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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채전:본질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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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역사가 될 때
(When Attitude Becomes History)


이용우 | 미술평론가, 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오늘날 현대미술의 형식과 언어는 거의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과거 예술작품의 전 단계로 간주되던 개념은 물론이고 사고나 태도, 공간해석, 그리고 신체적 행위까지도 이제는 엄연히 작품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이제 개념과 형식의 차이를 따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 해져버렸다. 말하자면 작품의 형식만을 통하여 미학적 언어를 판별하고 가늠하던 과거의 견고하던 형식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후퇴하거나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관객도 예술가들이 지어 놓은 기상천외의 예술적 생산물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무감각해졌으며, 이것이 과연 작품인가를 묻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언제든지 즐겁게 놀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는 '예술의 방위각'이란 주제로 온갖 실험형식을 도입한 전위적 비엔날레였다. 새로운 경향의 젊은 예술가들을 위하여 아페르토(Aperto)라는 전시를 처음 도입한 것도 이때였다. 당시 아페르토에 초대되었던 태국 계 미국작가인 리르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는 베니스의 명물인 곤돌라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가 제작한 곤돌라는 나무가 아닌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바다 위에 떠 있는 관광객을 위한 곤돌라가 아닌 전시장 내부로 유입되어 관객과 전혀 다른 용도로 만나게 창작된 예술적 곤돌라였다. 전시장에 설치된 곤돌라 안에는 물을 끓일 수 있는 가스통과 끓는 물을 부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국수가 준비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즉석에서 우동을 만들어 먹는 재미를 누렸으며, 비엔날레에 구경 와서 국수까지 먹는 예기치 않은 재미와 행운을 누렸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음식은 공짜로 제공되었다.
관객의 참여공간을 극대화해가는 오늘에서 바라본다면 이러한 작업형태는 그리 새로울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16년 전에는 이것이 도대체 조각인가, 설치인가, 그냥 퍼포먼스인가, 아니면 사회 참여적 행동인가에 대한 논란이 대단하였다. 또 예술의 이름으로 마련된 베니스 식 접대인가라는 논의까지 있었다.

이러한 관객참여방식의 퍼포먼스가 가미된 예술은 원래 플럭서스 해프닝에서 시작되었지만, 최근 20여 년 사이 보편화되었다. 즉 태도나 개념이 하나의 미학적 형식이 되어 그것이 시각예술인가, 신체예술인가 등의 논란을 거치면서 복합적 예술형식으로 진화하였다. 오늘날 현대미술이 단순히 벽면에 걸린 뻣뻣한 오브제가 아니라 움직이고 말하며, 관객에게 말을 걸고 참여를 유도하는 상호텍스트 적인 매체가 된 것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나 기능변화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작가 손봉채의 작업도 말하자면 조각이자 설치작품이며, 퍼포먼스가 가미된 매우 복잡하면서도 관객의 직간접적인 참여가 관건인 예술이다. 즉 관객의 참여가 작품을 완성하는 구성요소가 중시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관객의 참여가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지기보다는 관객의 참여적 관심을 작가가 매개체가 되어 실현 시키는, 이를테면 의식의 징검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담론하려는 미학적 언어들이 대개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며, 삶의 주변부를 형성하는 크고 작은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가는 소재가 매우 정직하면서도 직유법적 화술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손봉채 예술의 라벨은 작품소재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가 지금까지 미학적 도구로 사용해 온 소재들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전거이고, 다른 하나는 폴리 카버넷에 이미지를 중첩시켜 그린 패널 페인팅이다. '작가 손봉채' 대신 지금까지 '자전거 작가' 등으로 호칭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의 라벨화가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질문은 차치하고라도 손봉채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말하자면 '물방울 작가' '보리밭 작가' '말 그림 작가' '유채꽃 작가' 등의 이름을 가진 소재와 예술가를 등식화하는 대열에 그도 소속된 것이다. 이는 미술사에 기록된 상당수의 작가들이 소재에서 차별화되고 특징화된 전례를 비교한다면 좋다 나쁘다의 의미로 단정할 성질의 것은 전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소재들을 활용한 손봉채의 예술언어는 작가 개인의 스토리텔링으로부터 한국사, 세계사의 굴곡에서 나타난 사회정치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그 표현의 줄거리들은 지극히 문학적이거나 문학성을 감수성을 배양시켜 나타난 감성들이 넘쳐난다. 그것은 이를테면 미련이라거나 연민, 과장, 축소 등 시각적 형식이나 표현의 내부에 파고든 잔잔한 시각언어들에서 흥건하게 배어 있다.

손봉채가 자전거를 소재로, 작업의 발언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자전거를 매체로 선택한 것은 그것이 누구나 아는 서민적이고 친숙한 소재라는 사실, 다른 한편으로는 도구적이면서도 매우 익명적이라는 점이 작용하였다. 그리고 두발 달린 짐승들이 개발한 초보적 운송수단이면서도, 그보다 유용한 것도 사실상 드물다는 찬양론에 기초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자전거에 얽힌 크고 작은(대개는 별 의미 없이 지나쳐간) 추억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매우 특별한 것으로 기억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자동차라는 보다 복잡하고 적극적인 수단에 의하여 대체 된 도시에 사는 자들에게 자전거는 그저 아련한 추억의 일부가 된 소재인 것이다.

