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김 성 호 작품전
우리 주변의 일상적 풍경을 소재로 한 야경과 새벽풍경을 회화적 화풍에 담아내는 김성호 작가의 개인전이 오는 4월에 선화랑에서 열린다. (기간:2009.4.1-4.16)
서양화가 김성호 선생님의 작업은 여러 가지로 독특한 개성적 특징들을 보이고 있다. 빛에 대한 고감도의 미의식, 드라마틱한 해석과 선 굵은 대범한 구성, 활달하고 분방한 듯하면서도 절제의 감각적인 필치.......등. 이러한 작가의 화면 조건들은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 일상 가운데 마주하는 무엇이든 작가의 필촉을 거치는 순간 아우라와 감동이 넘치는 화면으로 변한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도시의 야경, 혹은 안개나 비 오는 날의 도로풍경, 미명의 해경 등이 주로 화폭에 등장하다 보니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추상성과 은유성이 짙은 화면을 이루게 된다. 평범한 대상을 놓고서도 작가의 손을 거치기만 하면 마술과도 같은 신비로운 화면으로 바뀐다는 사실에 애호가들이 열광한다.
작가만의 고밀도 재현과 내공이 있는 붓놀림, 대상의 본질을 압축해내는 중첩된 선묘와 속필, 그리고 형체를 해체시키는 빛의 연출이야말로 김성호 회화의 핵심이다. 특히 빛의 작용은 작가에게 대상 이상으로 비중을 갖는 요소로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어둠과 밝음의 경계인 미명, 가로등과 같은 야간 조명, 버스 안에서 새 나오는 빛, 콘트라스트 강한 조명 특히 역광 등의 다양한 빛의 상황이 의미를 갖는다. 또한 작가는 수많은 스케치 작업과 수백 장의 사진을 거쳐 온전히 작가가 느끼고 경험했던 감성과 감각을 개성적인 구도와 각도, 대범한 화면 처리를 통해 표현한다. 자연광과 인공광이 만나는 접점을 회화적인 기법과 요소들을 이용해 특정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주변을 과감하게 면으로 처리하면서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의 대비 등을 통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느낌들을 보다 긍정적이고 서정적으로 심층표현해내고 있다.
"제 그림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감정을 느낄 것입니다. 저는 다만 제 그림을 통해 우리가 살아오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성과 서정, 이야기가 일깨워지기를 바랍니다. 예술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일상 속에 같이 숨 쉬고 공존하는 것임을, 우리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임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 김성호
작가 그림의 매력은 역시 우리 현대인들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청량감과 신비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실제 자연이나 도시의 풍경이 주는 감동, 그 이상의 감동을 준다는 점이다.
작 가 노 트
나의 작품세계
나는 그림의 주제를 먼 곳이 아닌 일상의 한가운데서 찾고 있다.
도시, 바다, 한적한 동네의 한 구석 등, 밤과 새벽
그리고 낮과 밤이 만나는 경계선상의 시간대의 소재를 즐긴다.
어둠에 가려진 도시의 이면들!
전등 빛으로 휘황한 밤거리, 소음과 공해와 번잡함이 어둠속에 묻히고
불빛만 희뿌옇게 비치는 적막함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지 않을까.
온갖 더러움과 타락을 머금고 비틀거리거나 잠들어 있는
번잡하고 소란하고 들뜬 도시의 풍경.
이러한 도시의 속성을 재현이나 기록이 아닌 회화적인 뉘앙스로 번안,
즉 자연광과 인공광이 어떤 대상과 만나는 접점을 회화적인 기법과 요소들을 이용해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 한 느낌. 특정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주변을 과감하게 면으로 처리하면서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의
대비 등을 통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느낌들을
보다 긍정적이고 서정적으로 심층표현 하고 있다.
이렇듯 나의 그림은 주변현상에 대한 감각적 인상을 기록한 것이며,
그 중심에 빛이 있다.
김 성 호
전시평론
빛의 탐닉, 마술 같은 그림들
이재언
수 년 전 필자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진경전’을 볼 때였다. 전시장에서 아주 재미있는 그림을 한 점 발견하였다. 큰 화면이 온통 검정색으로 덮여 있는 가운데 한 쪽 가장자리 부분에 시골 밤길을 달리는 버스 야경이 표현된 그림이었다. 주변은 칠흑처럼 어두운 가운데 버스 내부만이 실내등으로 인해 밝고, 차창을 통해 새나간 빛들에 의해 어떤 길을 달리고 있는지 잘 느낄 수 있게 표현된 그림이었다. 참으로 쉽고 또한 편하게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러면서도 너무 절묘한 그림이 되는 모습을 보고 강한 인상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하, 이런 장면도 그림이 되는구나. 그것도 아주 절묘하고 멋진 그림으로......” 바로 거기서 확인한 작가의 이름이 김성호였다. 이후 몇 차례 더 다른 현장들에서 확인된 작가의 그림들은 야경 혹은 안개나 비 오는 날의 도심 혹은 도로풍경, 미명의 해경 등을 대상으로 기발한 그림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의 예민한 감성을 자극하여 감상적으로 빠지게 하는 극적 풍경들이 아닐 수 없다.
