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를 꿈꾸며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
-윌리엄 브레이크
윌리엄 브레이크(William Blake)는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 세상의 본질을, 순수를 깨닫게 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현대적인 재해석으로 보자면 -우주 역시 대폭발에 의한 소립자의 생성이라는 빅뱅설이 있듯- 미립자의 단위, 즉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서부터 세상이 이루어지는 질서가 담겨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다시 브레이크의 시로 지용현의 작품을 바라보자.
한 알의 모래 속에서 다시 세계가 열린다. 그러자 그 모래알은 우주가 되고, 그 우주의 어느 점에서는 다시 알이 열린다. 이것은 태초의 세계 일수도 있고, 동시에 다시 시작되는 세계일 수도 있다.
지용현이 그려내는 깨어나는 알이 있는 풍경과 어떠한 순간을 준비하는 듯 보이는 생물체들의 움직임은 그 순간이 세상이 열리는 순간임을 암시하는 듯 보여진다. 그는 이 모든 서막의 위락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손으로 이 위락의 순간을 그려내고 그로써 그의 작품은 영원을 잡아내려 한다.
<혼돈의 새벽>展은 영원의 한 알, 그곳에서 잿빛 어둠을 뚫고 나올 태양을 위해 축제를 준비하는 여정을 그리는 듯한 지용현의 작품을 소개한다. 폭풍전야 같은 고요하지만 긴장감이 감도는 대기의 흐름처럼 지용현의 작품세계에서는 고요하고 아늑하며 또 엄숙하며 신비로운 세계가 열린다. 온갖 생물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새로운 탄생을 기다린다.
이번 지용현의 Space Ritual시리즈 중 <Space Ritual-River Side>를 살펴 보자면 알은 동공의 모습을 띠기도 하고, 캔버스 위로 펼쳐진 신세계는 벌집모양으로 자신들의 끈끈한 유대와 유기적인 세계의 질서를 내재한다. 곧 껍질을 뚫고 나올 듯한 생명체 위로 녹빛 하늘의 은총이 쏟아진다.
지용현의 작품은 15C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umus Bosch)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듯 하다. 이 두 작가의 작품에는 수 많은 인간군상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동식물이 혼재한 가운데 헤아릴 수 없는 ‘상상의 서사’가 살아 숨쉰다. 하지만 보스가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 세속적 욕구에 대한 심판적 세계, 혹은 선과 악의 극명한 대립의 세계였다면 지용현은 순수의 세계에 대한 갈망과 기하학적 정신에 대한 갈구를 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태초의 원형적 대지 위를 가로지르는 선들의 흐름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용현의 작품에서는 소용돌이를 만들며 회전하는 도마뱀들(Space Ritual-Green Man), 둥근 원을 그리며 펼쳐지는 하늘 지붕(Space Ritual-Blood and Bone), 단조로운 선의 반복으로 쌓아 올려지는 탑 같은 입방체들(Space Ritual-Brain Hill)처럼 기하학적인 선의 요소가 곳곳에 깔려있다. 이 기하학적 선의 흐름은 원형 대지의 사이사이에서 솟아 오르기도 하고, 식물의 위를 가로 지르기도 하며, 어둠의 하늘에 수를 놓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섬세한 대지에서의 기하학적 선의 흐름을 보자면, 그가 그려내고자 하는 영원의 세계란, 섬세한 태초와 기하학의 정신이 함께 잉태되는 세계를 이야기 하는 듯 보여진다.
파스칼(Blaise Pascal)의 기하학에 대한 개념으로 읽어 내자면 기하학의 정신이란, 소수의 원리에서 출발하여 질서를 따라 논증해 나가는 합리적 정신인데, 태초의 섬세한 대지 위로 기하학적 입방체를 세우고 그 사이사이를 오르내리는 인간형상은 새로 열릴 세상에 더 올바른 정신이 깃들기를 기도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서 솟아 오르는 입방체는 꽃망울을 터트리며 피어 감기는 식물들과 그 사이, ‘자연의 질서 안에서 태어나야 할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지용현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이것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라고 말하기 보다는 자신이 가장 즐겨 읽었던 책과 시에 대하여 이야기 해 주었다. 그것이 윌리엄 브레이크와 파스칼의 팡세이다. 미술이 정신적인 활동이기에, 그의 말에서처럼 브레이크와 파스칼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큰 길잡이가 된다.
- 나는 나를 위하여 핏줄과 가시로 지어진 기둥을 뻗고 어둠이 스스로 빛내는 심연에 내 그림자를 새긴다.
그전보다 더 길게.
이것은 풍경,
모든 것들이 끝없는 부활과 영원을 동시에 꿈꾸는 곳이다. - 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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