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전통적인 동양회화는 공필(工筆)과 사의(寫意)의 두 가지 조형체계로 구분된다. 이는 일반적으로 수묵과 채색의 구분의 또 다른 구분에 다름 아닌 것이다. 공필은 말 그대로 작은 붓으로 공들여 사물을 채색으로 표현해내는 것으로, 과거 전문적인 화공들에 의해 전용되던 조형방식이다. 공필은 북종화(北宗畵)에 드는 것으로, 남종화(南宗畵)를 존숭하는 이른바 <상남폄북론>(尙南貶北論)에 의한 수묵제일주의 위세에 일방적으로 밀려 전통시대에는 물론 오늘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특히 남종 일변도의 편향된 경향을 보였던 우리나라의 경우 문인에 의한 사기(士氣)는 숭상되었지만, 공필은 장인에 의한 장기(匠氣 )로 치부되어 폄훼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채색이 지니고 있는 표현성의 재발견과 재료와 표현에 대한 개방적인 사회풍토와 맞물려 새삼 재조명되고 있음은 올바른 미술발전을 위하여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작가 송문석의 작업은 전형적인 공필화법의 작품들이다. 섣부른 변용이나 방만한 실험성을 배제하고 오로지 공필화가 지니고 있는 본질과 그 독특한 심미의 표출에 주력하는 작가의 작업은 그만큼 정치한 것이다. 사실 공필화는 장식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며, 주관적인 개성의 발휘에 앞서 객관적인 표현을 강조한다. 형태에 대한 엄정한 표현과 정확한 묘사는 기본적인 조건으로 제시되는 덕목이며,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순서와 과정에 따른 반복적인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작가의 화면은 공필 특유의 조건과 요구에 십분 부합하고 있다 할 것이다. 색을 다스리고 형상을 아우르는 필치는 섬세하고, 색채는 금욕적인 절제미를 통해 특유의 함축적이고 정숙한 심미를 표출해 내고 있다. 작가의 화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지 기능적인 숙련됨이나, 노동과도 같은 반복적인 작업과정에 대한 경이로움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의 작업은 공필을 근간으로 하기에 분명 기능적인 발휘에 의한 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에 더하여 이른바 읽어내야 할 또 다른 가치를 발현해 내고 있다 할 것이다. 그것은 기능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점차 독특한 서정과 감성을 전달하는 문학성으로의 접근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적 서정성은 전통적인 동양회화가 지니고 있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라 할 것이다. 형식과 내용, 소재와 표현 등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에 담긴 특정한 사유와 서정이다. 그것은 일종의 시적(詩的)인 감수성이다. 이는 형상에 의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화면 전반을 타고 흐르는 운율감을 통해 발현되기도 한다. 반복적이고 점진적인 작업을 통해 비로소 구축되기 마련인 공필 특유의 과정과 심미는 바로 이러한 운율과 리듬을 형성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인 셈이다. 본래 공필 자체는 전적으로 기능적인 것에 의탁하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것은 결국 정신적인 것이며 비가시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이는 재주와 기능이 극에 이르면 결국 도(道)에 다다르게 된다는 포정해우(?丁解牛)의 고사를 빌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원칙적이고 전통적인 방식과 지향을 지니고 있기에 현대적인 재치나 파격적인 변용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다분히 전통적인 조형방식과 심미체계를 충실히 수용하는 고전적인 것이다. 공필 특유의 정치함과 장식성이 여실할 뿐 아니라, 그 전개 과정 역시 흐트러짐이 없다. 모든 것이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조형을 지향하는 세태에 비추어 본다면 이러한 조형은 고루하고 진부한 것으로 비춰 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오히려 섬세한 화면을 통해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감성을 표출해 내고 있다. 그 감성은 큰 소리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전달되는 여리고 섬세한 것이다. 그것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며, 읽혀지는 것이다. 이른바 문학적 서정이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보는 이에게 읽혀짐으로써 전달되는 감동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것이다.
작가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점은 작업의 정치함에 더하여 채도의 조절을 통해 자신만의 특장을 발견해 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공필 채색화의 장식성은 맑고 투명한 색채 감각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보편적인 경우이지만, 작가의 작업은 상대적으로 채도가 높아 진중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수묵을 작업의 근간으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조형에 있어서도 그 기능적 운용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라 여겨진다. 작가가 드러내고 있는 수묵을 기저로 한 깊이 있는 공필의 화면은 전통으로 여겨지고 있는 중국 공필화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을 통한 조형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공필의 전통과 원칙에 두고 있음이 여실하지만, 이의 해석과 수용에 있어서 또 다른 심미적 가치를 더함으로써 개별화하고자 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작가의 이러한 시도와 노력은 여전히 정치한 공필 특유의 화면에 잠재된 채 부분적으로 발현될 뿐 아니라, 그 조형적 성과에 있어서도 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보기에는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통에 근간을 둔 안정된 작업을 바탕으로 점차 차별화, 개별화를 지향하는 전개 방식은 충분히 긍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와 현대미술이라는 격랑 속에서의 전통미술, 그리고 이러한 객관적 상황 하에서의 한국화라는 복합적인 입장을 고려해 본다면 작가의 신중하지만 점진적이고 내밀한 접근 방식은 분명 일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간 우리의 지향이 서구일변도의 편향된 것이었다라는 지적과 함께 전통에 대한 재발견, 혹은 재해석의 필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는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작가의 작업은 우리들에게 일정한 메시지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작가의 성취, 혹은 좌절의 모든 것들은 우리들에게 분명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