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2010-07-13 ~ 2010-08-29
금몬당/김계현/김범준/김영채/박현곤/백종기/서희화/손원영/신명환/신현중/양진우/양태근/오원영/이이남/장영진/진영섭/차상엽/천성길/한선현/한지선
유료
02-580-1601
미술은 놀이!
올해 8회를 맞이하는 <미술과놀이>는 2003년부터 매년 여름에 개최하는 예술의전당의 대표적인 기획전이다. 지난 7년간 총 관람객 43만여 명이 다녀갔다. <미술과놀이>는 ‘현대미술은 난해하다’는 편견을 깼다. 또한 ‘놀이’라는 대중적인 언어로 관람객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더욱이 감상자의 층을 어린아이에서부터 청장년에 이르기까지 확장시켰다. 온 가족들이 함께 현대미술 작품을 즐기도록 한 것이다.
미술에 있어서의 ‘놀이’란, 단순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개념이 아니라, 창작 행위 속에 깃든 원천적인 즐거움을 말한다. 이에 따라 전시를 통해 현대사회와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다양한 형태의 유머와 위트, 기지 등을 풀어놓기를 제안한다. 그것이 한 점의 회화가 될 수 있고 미디어작품이 될 수도 있다.
네버랜드(Neverland)로 가는 길
미술가가 창조해 놓은 수많은 작품들, 그 결과물들은 바로 이러한 놀이의 산물이다. 놀이의 기술로 말미암아 수 많은 관람객이 마법에 걸려들었다. 현대미술을 대상으로 일반 관람객을 매료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전시의 역동성이 관객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시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성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전시와는 무언가 남다른 요소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풍부한 상상력의 결과다. 놀이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그때 그 때 새로운 기준을 만들면 된다. 그러기에 늘 새로운 방법이 탄생한다. 수년간 지속되어도 늘 새로운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놀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 때문이다.
금년도의 <미술과놀이전>은 ‘네버랜드’로 찾아간다. 이 곳은 동화 <피터팬>에 나오는 소년, 소녀들만 사는 꿈의 동산이다. 영원히 늙지 않는 땅이며, 가상의 공간이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식물이 살아서 같이 호흡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누구나 꿈꾸는 세계, 모두가 그리는 세계를 미술작품으로 구성했다. 관객들도 이 새로운 예술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문학적인 소재는 늘 우리로 하여금 꿈꾸게 한다.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그러나 느낄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대상을 배경으로 놀이와 상상력의 세계를 다룬다.
재미있는 세계 속에 진실이 담겨있다고 했다. 대립의 각이 존재하고 있는 세상과는 다르다. 먹이사슬과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현실과는 다르다. 그곳은 공존의 세상이요, 아름다운 선율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러기에 수많은 동물이 어울려 지낸다. 기름진 땅에 풀과 나무가 풍성하게 자란다. 이 전시는 잠시 접어두었던, 혹은 학습의 결과로 길들여져 있었던 우리의 인식을 전환시킨다. 네버랜드, 그 곳으로 통하는 길을 이 전시는 보여준다.
과자와 과자상자
네버랜드는 기존에 다루던 미술의 재료도 바꾸었다. 발상을 새롭게 했다. 굳이 정형화된 미술재료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과자나 과자상자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국내 제과회사인 크라운해태와의 협업도 큰 몫을 했다. 기업은 상품 재료를 작가들에게 제공하고 작가는 이를 놀라운 작품으로 보답했다. 과자, 혹은 과자를 감싼 부드러운 포장지가 작품재료가 된 것이다. 단순히 재료가 바뀌었다고 신기해 할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간 잠시 잊었던 과자에 대한 향수다. 잠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도 좋겠다. 우리는 독특한 과자의 독특한 향을 기억한다. 혹은 봉지를 풀 때에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즐겁게 반응하기도 했다. 누구나 과자에 얽힌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스토리를 이 전시에 담았다.
