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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명의 여성작가가 참여하는 2009 한국화여성작가회 10주년 기획전 '여성이 본 한국미술'이 8월 19일 부터 25일 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열린다.
여성이 본 한국미술
2009 제 10회 한국화 여성작가회 정기전 한국미술-한국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金基珠 |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 철학박사
‘한국화여성작가회’가 올해로 10회 정기전을 맞이한다. 이 단체의 특징은 첫째, 여성 작가라는 점, 둘째, 이 땅의 여성으로서 한국화를 전공한 화가라는 점, 셋째, 몇몇 또는 하나의 특정학교출신들로 이루어진 화수회적인 성격이 아니라 출신별이나 연령의 고하(高下)를 불문하고 참여의 기회가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러한 다소 복합적인 성격이, 한편으로는 다른 기존 여성미술단체들과 달리 ‘한국화’라는 하나의 전공 하에서 자칫하면 전통적이어서 오히려 한 면으로 치중되기 쉬운 성격을 불식하고 어떤 통일된 면모를 보이면서 국내외에서 꾸준히 자기 정체성을 모색하는, 활발한 활동내역을 보여주게 한 요인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회(會)를 창립한 원로들이 계속 참여하면서 중심축을 이어와 상호 영향과 감화의 장(場)이 되어왔기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화 이번 전시를 <여성작가가 본 한국 미술>이라는 주제 하에 기획하게 된 뜻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난 10년간 ‘정보화’와 ‘글로벌화’로 크게 변한 지구촌에서 한국회화의 주요 맥(脈)인 한국화를 여성작가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또 인식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는데 있다. 즉 ‘한국화’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재조명해 한국화에 자긍심을 갖고, 앞으로의 그러한 방향으로 작업방향을 정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이미 1960년대부터 서양미학에서는 이 시대의 예술을 ‘개방 개념(open conception)’시대라고 정의할 정도로 다양했다. 현대 예술가의 개성이나 작품성향은 이렇게 다양하기때문에 구체적인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주제의 전시를 통해 회원 상호간에, 서로 ‘다양의 통일’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지 않으면 결국 한국미술 내지 한국화의 정체성의 확립은 요원할 것이다. 필자는 가정과 아이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들부터의, 즉 안으로부터의 자각이 외부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한국화여성작가회’ 회원들 역시 이 전시회의 작품 제작을 통해 각자 본인의 한국화를 보는 시각을 점검하여 자신의 앞으로의 작업을 위한 또 하나의 예지의 장(場)이 되었으면 한다.
사실상 한국화는 중국화나 일본화가 자신의 나라의 회화를 ‘국화(國畵)’라고 하는 것처럼, 한국화도 한국에서의 회화일 것이다. 현재는 대학교의 학과의 명칭도 한국화과와 서양화과이다. 따라서 국적과 달리, 한국화와 서양화의 차이를 안다는 것은, 즉 왜 우리가 굳이 구분하려고 하는가를 아는 것은 사실상 한국에서의 회화를 아는 길이 될 것이다. 인터넷이 가져온 다양한 정보와 의견제시, 상상력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국회화에서 가장 기본일 ‘한국화’는 사실상 영감에 의해 순간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唐, 장언원이 ‘그림 그리는 뜻이 그리기 전에 이미 있었고, 그림이 끝나도 그대로 남아있다(意在筆先,畵盡意存)’고 했던 화의(畵意), 즉 그림제작의 의도 내지 개념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장언원은 그러한 화의가 가장 잘 반영된 ‘경영위치(經營位置)’, 즉 구도를 ‘회화에서의 총체적인 요체(經營位置畵之總要)’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제는 한국화의 특성중 하나인 여백이 서양화의 ‘폐쇄공간’과 달리 ‘개방공간’인데도, 그 개방공간을 잘 다루는 작가가 드물 정도로 한국화도 전통적인 화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화는 지금은 거의 재료에 의한 구분이 대부분이다. 즉 예술-한국화의 정의가 정체성이 없이 표류하고 있어, 미학의 기본문제인 정의를 ‘그린다’는 일상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어찌 보면, 오히려 부박한 세태의 현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에는 동양화, 한국화에서도 추상은 보편적이다. 일찍이 플라톤은『향연』에서 미는 사랑의 대상이라고 하면서, 미의 인지는 하나의 아름다운 인체를 사랑하는 것과 모든 아름다운 신체들(의 공통점)을 사랑하는 신체적인 단계에서 시작해서 아름다운 행위와 관습들을 사랑한 다음 여러 종류의 지식에서 미를 인지하는 정신적인 단계를 거쳐 정신에 구현되어있지 않은 미 자체인 이데아를 인지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중국회화가 처음에는 형사(形似), 그 다음에는 형(形)으로 정신을 그리는 ‘이형사신(以形寫神)’에 의한 신사(神似), 기운(氣韻)이 가능하게 됨과 같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동서가 같이, 처음에는 구상에 의한 형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지에서 점점 추상적인, 정신적인 것으로 진행하므로, 우리 작가들도 그 단계, 단계들에 의한 그림공부를 거쳐 정신적인, 또는 추상을 해야 할 것이다.
