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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상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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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열면서


 우리의 삶은 참으로 미묘하다. 삶은 긍정으로나 부정으로나 어느것으로도 말해질 수 없다. 너무도 미묘하기 때문에 긍정한다고 말해도 거짓이고 부정한다 말해도 거짓이다.


 그러나 삶은 매우 풍요롭다. 삶은 긍정과 부정 사이의 무한한 단계의 색조를 알고 있다. 삶은 무한한 스펙트럼인 것이다. 긍정이나 부정만으로는 삶을 흑백으로 밖에 나누지 못한다. 그러나 삶은 수많은 색과 톤을 지닌 무지개인 것이다.


 케냐 북부 투르카나 호수에서 이디오피아 남부사이에 있는 황야를 찾아갈 때 숨이 턱 막히도록 뜨거운 적도의 태양아래를 걸어가는 산부로족 전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자기 부족의 가축을 약탈해 간 투르카나족과 싸우러 간다고 했다. 한명은 AK47 또 한명은 M14소총을 들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 타본다던 나의 렌트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패배하러 가는 길이야. 물론 우리가 전투에서 이기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무엇이 남겠어? 승리는 동시에 패배인거야. 다만 우리 삶의 과정이기 때문에 가는거야’

 

 나의 삶의 과정은 무엇일까? 시각과 언어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온갖 빛이 혼합된 시각과 온갖 색이 혼합된 언어는 사실 빛의 부재 상태인 白

이며 색의 부재상태인 黑이다. 이것이 현실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 두 양극 사이에 진정한 삶이 존재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미소 짓거나 때로는 절망한다.  


 사물의 성질인 색과 본질인 빛 - 그것은 해석되어질 수 없다. 그가 보내는 신호는 그 사이에 있다. 그것은 너무나 미묘하여 말로 다 할 수 없다. 다만 때로 감지할 뿐이다.


 어느날 우리가 매우 명상적으로 되었을때, 투르카나에서 발견된 최초의 인간 모습을 갗춘 ‘루시’와 호모사피엔스인 ‘나’ 사이를 이어주는 영혼의 불꽃이 있음을, 그 불꽃은 내가 저 길 너머의 암흑 속에서 바라보는 별빛과 닿아있음을!


 이 세계는 사랑해야 할 것이지 해석 될 것이 아님을!

 내가 경험한 이 세계의 뉘앙스를 같이 누리며 이 세계가 조화 속에 있음을 위해!


1. 사람들


  1999년 12월 우연한 기회에 아프리카의 케냐를 간 이후 지금까지 10여차례, 한번에 3개월씩 머물다 오곤 했다.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 한국에서 백수(스콧버거슨의 ‘Korea Bug'에서 지칭)로 지내는 비용이나 아프리카에서 보내는 비용이 3개월이면 같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우정내지는 가족애로도 이어지게 되었다.

  사람을 주제로 한 사진들은 주로 이 무렵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동안 제공되어져 왔던 아프리카의 이미지인 에이즈-가난-폭력이 극히 아프리카의 일부이며 그들 대부분은 다른 여느 지역과 같은 인간의 삶을 누리고 있었고, 어느 면에서는 문명에 의존하지 않는 인간의 순수한 삶을 살고 있었다. 문명의 뒤에 숨어 머리는 인터넷에 저당 잡히고 가슴은 디카에 매달아 놓고서 삶(의 많은 부분은 고통이지 않는가!)과 직면하지 않으려는 우리와는 달리 정신의 건강성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번 숨쉬기가 끝나면 반드시 다음 숨쉬기가 이어진다고 여기는 사람들, 이 밤을 자고 나면 깨어나 새로운 아침을 맞으리라고 확신하는 사람들-그런 삶이 아프리카에는 없다. 이 번 한 번의 숨쉬기, 이 밤만이 유일한 것이다. 미래 때문에 고민하지도 과거로 인하여 고통 받지도 않는다. 단 한 번의 화려한 숨쉬기와 황홀함 밤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삶은 이렇듯 단순한 만큼 고달프고 순박한 만큼 험악하다.」 (안영상 지음 ‘나는 마사이족이다.’에서 2009.11.10 발간예정).



2. 길 위에서


  ‘사파리! 당신 사파리 가 볼껴?’ 나이로비 시내에서의 생활이 한국에서와 다를 게 없을만큼 익숙해질 즈음, 길거리를 서성이는 자칭 여행 가이드들이 따라 붙는다. 내 주머니를 뒤집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 그들은 계속 따라온다. 반응이 없자 ‘곤니찌와, 니하오마, 어디서 왔어?’하며 나 같은 무중구(흰둥이)가 된통 바가지를 쓰고 자신들은 커미션을 한몫 챙길 기회를 노린다.

