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인은 ‘꿈꾸는 책들’이란 제목으로 오는 7월 8일부터 22일까지 책을 뜯는 작가 이지현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책은 지금 위기다. 심지어 책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동안 영화와 라디오 그리고 텔레비전에 매체로써의 위상을 빼앗겨 왔으며 이제는 인터넷까지 가세하여 더더욱 힘들어 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인류의 모든 문자 정보를 디지털화 하는 중이다. 바야흐로 책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있음을 알리는 징후나 다름없다.
이지현은 이런 책에 주목한다. 작가의 해체된 책은 고유의 문자전달 기능이 상실되며 그저 흐릿한 이미지를 품고 있는 오브제로 다가올 뿐이다. 가늘고 날카로운 도구로 수백 번 반복된 노동에 의해 해체된 책을 여러 겹 쌓기도 하고 둥글게 말기도 하며 전시장 한 벽을 빼곡히 채우기도 한다. 작가는 성경, 악보, 잡지, 문학, 고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만 60~70년대 만들어진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헌책들을 대상으로 한다. 구시대 소통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 책들은 이지현의 손을 거쳐 책 본래의 기능이 해체되는 과정을 통해 ‘시각예술의 오브제’로 새롭게 태어난다.
작가는 어릴 적 시골 마을 도랑 한 켠 죽은 토끼의 사체가 부패되는 과정에서 충격과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의 서재에서 누렇게 변해가는 수많은 책들을 보며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물질로서의 책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작업인 ‘해체’와 ‘책’ 으로 귀결된다.
책은 시대성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 인류의 사상, 문화, 행동, 경제 등 모든 인간의 지적 활동 기록을 담아낸다. 이지현은 60~70년대 책들을 선택한 것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작가가 인간 사회를 느끼고 세상을 깨달은 시점. 다시 말해 사회와 문화 속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만들게 해준 그 시대의 책들을 선택한 것이다. 그 기록은 지금 작가 자신을 형성하게 한 재료들이다.
각각의 낱장을 뜯고 붙이고 쌓고 말아서 책이 가지고 있는 조형성을 끌어낸다. 활자를 읽을 수 없을 만큼 난도질당한 책은 고유 기능을 상실한다. 그러나 그의 행위는 책이 문자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동적 기능에 대한 삭제이지 오히려 그 문자를 지워버림으로써 책 자체의 소통 기능은 더욱 활성화 시킨다. 왜냐면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이 책이 무슨 내용의 책인지 궁금해 하고 외형의 조형적 감흥에 이끌려 감상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말한 해체는 기존 텍스트 안에서 절대적으로 군림되어진 기존의 관념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말한다. 그럼으로써 대상을 무력화거나 속박하는 성질로부터 해방시키는 작업이라고 덧붙인다. 돌아보면 창의적 변화는 보편적 개념 및 형식의 해체와 융합, 새로운 가치 창출을 단계로 이어진다. 그렇게 예술은 끊임없이 갱신되어 왔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에도 책의 본질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내세우는 방법적 측면이 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로써 설 자리를 잃어가는 책들은 작가의 해체와 융합을 거쳐 미적 오브제로써 새로운 기능을 부여 받는다. 이러한 작가의 변증법적 방법론은 책의 본질에 대한 아름다움으로의 접근이다. 소통이 멈춰버린 지나간 책은 작가에 의해 다시금 우리와 소통되는 무엇으로 변모된다. 비로소 책들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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