독창성-새로움novelty-윤작법 예술은 동서를 불문하고 ‘규칙없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예술의 제일 특성은 ‘독창성’이다. 육조시대의 종병(宗炳)은 산수화에서도 새로운 것을 펼칠 것(暢新)을 요구했고, 북송의 소식은 ‘청신(淸新)’을 요구했다. 독창성을 목표로 했기에, 서양 역시 역사적으로,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도 새로움(novelty)을 요청한다. 그러나 중국도, 한국도 규칙과 완벽성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기본에 불과하다. 예술, 종교, 학문, 이 삼지(三枝) 조직도 그 추구목표는 자유이므로, 이들은 어느 순간 그것을 초월해야 한다. 규칙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완벽성은 국가나 종족, 작가의 개성에 따라 다르다. 고려불화는 고려만의 독특한 표현방법을 고안해 자신의 독특한 이상(理想)에 도달해 중국화나 일본화의 정교성과는 다른 위업(偉業)을 달성했고, 조선의 민화는, 완벽성보다는 완벽성 직전에 오히려 희화화(戱畵化)를 선택한 독자성을 갖고 있다.
인간은 삶에서 ‘권태’를 느끼고 누구나 새로움을 좋아하는 것은 이미 북송(北宋), 곽희(郭熙)의『임천고치(林泉高致)』에도 보이지만,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실존주의의 선구자인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 - 1855)는 그 ‘권태’를 극복하는 ‘새로움’의 방법으로 ‘윤작법’을 추천한다. 이 윤작법은 이미 우리에게 있는, 즉 우리 조상들이 터득한 숭고(崇古)요, 복고(復古)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과 전통, 숭고(崇古) 고(故) 김원용은 한국미술의 특징을 ‘자연(自然)’이라고 규정한 바 있고, 장언원은 그림이라는 것은 ‘저절로 발현되어야 한다(發於天然)’고 했다. ‘자연’이라는 용어에는 대자연이라는 의미에서의 ‘자연’과 ‘저절로’, ‘스스로’, 즉 ‘자발성’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 한국화가 이러한 의미에서의 자연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우리미술의 살길은 그 ‘자연’과 그 자연을 옛것으로부터 알아야 한다는 숭고(崇古), 이 양자(兩者)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숭고에서의 작업은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 그 의미를 역사 속에서 해석하여 계승하되 그 시각(vision)에는 현대적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오대 말 송초(宋初)의 형호(荊浩)는 “일생의 학업으로 수행하면서 잠시라도 중단됨이 없기를 결심해야 할 것”이고, 그 방법으로 우리 선인들은 ‘많은 책을 읽고, 여행을 많이 하라(讀萬卷書,行萬里)’고 권했다.