  내가 시내를 서성일 때마다 물어보는 것이 귀찮아서 하루는 ‘저기!’라고 하늘을 가리켰다. ‘어디, 하늘! 당신 하늘에서 왔어?’ 하고서는 얘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말한다.

  「나도 하늘에서 왔고, 너도 하늘에서 왔지. 인간은 모두 저기서 오는 것 아냐?」했더니 몇몇은 킬킬거리고 몇은 ‘인간은 하늘나라에 살지 않는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묻는다. ‘하늘에 있지 뭐하러 이 가난한 땅에 왔어?’ 내가 또 대답한다. ‘하늘에 사는 사람이 누구야, 천사 아냐?’ ‘나도 그랬지. 그런데 어느날 여자천사와 사랑에 빠졌지 뭐야 . 저 위에 계신 분이 누구겠어? 얼마되지 않아 우리 사랑을 그 분께 들키고 이 지구로 쫓겨난거야. 그런데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 이리저리로 헤매고 있는 중이야’.」

  몇은 혀를 쯧쯧차며 그것 참 안됐군 하는 표정이다. 

 「너희들 말이야. 길에 서서 ‘사파리 갈껴?’ 물어보다가 천사 같은 여자 보거든 내게 말해줘.」그들은 그러겠다고 진심으로 답한다. 그 후로 나이로비 시내에서 내 이름은 「Angel」이 되었다. 내 성이 안(An)씨이니 어감도 괜찮은 듯 했다. 사진촬영차 먼길를 갔다 오면 그동안 안보였다며 반기며 물어본다. 

 「저 위에 갔다 온겨, 그 분이 뭐라 하던겨?」




3. 하늘을 보다 (아프리카이야기 Ⅲ의 주제)


  나는 길을 걷는다. 그 길에서 만날 수 있거나 혹은 찾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나이로비 시내에서 여행가이드들이 물어보던 Angel일 수 도 있다. 순수함, 때묻지 않은, 인간의 본성 같은 것들이 먼 시간과 공간속에 흘려져 있지 않을까하여 길을 걸어간다. 가끔은 그 길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경계가 허물어 질 때가 있다. 나의 시선은 길을 넘어 하늘로 확장된다.

  길 위에서 무엇인가를 찾을 때, 우리의 의식이나 감정, 행위들을 붙들고 있을 때 그것은 욕망이 되고 카르마(業)를 짓게 된다. 어떻게 하면 내 내부나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붙잡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 둘 수 있을까. 구름이 일어나고 흘러간다. 하늘은 그것을 붙들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게 둘 뿐이다. 하늘은 구름으로부터 자유롭고 구름은 하늘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저기에 있다. 길 위로 연장된 하늘을 보며 가끔은 기도한다. 나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허용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 할수록 내 속에 모든 것이 스며들어 있음을 느낀다. 꽃잎을 스치는 산들바람과 숲을 때리는 굵은 빗방울. 찼다가 기울어지는 달과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그리고 스치며 눈빛 마주치는 사람들......

  나는 기도한다. 


그 목소리

그 출입구

그 자유

그 아이

그 종소리

그 하늘의 신선함,


사랑해요.


그 속삭임

그 울부짖음

그것들 역시 함께였지.

당신의 필름 속에.

그 모든 것이 언제였나

그 모두 언제 시작했나

그것의 끝은 어디일까?


사랑해요. 당신을


나는 움직이고

걷고

말하고

또 걸으며 수레바퀴처럼 움직이네.

삶의 속도로 음악은 흐르고

운명은 체바퀴 도네.

저 높이 하늘에서

수 없는 별들이 빛을 뿌리고

수 없는 나무들이 홀로 자라고

셀 수 없는 검은 새들이 날고 있네.


외롭다고 느끼지 말아요.


당신이 내일의 어딘가에 있다면,

당신과 만나도 될까요?

당신 조금 옆에 자그만 자리가 있을까요,

슬픔의 뒷 켠에, 눈을 감고

당신 목소리를 따라갑니다.

당신을 감광할 때 까지

제발 제게 주세요,

당신의 빛을 보내주세요.

당신은 찬양 받는 외로운 사랑,

지난 밤의 황홀함으로

이젠 안녕이라고 말하렵니다.

결코, 결코 잊지 말 것은

당신은 저 빛입니다.


어제의 황홀함으로,

오! 외로운이여

한 번만 더 내게 .....


                   <안영상지음 ‘나는 마사이족이다’중에서 2009.11.10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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