시나 음악에서는 그런 자연의 장면 앞에서 자연스럽게 노래된다. 그런데 그것이 형상적으로는 조심스러운 데가 있다. 인상주의에서 더러 이와 유사한 대상들이 추구되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대체로 담론적 요구가 극적으로 반영된 경우로만 국한되었다. 대상을 마주하면서 일어나는 경험 자체를 화폭에 담아내는 데 있어 필적할 만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 정말이지, 그의 그림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가로등 조명을 받고 있는 가로수들의 모습과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오늘의 도심에서 너무나 흔한 장면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조와 신비감, 아우라가 넘치는 그림으로 승화된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그림들을 대하다 보면 그가 바라보는 사물들은 그 무엇이든 그림이 될 수 있으며, 그것도 아주 독특하고 기발한 방식의 그림이 되게 한다는 점에서 경이롭다.
사실 야경이나 비 오는 날의 풍경은 많은 화가들이 화폭에 담고 싶어 하는 소재이다. 화면상의 방법적인 요소들이나 기교적인 것들 이전에 작가의 화면이 관객의 눈과 감성을 사로잡는 것은 기발한 선택과 작가만의 참신하고 독특한 구성, 자신감과 호방한 기운이 넘치는 기운생동의 필치 등에 기인한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하지만 다른 화가들이 주목하지 않는 소재들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작가의 상상력과 탁월한 해석적 감각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들이 그림으로 옮겨지는 데는 이미 화폭에 담길 모습들을 상상해내는 경험 작용이 없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사진작가가 무턱대고 아무 것이나 찍고 나서 작품이 될 만한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될 만한 대상을 집중적으로 선택 교감하는 것과 같다.
중성적으로 주어진 대상들을 대면하여 그것을 뜻밖의 미적 대상으로 재현하고 구성해내는 것은 분명히 타고난 감각의 능력에 기인하는 것이다. 똑 같은 대상이나 장면이 주어져 있더라도 그것을 담아내기 위한 양식적 혹은 형식적 선택은 작가의 감각과 미의식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빛의 작용은 작가에게 대상 이상으로 중요하다. 어둠과 밝음의 경계인 미명, 가로등과 같은 야간 조명, 버스 안에서 새 나오는 빛, 콘트라스트 강한 조명 특히 역광 등의 다양한 빛의 상황이 의미를 갖는다. 단조로운 대상도 빛의 극적인 연출이 있을 때, 그것은 보다 의미 있는 대상으로 지각되기 마련이다. 바로 그 빛의 감각적인 성질과 신비주의적 상황을 절묘하게 포착하는 것이 관건이다. 작가 스스로 조작한 빛이 아니라 그러한 대상들의 포착이 관건인 것이다.
대상의 선택이 상상력과 해석의 능력에 의해 성취되었다 해도 결정적으로 화면상에서 이루어져야 할 표현의 기량이 수반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역으로 작가의 표현적 자신감이 소재의 선택에 구애 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구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의 내면이 대면한 세계와의 경험 내용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데는 작가 스스로의 기량에 대한 자신감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작가는 구성에 있어 탁월한 감각을 발휘하면서 이미 화면은 반 이상을 성취한 것이나 다름없다. 개성적인 구도와 각도, 대범한 화면 처리 등은 이제 작가 고유의 브랜드가 되어 있다. 게다가 분방하고 활기 넘치는 율동적 필치는 거의 모든 화면을 지배하는 주조로 정착되어 있다. 필치 자체가 인상주의적 분할과 비슷한 궤도를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필치의 분방함이 상당히 유희적이면서도 무의식적 계기의 비중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위해 대상의 구조나 형태와 같은 요소들을 그렇게 많이 변형하지 않는다. 분방한 필치를 주조로 하면서도 대상의 견고한 형태나 구조를 해체하는 등의 비약은 없다. 대상의 형태를 변형하거나 왜곡함이 없이도 작가의 그림은 신선하게 경험된다. 그 이유는 바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상의 리얼리티 자체를 과도한 변형이나 추상성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우리의 관습과 시각질서 등에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독특한 각도나 약간의 개성적 해석을 도입함으로써 그림은 경험적으로 참신하게 접근되게 된다. 이러한 결과로 작가의 화면은 추상적이거나 은유적인 질서의 것으로 보이곤 한다.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대상의 전달이 밝은 햇살 아래 선명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니 추상적이거나 은유적인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은유적일 법한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이지, 그림 자체는 실재와 재현에 대단히 충실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들을 보면 전통 구상 혹은 아카데미즘에 충실하면서도 마치 경계를 희롱하고 있는 것 같은 넘나듦을 확인 할 수 있다. 그의 유희적이고 자유로운 화면의 질서는 추상이니 구상이니 하는 경계라는 것을 비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런 점이 아카데믹한 종래의 화풍과 차별화되고 소위 현대성이라는 것을 담보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미술에 있어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추상성이 바로 이 사례 앞에서는 별 위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물론 작가는 추상적이기 위해, 혹은 현대적이기 위해 어떤 제스처를 취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세계에 충실한 결과가 어떤 넘나듦의 모습으로까지 비쳐지는 것이리라. 그동안의 그림들이 구상회화의 입장에서 보면 파격에 가까운 참신함과 기발함을 보여준 바 있지만, 근작에서도 기발하고도 신선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근작에서는 더욱 대담하고 파격적인 그림들이 등장하고 있어 작가 그림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 번 보았을 때는 추상이다가, 한 번 더 볼 때 그것의 실재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구성이 절묘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김성호의 그림은 모든 평범한 대상들이 신비감과 아우라를 갖게 하고, 무한한 미적 생명력을 발산하고, 아울러 보는 재미까지 만끽하게 하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아니 마술과도 같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