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김희재의 개인전이 2009년 11월 4일부터 10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11월 17일부터 30일까지 광주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자연에 대한 관조와 탈속한 피안의 경계 김상철 | 미술평론
작업의 소재는 극히 소소한 일상에서 비롯되게 마련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여하히 새로운 자극을 포착하고, 이를 조형화시켜 표출해 낼 것인가 하는 점이 바로 작업의 개별성을 확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작가의 민감하고 섬세한 감성과 선험적 경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작업의 독자성은 바로 이에 근거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내밀한 시각과 경험을 여하히 구체적인 조형적 부호와 장치를 통하여 표출해 낼 것인가 하는 점이 바로 작업의 시작이자 근본인 셈이다. 만약 스스로의 감성에 의해 선택되고 가공되어지지 않은 특정한 이미지를 차용한다면, 그것은 형식주의의 나락에 빠지게 될 것이며, 단순한 조형적 재치를 통해 스스로의 감성을 포장하려 한다면, 그것은 조형적 유미주의의 질곡에 함몰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색조로 개괄되어진 풍경은 작가 김희재가 자신의 감성을 통해 일상의 언저리에서 건져 올린 내용이다. 그것은 일견 서정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작가의 관심이 반드시 자연의 서정미에 맞춰진 것이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색채는 모든 것이 탈색된 듯 하나의 색조로 통일되어 있고, 명암은 기능적인 요소로 작용하며 형상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정녕 자연계의 객관적인 상황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연출되고 번안된 또 다른 풍경이다. 비록 사물 하나하나에는 무수한 움직임들을 내재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전체적인 질서는 지극한 침묵으로 귀결되고 있다. 화면은 빛도 시간도 순간 정지한 듯한 절대정적의 고요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육안에 의해 포착된 일상의 재현적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 작가의 사유와 사색이 더해져 변환된 또 다른 상징임을 재삼 상기시켜 주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작가의 화면에는 분명 빛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밝음과 어두움을 나누는 광학적인 빛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직전이나, 저녁 무렵 해가 서산에 지고 난 직후의 상황과도 같다. 빛이라는 조건이 상실되었기에 사물의 형상은 가늠할 수 있지만, 빛에 의해 감지되는 색채는 감지되지 않는 그러한 상황이다. 이는 대상이 지니고 있는 가변적인 속성보다는 그 본질에 주목하는 것이다. 작가의 화면이 분명 서정적인 풍경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의 읽힘이 그저 서정의 자연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변의 표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작가가 탈색시킨 것은 그저 광학적인 가변의 조건색 뿐만 아니라 상식의 합리성마저 탈색시킨 것이다. 이로써 작가의 화면은 단순한 서정에 함몰되거나 사물 표현의 구체성에 제약되지 않게 되었다. 이는 무한한 사변의 공간을 확보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사유와 감성에 의해 그 깊이와 넓이가 담보되는 정신적인 것이다.
야생화가 흐드러진 들판은 고요하다. 어떤 미동도 발견되지 않는 절대정적의 공간에 흔들리는 엉겅퀴가 그나마 손짓하듯 몸을 일으키고 있다. 우뚝한 엉겅퀴는 마치 의식이 있는 영물인 듯 부드럽게 흔들리며 공간의 정적에 작은 떨림을 만든다. 그것은 극히 미미하고 섬세하지만 정적의 깊이가 한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더욱 큰 파장으로 다가온다. 비록 야생화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굳이 그 이름을 묻고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애초 작가의 관심이 야생화의 생태적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대변되는 사유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엉겅퀴의 흔들림을 통해 보는 이의 시선을 화면 깊숙한 곳으로 이끌고 있다. 그것은 무성한 야생초들이 우거진 너머에 자리하는 광활한 공간이다. 야생화와 동일한 계열의 색상을 지닌 대지는 너무도 아스라하여 그 끝을 헤아리기 어렵다. 하늘과 맞닿은 곳까지 펼쳐지는 아득한 공간은 마치 자연의 원형처럼 그렇게 아득한 깊이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나 의지는 그 절대공간 속에서 탈색되어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물리적인 크기와 넓이로 다가오는 공간이 아니라, 피안의 이상처럼 존재하는 다다를 수 없는 것의 상징일 것이다.
날카로운 나이프를 통해 자신의 감성과 조형 의지를 구체화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흥미로운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화필의 기교를 배제하고 본질과 대면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발현해 낼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이자 수단이라 여겨진다. 나이프는 거칠고 강한 특유의 개성으로 꾸미거나 부연 설명하지 않는 단호함을 지니고 있다. 대상의 객관적인 상태의 재현에 관심을 두지 않는 작가이기에 이러한 함축과 절제의 표현 방식은 그 의지와 목적에 잘 부합되는 바이다. 이에 더하여 작가의 작업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마치 봇물이 터지듯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순간적인 것들로, 서예에서의 일필휘지와도 유사한 것이다. 강하고 억샌 나이프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며 형상을 구획한다. 그것은 둔탁하고 날카로운 외형을 지녔으나 결코 기계적인 직선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호흡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가변의 내용들을 수렴하는 유기적인 선이다. 이는 작가의 작위적인 의지와 재료와 도구를 통해 발현되는 무작위적인 내용들이 어우러져 작가의 사변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미묘한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표현이다.
작가는 분명 야생화라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피안의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일정기간 지속되며 작가의 독특한 작업세계를 구축해 온 터이다. 이번 전시 역시 이러한 일련의 작업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두드러지는 특징은 작가의 화면이 점차 평면화, 단순화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와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사유가 더욱 구체화되고 내밀해 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육안에 의한 물리적, 시각적 효과에서 탈피하여 본질과 내면에 육박하고자 하는 신작들의 표현은 분명 심안에 작용하는 형이상학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할 것이다. 더불어 나이프에 의한 사물 표현은 더욱 분방하고 자유로워졌음이 여실하다. 이들은 그저 사물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작용하고 반응하며 무수한 울림과 떨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음악적인 선율로, 또 때로는 시적인 운율로 표출되며 보는 이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울림과 떨림은 극히 섬세하고 여린 것이다. 사물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조하는 탈속적 시각은 그렇게 잔잔하면서도 은근하게 또 다른 예술적 표정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관조는 단지 조형적 방법으로만 실현될 수 있는 가치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폭넓은 이해를 전제로 획득되어지는 지혜의 시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삶에 대한 긍정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과의 교감을 통해 그 내용을 풍부히 하게 마련이다.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자연에 대한 관조와 이상에 대한 추구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안식의 공간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그것은 특정한 가치나 지향을 고집하거나 강요하지 않기에 보는 이에 따라 무한한 상상과 변환이 가능한 가변의 공간이며, 다양한 해석이 전제된 감성의 공간이다. 만약 표현되어진 바, 혹은 드러나는 바의 시각적인 자극에 집착한다면 이러한 가치는 망실되고 말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읽고 음미하며 점차 화면 속으로 동화됨으로써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피안의 입구와도 같은 것이라 할 것이다.
전시기간 2009. 11. 4(수) - 11. 10(화)
초대일시 2009. 11. 4(수) 오후 5시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 (제1전시실)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02-736-1020
전시기간 2009. 11. 17(화) - 11. 30(월)
초대일시 2009. 11. 17(화) 오후5시
전시장소 광주 무등현대미술관
광주시 동구 운림동 331-6 T.062-223-6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