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40만점 이상의 장난감을 수집해온 장난감 박물관‘토이키노’관장 손원경씨가 사진전을 갖는다. 아시아 최고의 장난감 수집가인 그는 서예가 소전 손재형씨의 손자로도 알려져있다.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부터 어린 시절 손에 들고 다니던 로봇까지 캐릭터의 시대적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번 사진전은 장난감들을 사진으로 재구성하여 영화적 요소도 포함시켰다. 키덜트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 할 이번 전시는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3월 25일부터 31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된다.
Paranoia Anatomy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는 이는 거울의 이면(裏面)까지 들여다보게 된다.”고 김소연 시인은 말한 바 있다. 장난감을 대하는 나의 맘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나 역시 대상의 이면을 바라보고 싶었다.
“장난감을 볼 때 나는 세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것은 분리되지 않은 시선이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숭고한 미적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며, 또 다른 하나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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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나의 사진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의 시점에서 출발한다.
사진의 대상으로 장난감을 선택하게 된 데는 1차적인 의미에서 나의 유년시절과 뗄래야 뗄 수 없다. 여섯 살 때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보았을 때의 문화적 충격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인생을 몇 가지 장면으로 요약해야 한다면 이 장면은 결코 빠지지 않는다. 무엇에 ‘홀린다’, ‘사로잡힌다’란 표현은 바로 그런 감정을 두고 한 것이리라! 그해 선물로 쥐어진 스타워즈 장난감 세트, 루크 스카이 워커처럼 우주로 날아갈 것만 같던 감격들….
세월을 건너 뛰어 중학교 2학년의 소년은 우연한 기회에 남대문 시장에서 장난감을 수집하게 되었고, 23년이 흐른 지금은 그 가짓수가 40만점을 넘어 버렸다. 그렇기에 어떤 사물과 사람보다 친근하다. 장난감에 대한 놀라운 친화력은 나의 의식과 무의식의 층위에 깊숙이 새겨져 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하지만 방대한 양의 장난감을 수집했고 친화력이 높기 때문에 사진 작업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장난감은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영화와 만화에서 접했던 인상과는 별개이다. 그 존재감을 발견하면서부터 작업은 시작됐다.
장난감은 다루기가 쉽고 부담감이 없다. 반면 상황에 민감하다. 작업을 계속 하다 보니 장난감과 다른 사물을 결합해서 촬영하는 일이 빈번해지게 됐는데, 그럴 때마다 신기한 현상이 나란히 배치했던 사물 역시 ‘장난감化’ 됐다. 여기서, 장난감化라함은 다루기 쉽고 친근해지며, 사물 그 자체가 주는 형태와 색의 재미가 느껴졌단 의미다. 이런 심리적 현상은 확장돼서 나중에는 캐릭터가 사람처럼 진지하게 다가오고, 사물은 장난감처럼 친밀해졌다. 대하는 태도가 변화한 거다. 직업병이라 하면 좀 난처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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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은 친근한 어감 그대로 재미있고 신기하다. 하지만 단순한 아이의 놀이개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의 부산물로 현대성을 대표하기도 한다. 이 안에는 신화와 욕망, 철학과 미술, 언어와 기호(코드)가 가장 단순한 형태로 응집돼 있다. 단순한 소비 형태로 사라지는 게 운명이지만 이것들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재배치할 때 새로운 이야기성을 가지고 말을 걸어온다. 그건 거의 마법에 가깝다. 그 순간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장난감에 대한 나의 애착은 종교적인 성격도 배제할 수 없다. 나는 이것을 ‘선택적 숭배’라고 말한다. 가톨릭 신자들이 성물(聖物)을 간직하고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상(像)을 숭배하듯 나는 장난감을 대한다. 향수의 감정이 아니라 일종의 존중이자 경배, 숭고한 미적 취향이다. 선택적 숭배는 다른 말로 지배당하지 않는 자발적 숭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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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멀티이미지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야기성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멀티이미지를 만들어낸 게 아닌가 한다. 이런 방식은 때론 시퀀스 포토그래피(sequence photography)의 분위기와도 맥을 같이 한다.
