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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과의 소극적인 소통을 넘어 적극적인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 흔적들이 엿보이는 한층 더 성숙해진 작품들을 선보이는 김명화의 신작전.
기억의 재구성을 통한 불안감의 치유 주용범 | 빛갤러리 기획실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위세를 떨치던 젊은 작가들의 떠들썩한 전시를 요즘 들어서는 좀처럼 만나 보기가 힘들어졌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침체에 빠진 미술시장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는 해도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그들의 대단했던 위세라는 것도 작품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경기의 호황에 기댄 반짝 인기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뚜렷한 주제의식과 참신한 표현방법을 겸비하고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젊은 작가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김명화 작가는 이제 막 자신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 젊은 작가다. 작가는 2007년의 석사학위 청구전시와 2008년의 미니전시를 제외한다면 본격적인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신진작가지만 주제의식과 표현방법 등에서 개성은 물론 깊이까지도 담아내고 있어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신예작가다. 이번 개인전을 통해서 작가는 관객들과의 소극적인 소통을 넘어 적극적인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 흔적들이 엿보이는 한층 더 성숙해진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제까지의 작업들을 살펴보면 작가는 유난히 정체성이 모호해 보이는 대상들을 그리는 일에 관심을 보여 왔다. 무언가를 뒤집어쓰거나 녹아내리는 등 본래의 형태와 특성을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을 주로 그려왔다. 머리에 딸기를 뒤집어써서 표정과 감정을 쉽게 읽어내기 어려운 미소녀와 녹아내려서 상징과 위용을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슈퍼맨 등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다루는 대상을 미소녀로 제한하면서 딸기 이외의 좀 더 다양한 매개물들, 예를 들면 나무, 껌, 닭 등을 이용해 자신을 감추고 있는 이미지들을 그리는 약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숨겨지거나 가려져서 언뜻 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미지들이 가진 이러한 모호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쉽게 간파할 수 없게 만들면서 관객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이끈다. 작가의 말을 요약해보면 작품의 주제의식은 ‘기억의 재구성을 통한 불안감의 치유’라고 할 수 있다. 철저하게 작가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해 그 기억을 세계와 연결시키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개인과 세계 그리고 그 관계 속에 내재한 소외와 불안의 상황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이를 이미지화함으로써 불안을 유발시키는 감정을 치유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빈 공간을 배경으로 뒤집어쓰고 가리고 숨는 미소녀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소외와 불안에서 기인한 부끄러워하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인 감정을 주변의 세계로 확대시켜 나감으로써 소외된 자아들 일반의 불안감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복잡한 세계와 엄청난 군중 속에서의 개인의 소외와 불안은 다시 거대한 물질문명과 현기증 나는 변화 그리고 고통스러운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 앞의 인간의 실존적 소외와 불안으로 확대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현대인의 소외와 그에 따른 불안감을 치유하기 위해 개인적인 기억들을 소외의 상황 그리고 불안이라는 감정과 끊임없이 연결해 나간다. 이렇게 연결된 기억들은 인접한 다른 기억들과 섞여 다층적으로 재구성되면서 거리 두기를 통해 소외와 그에 따른 불안감을 차츰차츰 희석시킨다. 생활의 주변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타자와의 관계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이러한 기억의 파편들이 재해석 되고 이미지들로 재편집됨으로써 뒤집어쓰고 가리고 숨는 이미지는 소외와 불안의 상징을 넘어 치유의 이미지로 변화되는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이렇게 재구성 되고 이미지로 변환된 기억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소외와 불안감은 더 이상 고통을 주는 상처를 의미하지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소외와 불안의 감정은 드러나고 재구성 되어 이미지화됨으로써 치유되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김명화의 작업은 이렇듯 작가의 개인적인 삶의 기억들 속에서 소외와 불안과 연결된 파편들을 들추어내어 새롭게 이어 붙임으로써 재해석될 여지를 만들고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치유에 이르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대인의 병리적인 소외와 불안감을 치유해 내고자 하는 소망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