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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影, Too Young _ 박대조, 조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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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통해 세상으 바라보는 두 작가 박대조, 조덕환의 投影, Too Young 전이 2009년 9월 5이부터 10월 5일까지 한원미술관에서 열린다.
投影, Too Young
박대조, 조덕환





投影, Too Young 전에 부쳐

投影, Too Young 전은 박대조, 조덕환 두 작가의 세상바라보기이다. 그들의 중심에는 아주 작고 어린 아이들이 존재한다. 박대조는 아이의 이미지를 포토샵을 통해 인위적으로 눈을 키워내고 아이의 큰 눈속에 전쟁, 테러와 같은 어른들의 이데올리기적인 세상을 담아내고 있다. 이 서정성이 높은 강열한 아이의 눈빛은 박대조의 조형의 핵심을 이룬다. ‘눈을 크게 하기’는 ‘세상을 모두 바라보기’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천안통(天眼通)으로 천가지 세상의 모든 멀고 가까운 고락의 모양을 밝혀 내다볼 수 있는 자유자재(自由自在)한 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순진무구한 아이의 종교적 세상의 관조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비극적인 형상을 새겨 넣음으로써 내용의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것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고통, 슬픔, 아픔 등과 같은 인류의 이기적 사건들이 이루어내는 인간의 역사를 어린이, 동심이라는 우리들의 원시적 순수함으로의 회귀로 비유될 수 있는 주제를 표현함으로써, 태초의 에덴 동산과 같은 ‘화해’와 ‘순수’를 되찾기 위한 작가가 제시하는 치유적 방편이라 하겠다.




우리는 정지해 있듯이 그 빠름을 모르는 것처럼 그가 만들어낸 화면속의 아이들은 정지해 있다. 그들이 존재하는 곳엔 존재와 존재사이를 연결하는 매개물들이 형상화 된다. 대기를 바라는 배를 탄 아이, 요술모자를 쓴 아이, 놀이를 하는 아이 등 관계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길들이는 것이라는 여우와 어린왕자의 대화처럼 그 길들이기는 관계 사이에 유, 무의 거미줄과 같이 얽혀진 연결고리들 속에서 깊은 관심과 따뜻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관계를 말한다. 작가가 그려내는 푸른 색조는 바다, 하늘이 만들어내는 푸르른 색처럼 매우 자기성찰적인 색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작가는 어른들의 삶을 동심의 아이들을 등장시켜 은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화면이 고요하게 그리고 낯설게 다가오지만 영겁의 시간을 내포한 맑은 아이들을 통해 가슴속에 깊숙이 숨겨두었던 잊었던 뭉클한 사랑을 건져 올리고 있다 할 것이다.
박옥생 | 미술평론가




난 자연의 일부다. 나를 넘어선 자연의 무한성도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자연의 본성과 흐름을 따를 때 나와 주변, 세상과 진심으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존과의 내밀한 공감을 통해 그림자와 더불어 길을 갈 때 나의 길과 자연의 길은 같다.’ 인간의 삶은 시간 속에 존재한다. 제각기 다른 삶은 인간의 개성을 낳고, 그 개성은 창조력의 근원이 된다. 긴 겨울 동안에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더운 여름 속에서 시원한 가을을 기다린다. 말하자면 지나치며, 기다리며, 시간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인간의 삶도 이러한 하루하루의 시간 속에서 영속적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러한 시간 속에서 하루의 가치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 이것은 삶의 리얼리티이다. 돌은 이러한 인간의 시간을 자연에 새겨놓은 화석이다. 억겁의 시간동안 조용히 잠들어 있던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조용히 관망하던 돌을 현실 세계로 끌어와서 나를, 인간을 그려 넣는다. ■ 박대조 | 상명대학교 디자인학과 박사과정




나는 아이들을 그린다. 아이들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면서 현실과 미래,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다. 여행에서 만난 아이들과 우리의 어린 시절의 모습에 현재의 나를 투영한다. 어느 햇살 좋은 날 놀이터에서 주위에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고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놀이터 풍경이었다. 갑자기 시간이 멈춘 듯 아이들의 동작하나 하나가 마치 슬로우 모션과 같이 느껴졌고 동작과 동작 사이는 점과 점을 잇는 드로잉과 같은 느낌이었다. 후에 러시아 형식주의 학자 쉬클로브스키가 말한 ‘낯설게하기’와 비슷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츠 나힌(kutz nahin)은 ‘아무것도’ 란 힌디어이며 류 시화의 글에서 인용한 말이다. 아무것도, 있다와 없다 사이의 가능한 수많은 상징들은 아이들 주변을 부유(浮遊)한다. 인도 여행에서 만난 금발아이들은 호수와 해변이 만나는 곳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처럼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나는 마치 꿈을 꾼듯한 느낌이었고 그 찰나의 순간을 <쿠츠 나힌>을 통해 기억해낸다. 자연과 아이들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 인간이 창조할 수 없는 것들, 그러므로 위대하다. 자연과 아이들의 만남은 기적과 같다. 아이와 물고기 사이에는 분명 유리벽이 있지만 회화에서는 블루라는 공간에서 하나가 된다. ■ 조덕환 | 홍익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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