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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지 않음을 통해 그려진 것 이외의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며,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또 다른 감성을 표출하고자 한다.
opening 2010. 3. 17 pm 4:00
여백을 지향하는 담백한 색채의 심미김진관의 작업은 일반 채색화와는 달리 허허롭다. 색채를 중첩하여 깊이를 추구하거나, 묘사에 집중하여 사실에 박진하는 표현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작고 소소한 사물들을 마치 점을 찍듯이 펼쳐 보이는 그의 화면은 무심한듯 하기도 하고 적막하기도 하다.
채색화 특유의 장식적 화려함이나 특별한 기교적인 발휘도 배제한 채 그저 담담하게 사물들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그의 화면은 어쩌면 그려진 사물들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려지지 않은 여백들을 지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여백은 비어 있다. 그것은 비어있음으로 더욱 충만해지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적막하고 쓸쓸한 감성과 정서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그리지 않음을 통해 그려진 것 이외의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며,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또 다른 감성을 표출하고자 한다.
김진관의 작업은 소박하다. 요란한 성장에 화려한 화장을 한 것 같은 일반적인 채색화에 비한다면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것은 마치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같이 풋풋하다. 이는 작가가 의도하는 바일 것이다. 진하고 화려하며 두터운 채색화에 대해 작가는 연하고 소박하며 얇은 채색의 화면으로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바삐 사는 현대인들에게 느린 삶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진한 향신료에 길들여진 입맛에 풋풋한 푸성귀의 향기를 전해주는 것과 같다.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그의 화면은 전통적이라 일컬어지는 일반적인 채색화와는 사뭇 다른 것임에 분명하다. 그는 진채로 통칭되는 기존의 채색화에 대한 반성을 통해 새로운 채색의 심미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소슬하고 소박하며 담백한 그의 화면은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심미 특질과 부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실험과 성취는 이런 면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 상 철 미술평론
작가 생각
보편적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사회의 이기주의가 팽배하여지고 인간의 본질을 상실해가는 현시대에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할 때가 아닌가 한다.
재작년 늦가을 서울 근교로 스케치를 다녀왔다. 맑은 가을 들판은 제각기 색깔과 모양이 아름다웠다. 오후 바짝 마른 잡풀들을 밟는 순간 바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들풀들의 씨앗들이 튀겨나갔다. 자세히 보니 짙은 갈색과 붉고 다양한 씨들이 앞 다투어 터트려지고 있었다. 그 소리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이는 마치 동양화 화선지 위에 긴 호흡을 한 후 필연적인 점들을 찍는 것 같았다. 퍼져가는 공간의 선과 점이며 시점이었다.
이번 그림들은 우리 삶 속에 접할 수 있는 작은 씨앗들의 생명과 본질에 뜻을 같이 하였다. 모든 자연은 생의 산물을 낳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물음이며 공생의 장이다. 아내의 병간호와 더불어 자연의 작은 열매나 하찮은 풀 한 포기라도 그 외형 이전에 존재하는 생명의 근원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작은 곤충들의 생태적 변화를 작품으로 표현하여 왔다. 하나 하나의 파생된 의미들은 이유와 당위성들이 분명히 있었다. 집이 경기도 주변이라 주말농장의 식생태물과 더불어 가꾸고 볼 수 있는 경험이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그것들을 통하여 삶의 깨달음으로 다가고자 하였다. 오늘도 전통 한지 위에 함축적 사고의 여백과 자연의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