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근
일찍이 로댕의 문하에 있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로댕에 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 바 있다. “조각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서 3차원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이상 회화가 가질 수 없는 입체성을 운동성과 역동성으로 보여줄 수 있음이 무엇보다 조각에서 고려되어야 할 강점”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주어진 환경이나 공간과의 조화이다. 물론 조각의 기능적 요소 가운데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부가될 수 있지만 조각의 설치상의 기능도 무시될 수 없다고 했다. 조각이 공간과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측면에 동의한다면 민복진의 조각만큼 주변의 환경과 공간의 자연스러운 배치가 작품 속에서 잘 어울리는 작가도 드물다.
민복진의 이력에서 환경과 공간의 절묘한 조화를 한결같이 추구한 승리는 1979년 프랑스 르 살롱의 그랑팔레 전시에서 금상을 수상하여 한국 조각가로서의 진면목과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 것이다. 그러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는 대단히 신중한 태도로 작품을 발표한다. 그가 조각계에 몸담은 지 30년이 지난 1984년에서야 현대화랑에서 그는 첫 개인전을 가진 것이 그의 작가적 자세를 말해준다.
민복진의 조각은 초기부터 대부분이 가족의 사랑과 정감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 테마는 공통적으로 그의 작품마다 내재되어 있고 작가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과 작가정신이 담겨있다. 그가 기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재는 많은 조각가들이 공통적으로 다루어 온 인체이다. 미켈란젤로 이후 로댕이 처음 조각의 불모상태에서 인체에 대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래 현대조각은 인체에 대한 숭고한 형상화에 거의 반세기를 보냈다. 민복진이 보여주는 그 대상, 특히 인체의 조화로운 구성이 보여주는 표현 형식도 부드러운 감정으로 여느 작가에게서 볼 수 없는 인체의 숭고한 형상화에 공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물 하나하나에 통일된 비례와 엄격한 구상조각에서 요구되는 질서와 균형을 가지고 인간의 참다운 모습의 형상화에 집중해 왔다. 그래서 그의 조각에서 보여주는 인체의 자연스런 자세와 이상적인 인간의 화합은 거의 고전적인 기품을 느낄 정도로 운동성이 절제되어 있다. 이런 의도 아래서 그가 적절하게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인체의 특질을 확고한 조형성에 기초하여 구상조각의 원론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는 점은 다른 작가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운 그만의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가 지속적으로 일관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가족> 연작도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인간 삶의 구성원을 따뜻하게 형상화하고자 하는 의도로 파악된다.
초기의 아카데믹한 시기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가능한 현실의 세계 속에서 진정한 조각의 예술적 기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인간’의 표현을 통해 의지를 보여 주었다. 특히 간결한 구성과 엄격하게 절제된 형태의 모습에서 한 사람이 독립된 구조와 형상으로 덩어리가 되어 각기 분명한 구성을 보이면서 그 조형적 요소에 비례와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 이처럼 민복진의 조각은 가족적인 형태가 대부분을 이루면서 실제 그의 조각 속 덩어리는 회화의 평면성과는 다르다. 즉, 볼륨은 형태의 창조라는 보다 본질적인 방향에 집중되고 있다. 인물의 배치에 있어서도 그는 사람들의 화목과 화합이 중요한 의미로서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작업들은 어떤 거대한 예술적 이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차원에서 인간에 대한 표현이 완성된다. 그 자신이 가진 인간에 대한 순수한 조형의 의지만으로 작품을 완성하듯이 대상을 극적으로 연출하기보다 가족적인 감성을 바탕으로 빚어내고 있다.
단란한 가족이 보여주는 행복한 시간 즉, 평화로운 세계에 그의 유토피아적 이상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 유토피아적 이상을 받치고 있는 조형적 요소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과감한 형태의 생략과 구성, 애정과 사랑의 충만함이다. 그래서 그의 가족은 현대조각의 새로운 형식 창조보다는 인간이 공통적으로 추구해 온 평화의 꿈과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더욱 그것이 우리와 늘 같이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공간에 있음으로 그의 조각은 훨씬 더 구상 조각의 모범과 전형으로 남아 있다. 그의 가족은 가장 그다운 표현으로 보이지만 형식에서는 헨리 무어나 이태리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를 떠 올리기도 한다. 말을 탄 인물상 역시 이념적 조형과 명쾌한 단순화, 그리고 생명감이 마리노 마리니의 작품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그 부분은 작가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졌던 인상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만의 순수성과 부드럽고 둥근 타원형의 기본적인 형태는 민복진만의 조형적인 감성을 잘 드러낸다. 주지하다시피 민복진은 초기부터 구상 계열의 인물상 제작에서 출발했지만 전형적인 사실적 조각이 아닌 구상적인 그의 작업에는 인간과 가족에 대한 혹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성이 기저에 흐르고 있다. 또한 거친 형태도 없고 모난 부피도 없다. 오히려 자애롭고 모성이 가득한 깊은 조형성과 단순화된 인물 표현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많은 평자들은 그의 작품을 정신적 내면성에 비중을 둔 기념적인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왜 그가 일관되게 <모자상>과 〈가족> 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주제에 천착하고 있는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독자로 성장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운 그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무한함과 영원함의 절대적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작가에게 모자상의 테마는 다분히 경건하고 엄숙한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가족에서 보이는 풍부한 양감과 절제된 형태의 균형과 공간 구성에서 그의 가족상은 가족에 대한 한없는 인간적인 경외감을 갖게 한다.
물론 일부 모자상 속에는 종교적인 이미지의 ‘성모자상’을 떠올리는 형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적인 영향이나 표현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모자상 주제의 단순화와 공간화에 있어 헨리 무어적인 부분이 있다. 물론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를 정면으로 피력한 적이 있다. “헨리 무어는 거대한 언덕이나 산과 관련지을 수 있다. 반면, 나는 호젓한 계곡과 능선, 넓은 바다와 창공을 생각하며 그를 내 작품에 도입한다.” 이런 민복진 조각의 또 다른 특징은 모자상의 어머니와 가족상의 인물에 대담한 생략이다. 그는 구체적 묘사를 피하면서 내재시키려는 사랑의 깊이를 최대로 강조한다. 많은 평자들이 지적하듯이 그는 ‘육중하고 차가운 대리석 혹은 브론즈 덩어리의 인체 변형 속에 작가의 마음 속의 섬세한 감성과 자연적인 정감’ 을 심어둔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그의 모자상이나 가족상은 가장 자연스러운 생명력과 생동감으로 예술가가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공간 창조이다. 일관된 정신세계와 가족에 대한 집요한 표현, 단순과 절제가 빚어내는 인체의 최고의 하모니 그것이 바로 조각가 민복진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표현이다.
어쩌면 그의 작품이 이렇게 따뜻하고 격조 있을 수 있는가는 바로 그가 진솔하게 경험하고 그리워한 대상이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조각가인 그가 바라다 본 인생, 즉 어머니와 아들, 가족의 그 끈끈한 그리움에서 출발하는 애정이야말로 예술가에게 주는 최고의 영감이다. 이러한 내적인 의미, 이것이 그의 조각의 매력이자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그립고 끝없는 그리움과 고요한 감동을 주는 비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