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2009년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관훈갤러리 2층에서 정지영의 개인전 <눈길 Gaze> 이 열린다.
길목에서 마주친 풍경, 그 빛을 담다 조은정 | 큐레이터
길을 걷다 모퉁이를 돌 때, 오르막과 내리막이 마주하는 곳에 설 때, 순간 빛이 펼쳐지는 광경을 본다. 그것은 경계지점에서 맛볼 수 있는 색다른 현상이다. 우리는 정지영의 그림에서 이런 현상을 맞게 된다. 우선 그의 그림과 마주하면 색으로 뒤덮인 풍경을 본다. 응시의 시간이 길어지면 빛으로 가득한 풍경을 보게 된다.
정지영은 일상 곳곳에서 그런 빛과 마주한다. 그 빛은 단순히 자연의 광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품고 있는 색이 발하는 빛, 그 곳의 공기층이 발하는 빛을 의미한다. 창으로 가득 들어온 빛으로 인해 집안의 사물들이 실루엣만 떠있는 현상을 우연히 마주한 <초록색 방>에서처럼.
그는 자신이 머물렀던 곳, 스쳐지나온 곳, 떠나온 곳을 기억하고 그린다. 그에게 포착된 장면은 그 때 그 곳이라는 현장성을 가지지만 작정하고 찾아가서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순간적이다. 그러기에 그 순간적인 인상을 옮기는 데에는 기억과 느낌에 근거하여 끄집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곳의 시간성과 장소성을 담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곳에 자신이 있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장의 '사실성'에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니라 느낌의 '사실성'에 비중을 두는 것이다.
'사실'로부터의 출발은 그가 파리에서 했던 신문 콜라주 작업에서 볼 수 있다. 신문 속에 담겨 있던 내용은 잘려 붙여지면서 내용의 단편이 파편처럼 남아 존재한다. 그 단편은 읽는 사람에 따라 본래 신문이 담고 있던 내용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 내용과는 다르게 읽히기도 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화면이 구체적인 사실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사실이다.
<니스의 호텔방>< Asei's Summer >< Manor Road ><광안리 불꽃놀이><광화문 연가> 등에서 보이듯 작업은 특정한 장소에서 출발한다. 정지영의 풍경(실외나 실내)은 단순히 현장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일상의 부분을 기록하는 개인적인 풍경이다. 그 풍경은 사실의 기록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기억에 남은 퇴색되고 윤색된 잔상이다. 그는 그 당시에 다가왔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 방법은 색이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하며 오브제가 되기도 한다. 잉크로, 염색물감으로, 목탄으로, 먹으로, 한지로... 여러 가지 재료들이 그때 그 곳에서 체득하고 사유했던 것을 포착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리고 그가 마주친 순간들을 기록하였던 사진, 스케치, 그리고 작은 메모들이 풍경의 토대가 된다.
그가 화면에 담는 것은 이미지의 중첩이 아니라 감정의 중첩이다. 그때 그 곳에서 받았던 느낌의 빛을 색으로 옮긴다. 지나온 시간만큼 화폭에 그 빛의 느낌을 옮기는 시간은 더디다. 그는 그 기억의 시작으로 자신의 기억에 남은 잔상(그는 그것을 색으로 기억한다.)을 색으로 표현하며 화면에 색을 덮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색을 내기 위해, 색으로 표현되는 빛을 내기 위해 그는 화면에 수많은 흔적들을 남긴다. 선과 색, 오브제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다시 겹쳐진다. 밑의 흔적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미세하게 드러난다. 마침내 기억 속 빛의 풍경이 완성되면 그는 개인적인 시선과 느낌으로 담은 그 현장으로 타인을 끌어들인다. 기억의 시간과 공간으로의 진입이 이루어지면 그곳에 가보지 못했던 사람에게도 자신이 체득하고 사유한 공간과 시간이 전달된다. 즉, 정지영의 작품은 '감정적 풍경'이다.
<니스의 호텔방>에서 그는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밤 풍경에 이끌려 그 장면을, 그 빛을 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하지만 그가 담은 것은 창을 통해 본 바깥 풍경과 창에 비친 실내 풍경이었다. 밖을 보고 있지만 결국 안을 들여다보는. 이렇게 오버랩 되는 풍경은 자주 나타난다. 프랑스의 어느 성당을 그린 < Vision >에서 그는 바닥에 늘어진 창 그림자를 그린다. 그것은 그림자이기도 하지만 창으로 투과된 빛이기도 하다. 빛이면서도 그림자인 풍경을 통해 그는 단지 눈으로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숨겨진 의미를 포착한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닌 깊게 들여다보는 '응시'이다.
그는 풍경에서 두 지점이 만나는 찰나를 옮기는 것에서 이제는 사물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통영 풍화리 의자>가 그것이다. 특정한 지역과 사물을 명명하는 이 제목에서 그가 담고자 하는 것을 엿본다. 그가 풍화리를 찾을 때마다 보게 되는 뉘 집 담벼락에 놓인 의자는 매해 다시 찾을 때마다 그 집 앞에 놓여있었으며 다만 위치를 조금 달리할 뿐이었다. 어느 집인지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더라도 의자가 놓여 있다는 사실로 그때 그 집임을 알아챈다. 그가 풍화리에서 처음 받았던 인상, 그것은 분홍색이었다. 색으로 각인되었던 그곳이 이제는 사람의 흔적과 시간의 흔적을 담은 '세월'이란 단어가 포개진 '의자'로 남는다.
'펑펑' 귓전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뒤엉켜 퍼지는 불꽃은 하늘을 수놓고 바다에 비친다. 그것은 광안대교의 불빛을 삼키고 하늘과 바다를 불꽃으로 뒤덮어 하나가 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불꽃이 퍼지는 곳을 쳐다본다. 같은 곳에서 같은 체험을 한 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간이 지나면 이 장소, 이 시간이 어떻게 기억에 남을까. <광안리 불꽃놀이>에서 그는 불꽃과 사람과 그 주변의 것이 서로 얽혀, 관계를 지으면서 만들어가는 경계 없는 공간을 본다. <광화문 연가>에서도 개개로 모인 사람들에게서 서로의 관계성을 포착한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사진 속 풍경을 들여다보며 단체 속에 묻혀 있어도 그 존재를 드러내는 개별적 특징을 포착하는 응시의 시간을 가진다.
그가 이전에도 지금도 화면에 담고자 하는 것은 두 개의 공간이 공존하는 지점, 빛이 전체를 물들이는 시점, 그때 그곳에서만 마주칠 수 있는 현장성을 가지지만 매우 순간적인, 빛으로 포착된 '찰나'이며 마주친 순간 펼쳐지는 빛의 아우라이다. 하지만 지금 그 '찰나'는 그에게 일반적인 '찰나'가 아니라 깊이 시간을 두고 들여다보는 '응시'를 통해 인식되는 '찰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