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뒤셀도르프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작가 김동연이 1995년 토탈미술관에서의 개인전 이래 한국에서는 14년 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그는 경희대학교 미술대학시절, 바우하우스의 컨셉에 크게 매력을 느끼고, 1988년 독일의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나 예술과 건축을 전공하였다. 이 시기부터 건축은 그의 작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신표현주의의 대표 작가인 A.R. 펭크Penck의 제자가 된 김동연은 제자들이 가능한 한 모든 예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지도하는 펭크의 교육방침하에 3년의 수련기간을 지내고, 이후로는 오브제작업에 몰두하면서 공간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작업을 펼쳐나갔다. 마이스터 과정을 마친 후 94년 경희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기 시작한 작가는 95년 삼성출판사에서 장학금을 받고 독일 뒤셀도르프로 다시 돌아가 작업 활동을 계속하다가, 2005년 9월 경희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독일과 한국에서 작업하고 있다.
국내에 비해 독일에서 좀더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는 독일의 쿤스트할레 다름스타트, 쿤스트페어라인 하팅엔, 뮤지움 고흐, 베쿰시립미술관, 갤러리 가비크라우스, 겔셴키리헨 시립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어 주목받았고, 국내에서는 2004년, 2008년 부산비엔날레 등의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이번 개인전 이후 2010년 봄 북경 금일미술관 今日美術館 Today Art Museum 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2011년에는 독일 지역 미술관들에서의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는 작가는, 세계를 무대로 꾸준히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아름다운 도시에 깃든 아름다운 공포
어린 시절 작가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괴물이나 유령 같은 것들은 성장한 그에게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살고 있는 도시, 환경, 사회 속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개개인들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어떤 상황들이 더 큰 공포감을 준다. 작가는 두려움의 유효기간이 끝난 채 그의 상상 속에 살고 있던 몽실몽실하고,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한 모습의 몬스터들을 불러들여, 인간과 다르면서도 유사한 그들 집단의 일상을 펼쳐 보임으로써 공포의 현주소를 상기시킨다. 괴물들은 기념비를 세우고, 집을 짓고, 길을 닦고, 도시를 만들고, 휴식을 취하고, 외출을 하고, 공연을 보고, 일을 한다.
작가가 시각화하긴 했지만 온전히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이 몬스터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후기산업사회(정보화 사회), 더 나아가 인터넷, 데이터베이스, 인공위성 등으로 상징되는 후기정보화사회(제2미디어시대)에서, 유형의 물건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보다도 눈으로 볼 수 없는 무형의 지식 또는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중심이 되고, 데이터베이스, 미디어 자체가 세상을 구조화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면서, 단순히 삶의 외형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형태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 주는 공포를 은유한다.
몬스터와 인간 간에 역전된 존재방식
전시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몬스터들과 달리, 인간들은 벽에 걸려 있는 납작한 빌딩 속에 스며들어 있다. 3차원 입체 건물모형을 촬영한 후 2차원의 평면에 옮겨 만든 이 도시는, 틀림없이 2차원이지만, 사람들은 관념에 의해 3차원 공간처럼 인식한다. 실체라기보다는 그림자처럼 회색, 혹은 검은색을 띤 채 벽에 매달려 있는 이 빌딩들은 어찌 보면 유령도시이다. 한편으로는 창살감옥 같기도 한 모습이 관념의 감옥에 갇혀 있는 인간존재의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원형형태의 빌딩은 정보기술로 구축된 감시체계의 결정판인 판옵티콘(원형감옥)을 연상시키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과 그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비춰 보인다.
관념의 모서리에 서 있는 이데아와 현실
신관 1층에는 호수 깊이 숨겨진 물과 지면이 만나는 부분을 형상화한 두 개의 원뿔 형상이 놓여 있는데, 이는 구조적 관념을 상징하는 이음새를 가지고 있다. 두 개의 호수 봉우리 위에는 고대 철학의 두 거장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서 있다.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의 한 부분에서 취한 이 장면을 통해 김동연은 육체와 더불어 순수관념의 ‘이데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상징해 보인다.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김동연의 예술에는 육체와 정신, 현실과 이상이라는 두 영역이 결합되어 있다.
작가가 던지는 새로운 길
김동연의 작업이 작동하는 방식은 서로 다른 경험치를 가진 사람들이 그의 작업을 보면서 서로 다른 의문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사람마다 관점을 달리하게 만드는 다의성이 김동연의 작품에 나타나는 대표적 특징”이라는 아네테 라글러(루드비히 포름 미술관 부관장)의 말처럼 전시장에 펼쳐진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 역시 하나가 아니다. 주어진 길의 존재를 수용하고 따르기보다 해체하고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길을 닦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작가는 신관 지하 2층에 대도시의 인터체인지를 해체하여 건어물처럼 매달아놓음으로써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자세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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