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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영감을 색과 필선으로 직조하며 한층 표현의 너비를 넓히고 깊이를 심화시킨다.
문혜자, 음악의 회화적 변주서성록 |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리듬과 그 리듬이 실어내는 시각적 여운이 배제된 그림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회화에서 리듬은 그림에 활력과 생기를 주기 때문이다. 평화스런 들녘과 풀밭을 스쳐가는 바람이 시를 낳는 것과 같다. 리듬을 통하여 울림을 던져줄 때 관객의 감동을 낳고 뇌리속에 오래 기억된다. 육조시대 사혁이 창안한 ‘기운생동’도 따지고 보면 눈에 호소하는 형상의 재현을 앞세우기 전에 생동의 리듬을 타는 것을 중시하였으며, 추상회화의 발화점이라고 할 수 있는 칸딘스키가 바그너의 <로엔그린>과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에 매료되어 리드미컬한 추상회화가 탄생했다는 것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추상은 내적인 움직임을 육화하는 활동이다. 내면 상황을 필선의 세기나 방향을 통해서 혹은 색깔의 조화나 대비를 통해 나타낸다. 여기서 내적 움직임은 마음과 정서같은 것들로 요약되며 그것들이 육화하는 과정에서 리듬과 색채를 매개로 하게 된다. 물론 이점은 실제 이미지를 다루는 형상미술도 마찬가지지만 추상의 경우 실재 이미지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리듬과 색채에 대한 의존도가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리듬을 얼마나 잘 구사하고 색채를 얼마나 잘 요리하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 된다. 리듬과 색채는 문혜자의 작품에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혜자의 추상은 질풍노도를 방불케 했다. 거친 파도가 몰려오고 천둥과 함께 비바람이 캔버스를 휩쓸고 지나간듯 질주하는 감정이 화면에 꽂혔다. 보색의 충돌, 포효하는 듯한 제스처, 화면 곳곳에 자리잡은 동요와 긴장의 편린 등. 이와 같은 다이나믹한 표정은 재즈음악에 영감을 받아나온 것들이다. 작가 스스로 재즈가 “나의 감정과 작업에너지, 그리고 나의 정신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가면서 나의 작업에 강렬한 색채와 자유분방하고 예리한 선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음악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재즈의 빠른 속도감, 즉흥성, 효과음, 여러 악기를 연상시키는 각기 다른 음색, 박진감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는 이렇게 화면을 음악적 요소로 채운다. 색채,자유로운 동작, 조화로운 구성이 화면위에 리드미컬하게 흐르고 이러한 음악적 감성이 문혜자의 붓터치를 리드하게 만든다.(Paola Trevisan)
이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중에는 <폰드>,<썬셋>, <랜드스케이프>, <클라우드>,<썬라이즈>,<핑크 스카이> 등 풍경의 요소를 도입한 것도 여러 점 발견할 수 있다. 만일 실제의 풍경이 고요하고 정적이라면 작품에 등장하는 풍경은 생기발랄하고 꿈틀대는 듯하다. 대지의 기운을 머금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흔들리는 감정을 대입시켜서일까. 화면은 끝없이 동요하고 출렁인다. 그의 풍경 역시 화면의 리듬감을 최적화할 의도로 나온 것이어서 굳이 실물의 자연을 구체적으로 옮길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필선이 화면을 자유로이 주름잡고 있는가 하면 순도높은 색채가 그림에 청신한 기분을 북돋아주고 있다. 산뜻한 생명감이 작열하고 유쾌한 감흥이 관통한다.
근작에서는 작가의 회화의 음악적 접목과 여러 패턴의 연동을 좀더 분명히 목격할 수 있다. 음파같이 출렁이는 물결 위로 음표가 떠다니는 모습과 점박이 포인세티아, 종소리, 총총한 별들, 공간을 배회하는 새들, 도움을 요청하는 갈급한 손, 연둣빛 들풀, 희생을 추모하는 무희의 이미지 등등. 그 외에도 모종의 비밀을 간직한 듯한 주사위, 마차, 나무,전화기, 여인, 양떼, 꽃송이, 어스름한 달빛 등과도 조우할 수 있다. 그의 캔버스는 온통 총천연색의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는데 매우 칼라플하고 장식적이다. 네모의 캔버스를 다시 정방형으로 나누고 그 안을 다시 조그만 면으로 잘게 구획하여 이미지를 채워간다. 이미지를 넣을 때도 있고 장식적 패턴으로 충당할 때도 있다.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로서 음악해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인데 종래의 음악적 리듬감을 유지하면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기용하는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소리가 얽히고 조화를 이루며 들려지듯이 색상이 옆의 색상과 조응하고 때로는 충돌하며 멋진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그에게 색은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물이자 전체 화면은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콘서트장으로 탈바꿈된다.