손봉채가 예술작품으로 만든 자전거들은 기능이 제대로 살아있는 성한 자전거는 드물다. 페달을 거꾸로 돌리게 만들어지거나, 아니면 홀수의 페달을 만드는 등 모양새만 자전거이지 기능적으로는 대부분 불구가 된 탈기능적 자전거이다. 작가는 앞으로 가는 숙명을 가진 자전거를 뒤로 가도록 전복된 숙명을 만들어놓음으로써 이른바 숙명의 전복을 야기 시킨다. 이러한 의미의 '뒤집혀짐'은 사회학적이고도 해학적인 해석을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관객은 이 엉뚱한 질문에 대하여 때로는 고통스러운 대답을, 때로는 유쾌한 답을 내리도록 요구 받는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거꾸로 시간을 돌릴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애환과 함께 역주행의 절묘한 화법을 구사하는 예술가의 사고와 행위에 대하여 동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만든 자전거의 금형을 이용하여 그가 의도한 크기와 용도의 자전거를 따로 만든다. 1997년, 손봉채는 제2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자전거설치작업을 선보였다. 207대의 크기가 다르고 기능이 다른 자전거를 전시장 내부에 가득 투입한 이 설치작업은 자전거가 작동하면서 내는 기계적 굉음이 흡사 권력에 옥죄어 사는 서민들의 신음처럼 전시장 내부에 울려 퍼졌다. 그 후 손봉채는 페달이 여러 개인 공동체적이고 협업이 요구되는 자전거를 만들어 다양한 전시에 참가하였다. 이러한 집단적 내러티브(collective narrative) 형식의 작품들은 천정과 벽면에서 비추는 조명에 의하여 다량의 그림자를 벽면에 연출하게 되는데, 이는 문명의 굉음, 특히 소음이 연출하는 스펙터클의 폭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단순히 사회적이라거나 소시민적 삶을 투여하는 유익한 매체라는 해석 이상의 것들을 내포한다. 인간에 비유된, 크고 작은 수 십대 자전거들의 합창은 때로는 처연하지만, 때로는 슬픈 것이 아름답게 보임으로써 웅변적이기도 하다.
손봉채의 또 다른 소재인 패널 페인팅은 마치 홀로그램 효과처럼 그림이 입체적으로 나타나는 평면작업들이다. 처음에는 유리에 그림을 그려 여러 장을 겹으로 중첩시킨 뒤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풍경 및 인물그림이었다. 그러나 유리는 운반에 어려움이 크고 쉽게 깨지는 문제가 있어 후에 아크릴로 교체되었다가 지금은 폴리 카버넷으로 전체 소재를 바꾸었다.

그의 패널회화는 소재가 매우 다양하다. 소나무와 대나무를 비롯한 풍경, 인물, 국내외의 특정한 역사적 장소, 사건과 사고가 일어난 사회정치적 장소 등이 대표적인 소재들이다.
그는 어느 날 부친으로부터 6.25 당시 경찰관 124명이 무장인민군 8명에 의하여 무참히 살해당한 소나무 숲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을 방문하였다. 지금은 소나무들이 우거진 전라남도 곡성의 어느 평범한 마을이자 부친의 고향이지만 역사 속에서는 피로 물들었던 곳이었다. 손봉채는 그 소나무 숲을 각각의 패널에 하나씩 그려갔다. 그리고 역사의 두께를 표현이나 하듯 그림들을 입체적으로 중첩시켰다. 이것이 중첩회화의 시작이었다.




그 후 그는 스페인의 아람브라 궁전을 비롯하여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인의 코 2만2천1백84개를 베어가 무덤을 만든 코무덤, 오성홍기가 가장 많이 휘날리는 상하이의 금융가, 베니스의 홍등가, 난징 대학살 장소, 며느리가 할머니를 학대하여 할머니가 목을 맨 장소, 대구지하철 화재장소, 5.18현장 등 수많은 장소들을 역사쓰기 하듯 돌아다니며 작업을 하였다.
이 가운데 조형적으로 매우 특징적인 작업은 을씨년스런 역사적 현장을 스케치하듯 표현한 나무들이다. 한국의 상징인 소나무와 대나무를 주로 그린 그의 패널회화들은 일반적인 풍경 소재의 작업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우선 나무라는 소재가 주는 극명한 현실감과 그것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위하여 중첩됨으로써 소재 이상의 준엄한 언어적 함의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이 나무들은 방금 그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들에게 증언하고 고발하려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그리고 그 소나무, 대나무 숲에서 간접적으로 흘러나오는 음습한 언어들은 그 장소가 역사 속에서 아프고 쓰라렸던 추억을 휘감고 있다는 사실을 열거하듯이 묘사되었다.
그가 그린 모든 풍경의 소재들은 실경이다. 따라서 작업에 나타난 배경이나 인물들은 어떤 것보다도 현실감이 강하다. 폴리 카버넷의 특성상 여러 장으로 중첩시켜 하나의 입체적 그림을 완성하기 때문에 패널에 등장하는 낱개 그림들은 하나의 단면도처럼 보인다. 그리고 작업이 완성되면 패널 뒤편에 LED 판이나 기타 조명기구를 붙여놓기 때문에 전시장에서 조명을 통하여 보는 작품과 조명 없이 보는 작업은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말하자면 역사적 현실도 조명이나 기타 다른 소재에 의하여 연출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것이다.

손봉채의 이러한 현실로서의 역사읽기는 때로는 도큐멘터리와 같은 느낌도 던져주지만 기법의 신선함이나 사실 외적 요소들, 이를테면 소리나 조명, 그림자 등의 부수적 효과들에 의하여 현실 이상의 무엇을 메시지로 던지게 된다. 나는 이러한 그의 섬세한 메타포들이 손봉채를 단순히 리얼리즘작가로 등식화 시키는 오류들을 불식시키는 풍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믿고 있다.





전시 개요
○ 전 시 명 : 손봉채 展 - 본질은 보이지 않는다.
○ 전시기간 : 2009년 4월 24일(금) ~ 5월 31일(일)
○ 개막행사 : 2009년 4월 24일(금) 18:00
○ 전시작품 : 설치, 조각 등 100여점
○ 전시장소 :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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