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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시대_Dissonant Visions
양 혜 숙 |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사
괴물은 고금을 막론하고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꾸준히 탄생되어 왔다. 예술가들은 현 세계와 한 개인의 가치관의 충돌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이라든지 기존의 합리적 질서와 체계에 대한 거부와 위반, 그리고 개인 내면의 본질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 간의 코드의 불일치 등 더블코드의 이중성을 ‘괴물’이라는 메타포를 내세워 작품으로 풀어내고 있다. 급변하는 현 시대의 복잡하고 다양한 미술 경향을 읽어내는 숨겨진 코드 중 하나가 바로 ‘불협화음(Dissonance)’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우리 시대의 ‘괴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 21명의 작가들은 괴물로 외화된 ‘불협화음적인 시선 Dissonant Visions’ 을 통하여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일 수 있다.
신화의 세계에서도 많은 괴물들이 등장한다. 뱀의 머리카락을 지닌 메두사, 반인반수의 켄타우로스,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 여성의 얼굴과 새의 날개와 발톱을 지닌 하르피아 등 동식물도감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생명체인 괴물들은 다양한 맥락에서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재탄생되고 있다.
괴물(monster)이라는 말은 라틴어 ‘가리키다(monstrare)’와 ‘경고하다(monere)’에서 비롯되었다.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괴물은 19세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추하거나 공포스러운 것이라기 보다는, 악덕·광기·비이성·위반 등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일탈을 공중 앞에 드러내 보여 경고로 삼아야 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화(culture)와 기술(art)이 만들어 낸 근대의 지식의 산물인 괴물은 모두 당대의 역사적 맥락에서 타자로 표상된 존재라는 특성을 지닌다.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괴물로 표현되어야 할 악인지 판단하기 점점 어려운 시대가 되어감에 따라, 괴물성은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잃은 인간성의 혼란한 이미지를 나타내게 되었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괴물을 고찰하자면, ‘비정상적이고 추함’을 강조하는 이탈리아 매너리즘 화가들에게서 병리적 미술현상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들은 완벽한 외형적 재현을 이루어낸 르네상스 대가들을 추종하기 보다는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적인 것 혹은 기이한 환상을 표현하는 것에서 그들의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바로 예술은 시대적 미의식의 표현이자 작가의 사회적 현실인식의 표출이며, 나아가서는 인간의 내재적 본질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혐오감과 동시에 매력적이기도 한 괴물은 한 사회가 부과한 터부에 강력한 비판을 제공하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인간 본성의 어둡고 기괴한 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쩌면 괴물이란 인간 내면에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존재에 대한 공포의 발현이자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괴물의 형상 속에서 현대인의 내면 깊이 존재하는 비인간적 야만성을 성찰할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 전시는 기존의 괴물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입견에서 탈피하여, 관람객들의 상상의 지평을 넓히고 현대의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는 21명의 작가들이 회화, 사진, 조각, 설치, 영상 등 소재와 형식, 내용면에서 다양한 장르의 작업들을 세 섹션으로 나뉘어 선보인다.
1. 디스토피아의 묵시록본 섹션은 현대사회의 재앙적 현실에 대한 묵시록적 반응으로서 시대의 우울을 바라보며 괴물성의 수사학으로 표출해낸 작품군들이 선보인다. 현 세계의 부조리와 병폐에 대한 불만과 절망적 공포, 문명화된 사회에 대한 불안과 비관주의, 그리고 그 이면에 드리워진 비인간적인 야만성, 그리고 첨단 과학기술의 제어할 수 없는 급변에 따른 미래 사회의 예측 불가능성을 표현하고 있다.
2. 금단의 땅기존 사회의 전통적 가치나 편견에 대한 거부와 금기를 위반한 존재로서 괴물의 의미를 내포한 작품군들이 본 섹션에 해당된다. 미셀 푸코가 괴물을 ‘불가능과 금기의 결합’이라고 정의했듯이, 금기를 위반한 존재는 괴물의 양상을 띤다. 경계를 넘거나 경계에 걸쳐있는 존재가 바로 괴물인 것이다. 현대는 ‘하이브리드’의 세계로서, 자연의 위반, 종들의 혼합, 특징과 경계선들의 뒤섞임이라는 문제를 야기하면서 수많은 잡종으로 대변되는 괴물적 양상을 드러냄으로써 기존의 합리적 질서와 가치들을 교란시킨다.
3. 내 안의 괴물본 섹션에서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과 광기를 다루었다. 예술은 시대적 미의식의 표현이자 작가의 사회적 현실인식의 표출이며, 나아가서는 인간의 내재적 본질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인간 내면에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존재에 대한 공포의 발현이자,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이며 나아가 다름 아닌 우리 자신 모두에게 해당되는 심리적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이를 통해 우리 안의 괴물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섹션별 내용 및 참여작가-
Section 1. 디스토피아의 묵시록■ 신학철, 안창홍, 김혜숙, 박불똥, 이한수, 송명진, 지용호
Section 2. 금단의 땅■ 김 준, 데비한, 김남표, 한효석, 장지아, 전민수, 이 완
Section 3. 내 안의 괴물■ 오치균, 임영선, 류승환, 심승욱, 호야, 이재헌, 이승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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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2009.06.23(Tue)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