, 차라리 우리네 모습을 투영한 느낌마저 들기에 그의 인물군은 그래서 부쩍 살갑게 다가온다. 따라서 이들의 의미와 역할은 정지된 물성에 불과한 그림을 일종의 시트콤처럼 그림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잃어버린 순수를 되새김질 하게 하거나, 피터 팬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대변하는 등 다분히 상징적인 주제들을 현실화하는데 있으며 실제로 ‘강지만표’ 예술을 만드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웃기면서도 의미심장한 캐릭터들이야말로 강지만 작품의 진정한 주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촉망받는 신진 작가로써의 가능성 강지만의 예술세계를 요약하자면 한마디로 아직 덜 자란 ‘피터 팬’이 세상을 떠돌며 겪게 되는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개념적으론 인간과 사회, 현실과 이상, 아픔과 슬픔, 고독과 연민이라는 삶에 당면한 거대하고 험난하며 거친 파도를 헤치며 진정성과 정체성을 찾으려는 젊은 작가의 노력과 고투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건진 재미있는 발견은 그의 라이프스타일이 일견 치밀하고 은둔적인 ‘히키코모루’에 가깝다는 점이다. 원색 계열의 밝고 따스한 색감의 돌가루가 섞인 독특한 안료로 하나하나 정성어린 붓 터치로 그려내는 과정 자체가 상당한 공을 필요로 할뿐더러 내용 면에서도 고독한 현대인의 자아를 찾아가는 난이도 높은 여정에 기꺼이 헌신하는 까닭에 자의든 타의든 그는 은둔자임을 자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그는 하루라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상에 혹은 기억 속 언저리에 위치한 소소한 단상들을 꺼내는데 소진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세밀한 플롯을 짜고 하나하나 시퀀스를 짜 맞추는 과정에 열중한다. 여기에 말없는 대사를 읊조리는 캐릭터를 스케치로 앉힌 다음 이를 다시 일일이 점으로 연결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달을 해야 비로소 일정한 상황이 담긴 작품이 완성에 이르니, 그 누군가 “당신은 히키코모루요”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타인의 주문에 의한 것이 아닌, 그의 말대로 ‘좋아서’하기에 즐거운 자발적 은둔자라는 점에서 다분히 긍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학업을 마친 뒤 알음알음 관심을 받기 시작한 이후 그는 지난해 각종 주요 아트페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현재와 같은 형식을 취한 건 아니었으며 기존 자신의 그림에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대대적인 방향전환을 모색했다. 그림을 그릴 땐 행복해야하는데 왜 그러하지 못한가라는 자문에 대한 스스로의 응답이었던 셈이다. 젊은 날의 고민과 갈등은 독자적인 길을 걷도록 했고 진취적이고 참신한 작품 활동은 그의 별난 캐릭터들과 함께 단연 주목 대상이었으며 기타 주요 단체전과 그룹전, 얼 갤러리 기획전 등을 거치면서 강지만은 비로소 한국 팝아트의 한 지류를 이끄는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얼 갤러리’에서의 기획전이야말로 작가 강지만에게 있어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예술세계의 확장을 도모할 수 있는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임에 자명하다. 아직 연륜이 짧고 활동범위 역시 일정부분 한정적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그만큼 가능성을 폭넓게 확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