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09-11-28 ~ 2010-02-20
강용석
02.418.1315
한미사진미술관은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강용석 사진전 _ <한국전쟁 기념비>전을 2009년 11월 28일부터 2010년 2월 20일까지 81일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6년부터 2009년에 걸쳐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와 국립서울현충원을 비롯한 전국 약 50여 지역의 기념비를 대상으로 촬영한 작품을 선보인다. 강용석 작가는 현재까지 25년을 넘게 6.25전쟁이 한국사회에 남긴 상처와 흔적을 주제로 꾸준히 작업을 해온 국내 유일의 사진가이다. 학창 시절 <보산리>연작부터 <동두천 기념사진>연작, <매향리 풍경>연작, <민통선 풍경>연작 등을 거쳐 이번에 발표하는 <한국전쟁 기념비> 작업에 이르기까지 일관해서 하나의 주제를 고집해 왔다. 그의 시선과 관심은 항상 예외 없이 6.25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분단과 대치가 바꾼 우리의 삶, 미군의 주둔으로 형성된 우리의 풍경 그리고 전쟁에 기생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강용석의 사진이 갖는 덕목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직시하고 우리 사회의 최대 모순이자 상처인 전쟁과 분단의 현재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기념비> 강용석의 사진은 서울을 비롯해 인천, 대전, 강원, 경기, 충남, 충북, 전북 등 전국에 걸쳐 산재한 6.25전쟁 참여 장군이나 일반 군인들의 동상, 전쟁 관련 전적비 또는 전투 승리 기념비를 찍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념비가 위치한 지정학적 특징과 그곳에서 서성이거나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우러진 장면이다. 불멸의 권위를 부여하고자 만든 영원성의 상징인 기념물과 덧없이 스쳐가는 평범한 개인들의 일상이 충돌하면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근대 사진(Modern Photography)이 발견한, 사진의 미학적 장치를 완벽하게 소화해서 사진이 갖고 있는 정통적 가치의 힘을 보여주는 강용석 작가의 작업은 한국사진의 기초를 튼실하게 만드는 과정임과 동시에, 한국사진 역사의 빈 공간을 완벽히 메워내고 있는 성과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쟁 기념비들이 갖는 긴장의 역사와 현실의 이완된 풍경을 다시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작가노트
한국전쟁 기념비
The Korean War Monuments
강용석(Kang Yong Suk)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수많은 현충 시설과 전쟁 기념비가 존재한다. 그것들이 흔한 유적지나 역사 교육 장소로 지정된 것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그 기념물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에 주목하는 경우는 현충일이나 한국전쟁 기념일을 제외하곤 그리 많지 않다.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군인이나 장군들의 동상이라든가 그것을 상징하며 우뚝 솟은 기념비나 기념탑들은 우리의 일상적 정서와는 거리감을 주기도 한다. 그것들은 공원이나 거리 한가운데를 메우는 낡은 장식물에 불과하거나 외진 숲의 구석에 고인돌의 무게처럼 홀로 방치되어 놓여있기도 하다.
이러한 기념물들은 한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 또는 그 내부의 유력한 권력 집단에 의해 설립된 것이다. 이러한 권력 주체는 그들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그들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특정 인물이나 집단 또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지속적으로 "기념(commemoration)"할 필요성을 가진다. 기념이라는 의식적 문화적 행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상징적 행위들이 포함되며, 이를 통해 한 국가나 사회의 배타적인 집단 기억이 생겨나게 된다.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기념비와 기념 장소는 단순한 장식적인 기능을 넘어서 권력 체제의 유지를 위해 매우 의미 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들은 개개인의 일상에 직접적인 호소는 하지 않지만 일정한 사회 공간 내에서 공적인 위상을 갖는다. "기념비적(monumental)"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일상 세계로부터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에 불멸의 권위를 부여한다.
그 중에서도 이러한 기념 행위와 특징을 가장 여실히 드러내는 것은 바로 전쟁 기념비이다. 전쟁 기념비의 건립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의 죽음이 전 국민의 기억을 통일시키고 미래의 좌표를 알리는 상징적인 기호로 작용한다. 여기에는 역사의식 고취와 체제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가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 전쟁 이 후 지금까지 세워진 전쟁 기념비들은 군인들의 영웅적인 장렬한 죽음과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조함으로써, 전쟁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의 고통과 수모를 이겨내도록 하며, 북한 공산당의 만행을 부각시켜 투철한 반공의식으로 재무장하도록 강요한다.
현재까지 만들어진 전쟁 기념비들은 너무도 정태적이며 위압적이고 또한 선언적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 제도적 기반이나 사상적 성격에 있어서 점점 그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우선 제도적인 면에서 그것은 관료주의 혐의가 짙게 배어있고,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로부터 하달된 형식규범은 지나치게 인습적으로 보였으며 과거 호소력 있던 메시지도 공허하게만 들리게 되었다. 사상적으로도 과거를 현재와 미래의 지침으로 삼는 역사주의적 발상이 이제 논리적으로 의심스런 것으로 생각되기 시작했다. 특히 전쟁 기념비에서 나타나는 화석화된 과거의 무게는 현재의 삶을 억누르는 피하기 어려운 중압감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전쟁에 참전했던 개개의 군인들의 희생과 고귀한 죽음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폐쇄적인 정치적 의도와 이데올로기의 협소한 주장 때문이다.
이제 전쟁 기념비에 대한 이해는 전투 장면이나 전몰 용사의 기념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것은 감상자들에게 과거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과 방향을 제시해서도 안 되며 오직 개인 스스로의 성찰을 유도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집단 기억이란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 속하는 의식이다. 과거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정치적으로 도구화되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연민이나 도덕적 수사 또는 미적 장식으로 침전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잊혀진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여야 하고, 또한 과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반성하는 일이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집단기억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전쟁 기념비들을 통해 긴장의 역사를 보고, 현재의 현실을 통해 이완의 풍경을 다시 본다. 이것은 근 현대사에서 한국 전쟁에 대한 집단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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