한국미술은 독자적으로 마술사를 기술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하면서도 다양하다. 우리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같다. 세계적인 중국미술이 옆에 있었다는 것은 언제나 큰 힘이요 자극이 되었다. 그러므로, 중국화와 한국화, 양자(兩者)를 차별화할 수 있다면, 우리민족의 미술자원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더구나 회화의 경우, 중국의 회화이론인 화론은 4세기부터 본격화하여 서양보다 천년이나 앞서지 않았는가? 중국은 이론과 실기가 상호 보완하면서 예술의 역사가 지속되어왔다. 추사 김정희의 작품은 숭고가 창조가 되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회화사나 화론사(畵論史)등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으나 고구려, 백제등의 미술이 남아 있다. 예로, 우리는 70년대를 깜짝 놀라게 했던 무령왕능의 유물, 1993년에 발견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1996년 5월30일에 국보 제287호로 지정됨)를 보았고, 현재 미륵사지에서 해체 복원 중 발견된 사리호등이 있다. 그것은 세계미술사에서 반가사유상, 석가탑, 석굴암에 이어 백제의 금 내지 금동(金銅) 공예예술의 그 뛰어남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 예술을 통해 우리 예술가 선조들의 뛰어난 예술적 재능과 그 당시의 부(富), 당시의 뛰어난 문화를 알 수 있다. 과연 당시 백제인의 삶을, 이상을, 문화수준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예술은 역사를 초월해 우리에게도 진한 감동을 가져다준다.
한국화 작가 여러분은 역사적으로는 이러한 자랑스러운 선인(先人)들의 후예로, 여러분들 내부에는 그러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예술혼의 맥이 흐르리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현재 미국, 일본, 유럽 등 밖으로만 눈을 돌리고 있지만, 안으로도 눈을 돌려 한국인, 한국미술에 대한 긍지를 갖고 그 찬란한 정신을 이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전통의 재해석이란 우리 속에 항존(恒存)하는 것과 변화에 따르는 것중 항존하는 것을 이해해, 그러한 토대위에서 변화에 응하는 것이다. 서양의 무분별한 모방이나 수용, 기술적인 면에 치우치는 것은 한국화에 큰 도움이 안되리라고 생각된다.
전통의 재해석의 경우, 동아시아인이 그림을 크게 인물화, 산수화, 화조화로 삼대별(三大別)한 이유도 알 필요가 있다. 가까이 보이는 인간, 인간을 다스리는 신(神)을 그리는 인물화로부터 멀리, 한 눈으로 일별하지 못해 광대한 산수를 걸으면서 장시간의 감상을 요하는, 시간까지 표현해야 하는 산수화, 멀리 조그맣게 있어서 시각을 확대해야만 하는 화조화가 동양화에서 발달했다는 것은 바로 동아시아인의 회화의 다각적인 시각의 뛰어남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회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심주(沈周)는 “산수의 아름다움은 눈으로 파악되어 마음에 머문다. 그리고 그것을 필묵으로 표출할 때는 흥(興)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山水之勝,得之目,寓諸心,而形於筆墨之間者,無非興而矣)”(卞永譽,『式古堂書畵彙攷』)라고 말한 바 있다. 즉 눈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면서 흥의 순간에 표현되는 것이니, 흥이 많은 우리민족의 경우, 그림으로의 승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예술이 흥에 의해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북송 문단의 영수인 구양수(歐陽脩)는 ‘교(巧)’보다 오히려 ‘졸(拙)’을 선택했고, 명대의 고응원(顧應遠)은 오히려 예술이 성숙된 뒤에 나타나는 생(生)과 ‘큰 기교는 오히려 서투른 듯하다(大巧若拙)’의 拙한 원(元) 시대의 화가를 고평가했다. 우리가 노인의 동안(童顔)을 사랑하듯이, 그리기 위해서 우리는 순진한 마음의 감동을 필요로 하고, 그 감동이 미(美)나 우아미(優雅美)를 산출해왔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그림의 목표는 기운(氣韻)이나 세(勢)이다. 아마도 인물화에서는 사혁(謝赫)이 말하는 기운, 산수화에서는 종병(宗炳)이 말하는 세(勢)이리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겸제의 진경산수, 특히 <만폭동>이나 <금강산전도>의 세(勢)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예라 생각되고, 그 점에서 우리는 중국화에서 그 중요성이 으뜸인 화과(畵科), 산수화와 어깨를 겨눌 수 있다고 생각된다. 과연 겸제의 금강산에서의 거유(居遊)가 그것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화 여성작가회 여러분들도, 꾸준히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도 우리 그림, 우리 산하, 우리 민족을 사랑하면서 화업(畵業)을 ‘일생의 학업으로 수행하면서 잠시라도 중단됨이 없기’를 권하면서 공부에 전념하여, 동양화의 이상인 마음의 평담(平淡)․청신(淸新)이 그림의 평담과 청신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