특히 이번 작품전에는 천안함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2백호의
(2010)가 그러하다. 원래 이 작품은 세계대전때 무참하게 죽어간 유대인들을 기릴 계획이었으나 공교롭게도 같은 기간 천안함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꽃같은 젊은 장병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으로 내용을 바꾸었다고 한다. 북한의 도발로 수십명의 영혼이 적막한 심해의 바다속에 잠들어버렸고 안타깝게도 그들의 꿈마저 앗아가 버렸다. 음악으로 치면 레퀴엠에 비교할 수 있는 이 그림에서 아무런 죽음의 냄새도 느낄 수 없는 것은 그들의 희생을 더없이 고결하고 아름답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군무를 추듯 시신들이 별 주위를 떠돌고 분홍,파랑,노랑의 색깔과 장식성높은 패턴들이 이들을 떠받치고 있다. 조국을 위한 희생만큼 고귀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림에서 이들은 별들처럼 찬란하고 새처럼 자유로우며 무지개만치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작가는 비통한 심정으로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제는 하늘나라로 향하는 이들의 길을 축복하기 위해 화면에 꽃을 깔아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청년들의 고귀한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거기에 담긴 의미를 예술로 승화시킨 역사적인 작품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의 작품은 ‘음악의 회화적 변주’를 과제로 삼고 있다. 귀로 감지할 수 있는 리듬이나 음을 화면에 옮기려면 시각언어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하다. 음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작가는 율동적인 드로잉과 맑은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포효하듯 자유로운 드로잉과 순도높은 색깔로 화면을 덮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번안하는데 천안함 장병을 추모하는 작품이 그런 예에 속한다.
작가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영감을 색과 필선으로 직조하며 한층 표현의 너비를 넓히고 깊이를 심화시킨다. 청신한 기운을 내장한 듯한 조형언어를 통하여 생명의 순수함을 증폭시키는 것은 그로 인해 얻게 되는 부수물이다. 작렬하는 생명의 불꽃속에서 우리는 생의 환희와 기쁨에 전율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로망에 취해 가슴 저려한다. 이처럼 작가는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인간군상을 마치 오선지 위를 분주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음표처럼 거기에 고저강약을 보태어 실어낸다. 봄철이면 코끝을 파고드는 꽃향기에 취해버리듯이 그의 작품을 통해 순수한 영혼의 향기가 번져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숨을 쉬는 캔버스
음악을 들으면서 그 느낌을 재창조하기위하여 나의 온 정신은 긴장되고 예리한 칼날처럼, 혹은 아주 부드러운 꽃잎처럼 다양해진다. 태양의 빛에 가까운 노란색을 캔버스에 먼저 칠하고 자주색으로 자신감 있게 붓으로 드로잉한 형태는 끝까지 유지한다. 왜냐하면 나의 정신이 캔버스 위에 표현 되는 드로잉이 나의 가장 진지한 정신의 표현이므로 나는 그것을 존중하며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한다. 드로잉한 선 주위에 남겨지는 아주 세밀한 공간은 나의 그림이 숨을 쉬는 공간이다. 물감으로 빈틈없이 메워진 캔버스를 나는 싫어한다. 생명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숨을 쉬는 공간을 남기기 위하여 나의 붓은 항상 긴장한다
나의 그림 기법 중 색을 두텁게 칠하고 스크래치 기법으로 드로잉 하는 것도 작업을 하는 즐거움의 하나다. 그것은 붓으로 드로잉 할 때보다 더 긴장된다. 그때 나는 더 캐주얼하고 대담해 진다. 스크래치 기법으로 표현하는 별은 나의 꿈의 반영이다. 붓으로 그릴 때 보다 더 예리한 표현이 된다.
팔레트 위에 남겨진 쓰다 남은 물감이 아깝기도 하지만 즉시 닦아 버린다. 다시 새로운 느낌으로 새로운 혼색을 시도하기 위함이다. 나의 팔레트는 항상 비어있다. 나는 내 주위의 대부분의 물건들을 가장 간소화 한다. 나의 사고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창문이 없는 나의 작업실을 좋아한다.
균형감 없이 흩어져있는 이슈들이 질서 있게 정돈되어 보이도록 구성하는 과정에서 나는 무척 고심한다. 그것은 현대음악을 들을 때 자주 느끼는 “불협화음속의 조화”를 닮고 싶어서다. 그것은 나의 정신을 보다 현대적으로 이끌고 가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나의 그림은 음악을 듣고 느낌을 전달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드로잉 하는 첫 과정부터 끝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공연이나 개인 연주자의 공연 실황을 보듯이 표현하고 싶었다.
2010.6월 작가 문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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