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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동해'에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거칠고 기괴한 모야의 물고기를 통해서 삶의 진실함은 화려하지 않지만 온 힘을 다해 생을 헤엄쳐 나가는 생명력을 강조한다.
東海 - 생에 대한 투지와 불굴의 파토스
이상원의 근작을 중심으로신혜영 | 갤러리상 큐레이터
이상원 화백의 작품은 초기작(1977년)부터 현재까지(2009년) 일관된 작가의 관심사를 보여줍니다. 작품의 소재는 여러 차례 변화하였지만 작품을 통해 표현된 작가의 감성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에 대한 작가의 철학과 신념이 드러납니다.
30여 년이 넘게 이어지는 작업은 서양 미술사의 격동적 흐름 속에서 나타난 이론들이나 기타 현대미술의 담론에서 비껴있습니다. 예술의 개념에 대한 논란과 제도적 역할 등 예술사회학과 미학의 논거 등은 작가의 관심 대상이 아닙니다. 작가는 어떤 정치적 관점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사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서양현대미술사의 논거와 형식들을 재빨리 이어받아 그 체계를 빌어 나름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것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이상원 화백의 예술세계는 주류 미술계로부터 외따로 떨어져 있는 듯 보입니다. 미술계내의 사교적 관계나 주류와 비주류 등을 나누는 계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술계라는 외부세계와의 일정한 간격은 한편으로 그의 작업을 독창적으로 만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성에 대한 담론으로부터 제외되어 그 맥락에서 분리돼 시대성과는 관련 없는 작업으로 보이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홀로 떨어져 고독하게 한지와 먹과 물감만을 상대로 자신 속에 불끈 불끈 솟아나는 생에 대한 의지와 스러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토해내 온 것이 그의 작업 여정입니다.
한동안 그의 작품은 ‘극사실화’로 칭해졌습니다. 모래밭이나 눈밭 위에 새겨진 자동차 바퀴자국과 다 헤어져 못쓰게 된 마대자루의 복잡하고 난해한 세부를 치밀하게 그려낸 작품들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동해인>시리즈에서 인물이 클로즈업 된 부분 이외의 나머지 부분을 처리한 수묵화 방식으로 인해 동양화 작품으로 분류되기도 하였습니다. 작가 자신에게 수묵기법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의 최초의 작업을 수묵화로 출발하였다는 것이 반증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전통이나 기법으로 시작하였든 간에 그의 표현의지는 그러한 것으로 인해 제한되지 않았습니다. 전통이나 기법 보다는 원하는 느낌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필요하였고 ‘몰입’과 ‘다작’이야말로 작가가 지킨 유일한 원칙으로 보여 집니다.
집요하게 대상을 파헤쳐 대상이 가진 성격의 마지막 한 줌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해내려는 근성과 작가가 원하는 것 이외의 주변 이야기는 화면에서 모두 지워버리는 결벽주의는 다른 듯하지만 서로 일맥상통해 보입니다. 동양화의 맥락이든 서양화의 맥락이든 어떤 맥락을 따르기 보다는 농밀하고 응축된 에너지를 내포한 대상에 집중하여 그 대상과 작가 본인의 주파수를 일치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이번 신작 <동해>에서 보여주는 그의 관심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화폭 속의 물고기는 괴상스러우면서도 강인해 보입니다. 모두가 못생겼다고 놀려대는 천덕꾸러기 같은 물고기의 거친 인상이 작가의 시선을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이상원 화백은 근작에 관해 두 가지 견해를 분명히 합니다. ‘삼식이는 나와 매우 닮아 자화상이라 생각하며 그렸다.’ ‘작품에는 작가의 감정이 절실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동해’라고 이름 붙인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일반적으로 ‘삼식이’라 불리는 어류입니다. 정식 명칭은 ‘쏨뱅이’라 하지만 그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삼식이’는 물고기가 하도 못생겨서 붙여진 이름인데 작가는 그 이유 때문에 이 물고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화폭에 옮길 때는 평범치 않은 모양새가 조형적으로 재미있는 요소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작품 <동해>를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겉모습은 보잘 것 없지만 그 속에 진실함과 강직함을 간직한 존재를 높이는 것입니다. 삼식이라는 물고기가 대표하듯이 추하리만치 못났으면서도 생명력으로 충만한 존재의 가치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보편적인 단면입니다. 마치 고생스런 세월을 촘촘히 인이 박히며 살아온 우리 어머니의 갈라진 손마디 같아 보입니다. 작가의 젊은 시절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전쟁이나 굶주림의 시대는 지나간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삶의 구석구석에는 어둠과 그늘, 상처가 만연합니다. 작품속의 ‘삼식이’는 수없는 상처와 고통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동해의 푸르고 거친 파도와 생의 희노애락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매순간을 강한 투지와 집중력으로 살아낸 작가는 이 기괴한 물고기를 통해 자신 안에 숨쉬고 있는 강한 생명력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체를 아우르는 감성을 ‘동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상원 화백의 삶과 삶에 대한 태도와 그의 작품. 이 세 가지는 하나의 목소리를 냅니다. 작품이 가진 호소력은 그 지점에서 나옵니다. 그의 작품이 늘 단도직입적이고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터입니다. 좀처럼 실패와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강인함은 작품을 통해 여유나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무거움과 낯섦, 나아가 불편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고희를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전을 위해 수 백 점의 습작과 백 여 점이 넘는 작품을 준비하는 작가가 삶을 통해 지켜온 신념이며 곧 그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비움이나 여유로움의 가치를 발견하기보다는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우직하게 나아가는 존재로부터 더 큰 공감을 느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 자신과 비슷한 존재의 파동을 가진 것으로 포착된 동해, 그리고 물고기 삼식이. 그것들로부터 발산되는 강인한 투지와 불굴에의 신념. 이것이 이상원 화백이 작품을 통해 토로하고자 하는 정념이며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면 깊은 바다 ‘東海’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