이 전시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예술작품에서 수많은 이들이 아이디어를 얻어가곤 한다. 예술가들의 발상을, 기지를 배워갈 수 있다. 나아가 이 부드럽고 한없는 상상력의 세계를 누리는 일에서 삶의 기쁨을 얻어갈 수 있다. 참여 작가의 절반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 고상하고 격조 높은 전시를 기대한 감상자들에게는 부족할는지 모르겠다. 이 전시는 방학기간 학생들이 보면 좋겠다고 성급히 말할 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이 전시는 아이들이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기서 피카소의 유명한 말을 기억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내 일생 동안의 작업은 아이의 그림을 닮으려는 과정이었다.’
전시장 정경
전시장에 들어서면 놀라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실물크기에 가까운 헬리콥터가 미술관 천정에서 유영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블록으로 일일이 끼워 맞췄다. 어린이의 놀이와 어른들의 그것이 과연 구별되는 것일까. 유년기의 놀이가 예술작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모호함을 즐기게도 해준다.
높이 8미터, 폭 15미터에 이르는 높다란 벽면에는 1,000여 마리의 물고기가 춤추고, 잔디 위에는 온갖 동물이 한가롭게 쉬고 있다. 양과 염소가 있다. 당나귀의 희한한 얼굴표정을 바라보자니 절로 웃음이 난다. 번쩍이는 자개로 만든 거대한 도롱뇽, 목조로 만든 에너지 넘치는 사슴들. 여기에 중세 기사가 등장하고 마법사가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한다. 반짝이는 과자봉지, 온갖 종류의 껌 종이가 훌륭한 예술작품의 지위를 얻었다. 과자부스러기 몇 개를 놓고 빛을 비추니 근사한 거북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모두 즐거운 모습이다. 행복한 풍경이다.
농담이 진실이 되기도 한다. 입 꼬리가 점점 내려가는 이 시대에 이런 아이디어는 어떨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여기서 지난 시절의 우스갯소리를 연상해서는 안된다. 정말 냉장고에 코끼리를 구겨 넣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 톰과 제리? 여기서는 톰이 탐욕스럽게 ‘젤리’과자를 들고 입맛을 다시고 있다. 이런 식이다. 사고의 유희, 언어의 유희가 난무한다. 전시를 통해 대단한 교훈을 얻지 않아도 무방하다. 관객들은 즐기면 된다. 이 전시만의 특징이다.
이 전시는 미술관이 지성인들만의 거처에서 벗어난 전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대중들에게 팔을 벌린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그러기에 이해하기 힘든 전시보다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전시로 선보인다. 전시가 어렵지 않다는 것과 전시수준이 낮다는 말은 별개의 사실이다. 이를 혼돈해서는 안 된다.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면밀히 살펴보라. 하나의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들이 기울인 시간과 노력을 들여다보라. 쉽게 보이는 것이야말로 어려운 고민이 전제되어 있다. 쉬운 언어로 가공하기 까지 작가들이 들인 공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시대를 앞선 작품도 많을 것이다. 당대에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겠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전시에서는 공감에 눈높이를 맞추었다.
총 20명의 작가가 이 전시에 뜻을 같이 했다. 작가의 연령과 지위는 무관하다. 완벽하게 미술계에서 자리 잡은(?) 유명교수가 출품했는가 하면,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도 있다. 이름만 들면 다 아는 작가가 있는가하면, 아무도 시선주지 않는 외딴 곳에서 묵묵히 작업하는 작가도 포함되어 있다. 외적인 요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젊음이다. 놀이의 사고다.
금년도 여름을 맞아 한가람미술관이 어떤 놀이가 이루어지는지 찾아가보자. 네버랜드로 가는 길, 즐겁고 가슴 뛰는 감동이 있는 곳이다. 이 전시만큼은 마음껏 사진 찍을 수 있다. 꼭 카메라를 준비해서 기념으로 남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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