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훈
김동욱은 풍경을 찍는다. 한때(1994년)는 농촌풍경의 배경이 담긴 농민의 모습을 찍었고, 최근(2005-2008년)에는 세계의 건축물을 모아놓은 미니 세트장과 영화. 드라마 촬영용 세트장을 찍어오고 있다. 풍경이라는 정의를 세상에 현존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주체적 인식에서 망각된 기억을 되새기는 ‘회귀적 피사체’로 새삼스럽게 피력한다면, 10년이라는 시간을 달리한 두 피사체는 김동욱의 인식적 풍경의 스펙트럼에 위치한다.
그 10년 동안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낭만과 서사의 조망체로 수많은 대상과 관계를 맺어왔다.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역사․문화적 사건과 현상들 속에서 기억과 현재의 온갖 편린들을 토로하며, 즐거운 衣食住생활 속에서 그로부터 오는 상상적인 것들과 만남을 가져왔었다. 그 관계의 중심에서 작가는 빠르게 스쳐가는 현대 문화의 상징적 언어들을 포착하려 하였고, 이러한 시도는 보는 이의 시선과 시야, 입장 혹은 욕망에 따라 풍경이 변하고 재구성되듯이 10년 전에 보았던 서사적 풍경에서 서사적․낭만적․허구적․몽환적 풍경으로 전이되어 나타났다. (그의 이러한 변모는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본다.)
그 결과, 세트장 촬영 시리즈 작품들은 기억 저편에 존재했던 역사와 사건, 그리고 감성을 변화된 지금의 문화적 콘텐츠에 은유하여 자신의 관점에서 에피소드를 갖는 (애초에 의도․제작된 원본을 벗어난) ‘사진 속의 연극’적인 혹은 ‘연극 속의 사진’적인 찰나를 제시하며,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 가상과 현실, 아름다움과 허망, 그리고 사진의 존재와 허구를 드러낸다. 또한 그 이면에는 가시화되는 현상 자체의 시선이 ‘기계적 장치’의 의해 놀아난다는 계몽적 태도가 슬쩍 깔려 있다.
그러한 관점들을 드러내기 위해 2006년에 발표한 <그림엽서(Picture Postcard)>(세계의 건축물 미니어처를 촬영)에 이어 이의 확장 개념인 <오래된 사진첩(Old Photo Album)>에서도 드라마, 영화 세트장인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1920-30년대 명동, 종로, 청계로 등을 재현; 장군의 아들, 야인시대 등의 영화•드라마 촬영)와 ‘상하이 필름 스튜디오’(1930년대 중국의 남경로 등을 재현; 아나키스트, 색계 등의 영화 촬영)에서 촬영을 하였다. 이때 각각의 세트장을 정통 사진촬영의 대표격인 4×5인치 대형 카메라로 가장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시점에서 의도적으로 핀을 살짝 ‘틀어-촬영’하여 사진의 원본성을 상실하게 하였다. 이는 사진 고유의 신뢰성을 저버리는 행위로서, 아니 사진의 외연의 확장을 통해 자신의 인식의 폭과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행위였다.
포커스를 비틀어 낯설게 보게 하는 방법은 현대의 사진기법에서 이미 통용된 것으로 그리 신선하거나 혁신적이지는 않다. 다만, 김동욱이 사진으로서 서술해 나아가야만 하는 자기만의 방법적 과정에서 필시 거칠 수밖에 없는 관문이라 생각 된다. 그것은 일종의 종이(인식 대상) 한 꺼풀(막)을 벗겨내는 것과 같다.
그의 이러한 사진적 특성과 의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김동욱은 사진 입문 이후 사진의 정통성을 섭렵하기 위한 자세로, 동시대적 상황을 서사적 구조로 농민의 모습을 흑백 촬영(스트레이트 포토)하였고, 이후 생계 수단으로도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사진의 정체성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의문은 수잔 손탁(Susan Sontag, 1933-2004, 미국의 수필가․소설가․예술가)의 저서인「사진에 관하여」(1977)(특히 첫 장의 ‘플라톤의 동굴에서’에 서술된 내용이 중심)를 통해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며, 자신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표로 삼게 된다. 그의 멘토링이 된 주된 내용들은 사진의 역사보다는 사진의 비평적 관점에서 장단점을 서술하거나, 사진이 통용되는 외연의 자율성과 다른 영역(특히 회화)과의 관계성에 대해 서술하거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진으로서의 존재론을 서술하는 등 작가의 의식을 유연하게 또는 여물게 하는, 작가에게 심미적 혜안을 던져 주었다.
그 심미적 관점은 대상을 여러 층위로 상상하게 만들며, 근대의 시각과 문화, 기억이라는 소실점(消失點)을 현재적 관점에서 번안하여 대상을 전복시키고 조작하는 행위까지로 이어졌다. 그래서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 상하이 필름 스튜디오에 세트화된 가설은 작화된 사진 뒤로 밀리며, 그 자체의 존재성은 잃어버렸다. 순간 그의 사진 속에는 새로운 시나리오가 쓰여지고 있으며, 이것은 새로운 가설을 위한 판타지임을 자처한다.
그렇게 탄생한 ‘Old Photo Album’ 판타지는 두 개의 시선을 던져준다. 착시현상으로 인한 주체적 시선의 미끄러짐이고, ‘낯선-익숙한’ 공간의 교차점에 서있는 주체의 시선이다. 이 시선에 의해 우리는 각자의 서 있는 지점에서 작가의 시나리오(이미지 조어)를 의심하게 되며, 실재 존재하는 현재의 건축물과 사람, 그리고 문화적 체험의 시선으로 돌아가는 순간 어떤 혼동 아니면 기억과 상상의 풍경의 시선들로 빠져들지 않을까?
작가는 촬영시 ‘허망하다’는 생각을 가져간다고 한다. ‘허망’은 비판적 관점과 허허로운 관점이 동시에 작용한다고 본다. 요즘의 세상에서 진짜와 가짜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흥미를 끌지 않는다. 생활 속에 저며 들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조차도 허물어져가고(아니 허물어졌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조차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곳(사실 이 곳은 ‘사회-나’의 관계 속에서 각자의 각본대로 안식처를 만드는 세트장이다)이 세트장이라고 가정한다면, 김동욱이 가설한 판타지는 실제 속의 우리들이 펼치는 연극적 상황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