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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경세우화(經世寓話)에 내재된 역사적 상징물에다 작가 자신의 인격을 컬러링한 아이콘을 등장시켜 자신의 서사(敍事, epic)를 함축하고, 그 대척점에서 카프리치오의 대명사인 서정(抒情, lyric)을 폭발시킴으로 행복을 표현
십이지(支)와 카프리치오의 제례에 바치는 헌사
-최성숙 근작전 미술평론가 김복영 | 전 홍익대 교수⋅조형예술학
최성숙의 근작들은 궁극적으로 행복을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자 한다. 이를 두고 작가는 일찍이 2005년에 적은 <노트>를 빌려 ‘행복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고백은 애초 작가가 자연과의 교감을 뜸들이던 1980년대로 소급된다.
지리산 가는 길은 온통 대나무, 커다란 삼각산 한 채를 그리고 나면 먹물은 하늘을 뿜고, 하늘에는 이내 잿빛 눈이 내린다. 그냥 마음이 행복하다(1985, 일부번안⋅필자).
근작들에서 작가가 말하는 행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의 민족의 경세우화(經世寓話)에 내재된 역사적 상징물에다 작가 자신의 인격을 컬러링한 아이콘을 등장시켜 자신의 서사(敍事, epic)를 함축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 대척점에서 카프리치오의 대명사인 서정(抒情, lyric)을 폭발시키는 거다. 서사와 서정을 아우르려는 시도는 작가가 일찍이 술회한 적이 있는, ‘수려한 꽃색은 튀어나와 온 화면에 그득한데, 행여 도망갈세라 굵은 네모 칸에 가두어버렸다’(「사랑」, 1987)는 한 마디로 축약할 수 있다. 이 언급에서 ‘튀어나올세라 가두어 버린다’는 건, 그래서 최성숙 회화의 주요 화두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화두는 문자 그대로 삶의 저변에서 창작의 근원으로 작동하는 ‘창조적 트라우마’(creative trauma)의 전형이다. ‘내가 없으면 살 수 없다던 그는 먼 바다 수평선 위에서 회색 구름이 되어 나를 지킨다’(「모슬포가는 길」, 1978), ‘가을은 허공에 흩어지고, 먼저 가신 문신을 그리워한다’(「룩상부르크 공원의 가을 빛」, 1996)는, 이를테면 빼앗긴 아픔을 내재한, 작가가 삶의 역정에서 경험한 ‘트라우마’(外傷, trauma)가 무언지를 말해준다.
기실, 전후세대의 막내로서 작가 최성숙은 이 세대가 공통하게 갖고 있는 죽음과 소멸의 상흔은 물론, 제3공화국 이래 근대화와 물질사회화 과정에서 감내해야 했던 온갖 궁핍과 억압의 품목을 의식에 내재하고 있다. 그 자신 궁핍의 시대에 겪은 사연은 차치하고, 무엇보다 연인들과의 연이은 사별의 아픔은 작가로서 그녀가 먼저 간이들을 위해 진혼곡을 쓰거나, 아니면 이별의 아픔으로부터의 그 스스로의 해방을 위한 카프리치오의 제례를 벌여야 할 욕구와 충동은 필연적일 것이다. 이를 통해 신의 요정을 영접하는 일이야 말로 비극의 탄생 저 너머에 있을 ‘행복한 상상’에 이르는 길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러나, 카프리치오를 카오스에서 건져 캔버스 안에 복속시키려는 의지야 말로 최성숙의 예술세계를 더 빛내주는 요인일 것이다. 이 작가에게서 격식의 파괴는 곧 신의 요정을 불러들이기 위한 수순의 하나이지만, 그 다음의 안식을 위한 절제의 몸짓이야 말로 보다 아름다운 메아리를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는 원천이 아닐까 싶다. 근작들의 진수가 바로 이것이다.
2008. 12. 12
-평문에서 발췌
필연의 업이 화가인지라 꿈속에서 새벽별 하나의 세계를 갈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상징동물인 ‘십이지’를 신의 요정으로 등장시켜 카프리치오 제전을 벌이는 신명난 한마당 잔치를 고심하였다. 미술 안에서 클래식 음악연주라는 혼성회화의 추구란 융합의 미학을 위하여 수많은 날과 밤을 열정으로 지새우며 격렬하게 <<신의 요정 - 카프리치오>>를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주제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평선이 열리면서 각각의 동물들이 자신들의 악기로 라이브 연주를 하고, 신의 요정들 속으로 초대하고픈 열망이 있었다. 이렇게 “클래식 음악에 동양의 12간지를 접목시키는 음악그림( 녹턴&카프리치오)” 창작에 매진할 당시 지금은 작고하신 금호그룹 박성용 명예회장님의 초대로 <<최성숙 음악그림전>>을 개최하였다.
이제 부터란 가슴의 열망과는 달리 이후 문신미술관의 시립화, 숙명여대문신미술관 개관, 10주기, 바덴바덴 초대전, 문신미술연구소 개소 등 문신예술을 둘러싼 급격한 흐름 속에 한치 앞도 가눌 수 없는 시간의 울타리 속에 갇히면서 새벽별 하나의 세계에 대한 열망으로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창작과 전시 준비를 하면서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변화를 이끎과 동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만 있다면...』하는 간절한 염원을 안고 고심을 하였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다.
『 회화의 확장개념 도입과 건강한 예술문화 풍토조성을 위하여 』
캔버스로부터 시작되어 액자전체를 회화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탈 캔버스 회회개념의 정립을 위하여 액자 전체를 회화영역으로 확장하였고, 또한 건강한 예술문화 풍토정립을 위한 차원에서 근원적인 개선을 위하여 캔버스 등에 지문을 삽입하는 시도를 했다. 이런 작은 시도들이 회화개념의 확장과 건강한 예술문화 풍토정립 등에 기여하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신의 요정 - 카프리치오”의 축제 속에 모두 어우러져 한해를 마무리 할 수 있는 향연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제는 자유스러움 속에 작가로 활동하면서 더욱 노력하여 많은 질책들을 통하여 작가로서 진정으로 성장하고 싶을 뿐이다.
2008. 12. 18
작가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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