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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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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내용

머리 속에 존재하는 어떤 공간에서의 경험과 기억은, 생생했던 그 현장의 뚜렷한 이미지 보다는 추상적이 형태로 흐릿하게 그려진다. 동시에 기억 속 장면들은 시간과 상관없이 오버랩되어 겹쳐지기도 하고, 조각조각 흩어지기도 한다. 


하얀 캔버스 위에 겹겹이 쌓인 투명의 모호한 흔적들 속에 김미라 작가의 기억과 시간이 담겨있다. 건축적 구조물의 형태, 기하학적 형태 모두 뚜렷한 경계가 보이며 외부의 것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그 것은 작가의 작업 방식 중 물의 농도를 이용한 겹침의 표현방식 때문이다. 물의 농도 정도는 색의 진하기를 조절하기도 하고, 번짐의 효과, 한 영역의 범주를 만들어 내며, 다양한 표현방식을 만든다. 작품에 들어간 많은 물의 양은 마치 점 점 묽어져 가는 작가의 흐릿한 기억을 잡아주는 듯하다.


우리는 김미라의 <mneme> 展을 통해 마냥 흘러 보낸 시간 중 그 사소한 기억을 잠시나마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해의 다이어리에 기록한 나만의 일기를 들여다 보는 느낌으로…




작가노트

 “폐하의 발걸음은 눈 밖에 있는 공간이 아니라, 안에 묻혀있고 지워져 있는 공간을 추적합니다. 만일 두 주랑 중 하나가 유난히 더 마음을 끈다면 그것은 삼십 년 전 수놓은 긴 소매옷을 입은 한 아가씨가 그 곳을 지나갔기 때문이거나, 어디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의 그 주랑 처럼 그 곳에 빛이 비추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탈로 칼비노 , <보이지 않는 도시들>-


나에게서 비롯되었지만 어느새 나에게서 낯설어져 버린 시간을 기억이라 부른다.

기억을 만든 것은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 그리고 아직 존재하는 공간.

그러나 그 공간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의미 보다는 그곳에서 연루한 기억에 의해 더 큰 의미와 서사를 지닌다.

하나의 기억은 단지 무의미한 기호로서 존재하지만 시간과 함께 중첩된 그것은 묵직한 울림으로 자리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호하고, 건조하고, 일부는 폐허로 보이는 망각 속에 있다.

반복된 중첩. 안에서 밖을 향해 열린 시선. 절대적인 선은 감정의 홍수를 막는 하나의 경계이기도 하다. 

비움과 가득 참. 비움은 저기에 있고 가득 채움은 여기서 치열하게 존재한다. 

마치 마크 로드코(Mark Rothko)의 사각형들처럼. 그것들은 역시나 무수히 중첩된 공간 속에서 감정적 색들로 개인적 신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미 시간과 함께 멀어져 원근법적 공간의 거리처럼 남아있는 기억과...그것들의 중첩에 대해......

그러나 이 원근법적 공간은 정확히 멀고 가까워지는 공간이 아닌, 원, 근이 뒤섞이고 겹쳐진 모호한 공간이다. 다가가려 하나, 잡으려 하나 잡을 수 없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거리감......안타까움의 공간, 즉 ‘기억’ 이다.

책이 하나하나의 페이지를 겹쳐 한 권으로 존재하고, 한 권 한 권이 겹쳐 하나의 책장으로 존재하고, 하나하나의 책장이 겹쳐 하나의 도서관으로 존재하는 보르헤스의 도서관처럼, 내 작품들, 평면 회화 속의 이미지들은, 흰 바탕 위에 가장 최초로 올려지는 하나의 색 면이나, 그 위에 다시 수십 번의 색 면이 겹쳐 올라가 만들어진 구상적 형태들이나 공간들 모두가 동일한 기억이고 기호이자, 나의 낯선, 그러나 낯설어서 아름다운, 기억의 이미지들의 미로 속을 향하는 출구이기도 하다.

특히 평면회화작업에서 보여지는 건축적 구조물의 공간이미지 속에서 “밖”을 향한 시선의 응시는 중심에서 외부를 향한 확장적 시선, 이곳에서 저곳으로 도달하기까지의 수없이 겹쳐있는 공간적 분할을 겹쳐진, 그러나 투명한 색 면과 선의 반복과 확장으로 표현한다. 

공간 속의 물이 번진듯한 이미지들 역시 횡적 공간의 겹쳐짐에 대비되는 종적 시간성의 수 없는 겹쳐짐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이다. 삼차원의 공간에서 “저곳”에 도달하기 위해 한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그 행위 자체가 시간과 공간의 겹쳐진 진행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공간의 화면 속에서 지나가고 축적된 시간성을 모호한 흔적으로, 시적 울림으로 남기는 것은 일순간 구상회화처럼 보여 질 수 있는 화면 속의, 그리고 작가의 내면의 극명한 ‘추상성’을 암시하는 하나의 ‘기호’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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