멀티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효과와 분위기를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공간을 채워가는 시각적 밸런스와 유기적 단일함에 초점을 맞추었다. 색채의 리듬감을 살린 단순한 배열에서부터(여기에는 로봇의 얼굴이나 영화 주인공의 얼굴, 총과 같은 무기나 아기자기한 장난감이 배열된다), 슈퍼 히어로의 재조합이나 공포영화의 이미지, 혹은 영화 캐릭터들 간의 이미지 충돌 내지 페이크(가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멀티이미지 작업에 대한 이해를 돕자면, 이사를 해서 방을 꾸미는 과정으로 비유하고 싶다. 이사를 가서 빈 방을 채우고 꾸며갈 때 여백으로 남은 벽을 영화 포스터로 하나하나 채워간다. 이와 다르지 않다. 이때 일상적 미의식과 충동이 절제된 긴장감 속에서 벽(캔버스)을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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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이미지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빈티지 장난감을 다룬다. 문방구나 길거리 노점상을 통해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들로 장난감 그 자체에 주목하여 시각적 재미를 주는 데 주목했다. 둘째는 캐릭터 피겨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소개된 캐릭터의 정형성을 해부한다. 캐릭터 고유의 색감과 무기, 가면(얼굴) 혹은 상징적 마크를 부각시켰다. 그 과정은 의학적 해부에 가깝다.
Paranoia Anatomy: 편집적 해부
세포 하나하나를 채집해 옮기듯 각각의 샷들, 얼굴과 신체, 전체와 부분, 인물과 사물들을 하나의 프레임 안으로 옮겼다. 편집적 해부란, 내가 작품을 대한 태도이며 동시에 작업의 기초가 된다. 이미지를 뜯어내는 기초 작업을 거친 결과물은 ‘Species’ 시리즈와 ‘Fake’ 그리고 ‘Mass’ 시리즈로 이름을 붙였다. ‘Species’는 캐릭터의 족보와 관련된 일종의 종(種)의 분류가 되며, ‘Fake’는 부여 받은 성격에 인공적인 조작을 가한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Mass’는 분해된 작은 조각들이 모여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었다. ‘mass, 덩어리’란 개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작업의 궁극적 지향점이 바로 이것이다. 각각의 이미지(부속물)들은 분해되고 분류된 후 하나의 덩어리로 진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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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란 20세기의 꿈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최고의 매체이다.”
영화에 대한 나의 애정을 숨길 수 없다.
회화의 비주얼과 소설의 이야기성은 각기 다른 길을 걷다가 19세기 말 영화의 탄생을 기점으로 하나로 묶인다. 동굴과 같은 어두운 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희미한 불빛과 영사기의 소음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1930년대는 꿈의 공장이라 일컬어지는 할리우드가 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확장시키며 대중과 영화가 가깝게 밀착하게 된 시기였다. 이후 장르영화는 발전을 거듭했고 70년대에 이르러서는 정점에 이르렀다. 007 시리즈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흥행 신화는 피겨 제품의 등장을 불러왔다. 나는 그런 문화의 파도를 타며 영화 마니아로 성장했고, 자연스레 콜렉터가 되기에 이르렀다.
슈퍼맨과 배트맨, 제다이와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영화 캐릭터의 정형성은 사람들을 유혹했고, 이에 열광한 사람들의 욕망이 곧 소유를 가능하게 만들었다(이런 심리에 대해 할리우드는 어느 매체보다 탁월하다. 할리우드 영화의 역사는 어찌 보면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소유가 가능함은 곧 해부와 해체의 시점이 왔음을 내게 암시했다.
<우리 시대 고유 명사를 찾다>란 책을 작년부터 준비하며, 책의 제목대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오바마의 신화에서부터 토크쇼, 스티브 잡스의 매킨토시와 아이팟, 아스피린과 콘플레이크와 할리우드 액션 등을 탐구해 왔다. 20세기를 대표하고 20세기를 지배했던 아이콘들에 대해 나는 누구보다 흥미를 가진다. 그런 흥미와 관심 중에서도 영화는 가장 일순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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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때로 모호성 가운데 그 신비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나의 사진은 결코 모호하지 않다. 오히려 투명하다.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캐릭터들은 결코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숨겨진 비밀이 있다. 작업을 하며 나는 그 비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각각의 이미지들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역으로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기도 한다. 이런 미학적 작용과 반작용이 캔버스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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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나의 애인이고 장난감은 즐거운 벗이자 운명이다.”
장난감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길 원한다. 장난감은 세상의 일부이다. 거대한 일부이며, 때론 주체가 되기도 한다. 강박과 스트레스, 심지어 편집증에 시달리는 나를 포함한 현대인에게 장난감은 여전히 중요하다. 니체는 “우리는 실재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효과, 곧 모조성과 기호들의 산물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고 말했다. 장난감도 니체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잠깐 접하고 마는 게 장난감의 운명이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2009년 3월 손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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