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진
미술의 역사를 보면 비전공자들의 성공케이스가 적지 않지만, 아직도 이들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때문에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자들이 작가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현성 역시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후 은행업에 종사하다가 뒤늦게 미술계에 뛰어들어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개인적인 노력으로 탄탄한 기초를 익힌 그는 벌써 여덟 번째의 개인전을 이어오며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하고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것에 주눅들기보다는 전통의 틀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시도하며 자신만의 길을 당당하게 걷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예술적 감각과 순발력이 돋보이고 중년 여성의 작품 같지 않게 젊고 신선해 보인다.
데뷔 초기에 그는 다양한 매체로 미술의 기초를 다졌다. 테라코타로 사실적인 인체조각을 통해 흙에 생명감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는가 하면, 표현주의적인 거친 필치로 자유분방하고 감각적인 회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한 가지 양식을 밀고나가는 스타일이기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주저 없이 시도하는 스타일로 부단한 변화를 통해 자신만의 양식을 찾아가는 중이다.
최근 몇 년 전(2008년 경)부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변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닭을 주로 등장시키면서 상징성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닭의 이미지를 근간으로 하여 자연이나 동서고금의 문화물들에서 차용한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혼합시킨다. 이렇게 다양한 출처에서 차용한 이미지들은 즉흥적인 만남 속에 서로 결합되고 텍스트처럼 짜여져 초현실적인 공간을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혼성의 의도가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처럼 현실의식을 해체하고 무의식으로 나아가기 위함은 아니다. 또 데이비드 살레 같은 포스트모던 작가들처럼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같은 이분법적인 구분을 와해시키려는 의도도 아니다. <행복예감>이라는 제목에서 감지되듯이 그는 이러한 결합을 통해 기존의 의미를 해체하기보다는 시너지 효과를 유도하여 자신의 소망과 행복을 기원하고자 한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작품은 의미론적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민화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서민들의 꿈과 소망을 소박하게 담은 한국의 전통 민화는 현실의 제약과 고통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상태로 가고자 하는 인간의 소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오래 사는 동물들을 상징적으로 끌어들이거나 한자의 형태를 통해 글자가 지닌 의미를 기원하기도 한다. 이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과 이상적 삶에 대한 동경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민화는 직업 화가들의 그림과는 달리 전통적 양식에 짓눌리지 않고 순수하고 자유롭다. 이현성은 이러한 민화의 자유분방하고 소박한 의식을 계승하여 현대인의 꿈과 소망을 담고자 한다.
최근 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닭은 그가 생각하는 현대인의 우울과 소망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상징적 동물이다. 그는 “닭은 날개는 갖고 있으나 새처럼 자유롭게 날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날수 없는 닭을 통해 오늘날 현대인들의 심리적 억압과 우울한 정신을 투영한다. 과학의 발달로 첨단 도시사회가 이루어진 요즘,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매우 부유해지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불안해하고 불행해진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처럼 기호를 소비하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신분은 경제력과 명품에 의해 결정되고, 스스로 설정한 이런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우울해 한다. 실제
로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작은 부족분에 집착하고 남과 비교해서 불행해 한다. 이현성의 작품에 등장하는 루이뷔통 문양을 한 닭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변화된 꿈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소망하는 것이 과거처럼 부귀영화나 무병장수, 혹은 다산과 풍요 같은 것이 아니라, 명품 핸드백이나 명품아파트, 명품차 같이 명품을 원하는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정면의 응시하는 닭의 의인화된 눈은 그런 인간세상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듯하다.
한편으로 닭은 전통적으로 많은 희망적 상징성을 가진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닭은 어둠과 혼돈 속에서 광명의 빛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힘찬 울음소리로 하루를 여는 동물이어서 옛날사람들은 닭의 울음소리가 알람시계 역할을 대신했다. 또 새벽을 알리는 울음소리가 귀신을 쫓고 상서로움을 전해주는 영물로 인식하기도 했고,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 그림을 걸어주면 출세도 하고 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닭이 다섯 가지 덕을 지녔다 해서 길조로 여겼다. 관을 닮은 볏은 문(文)을, 내치기를 잘하는 발은 무(武)를, 적과 맹렬히 싸우는 기운은 용(勇)을, 먹이가 있으면 무리를 불러 먹이는 품성은 인(仁)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간을 알려주는 부지런함은 신(信)을 각각 상징한다. 우리 조상들은 오복을 불러오는데다가 인간에게 알과 고기까지 주는 닭을 유난히 아꼈다. 또 닭은 십이지 동물 중에 유일하게 날개가 달린 동물로서 천상과 지상을 오가며 하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심부름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가에게 있어 닭은 결국 소비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많은 것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불행해하는 현대인의 정신적 우울과 풍부한 상징성으로 행복을 기원하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 ‘현대인의 초상’인 셈이다. 최근 작품들에서는 현대인의 우울을 치료하고 행복을 기원하기 위한 백신 같은 이미지들이 등장하여 닭과 결합되고 있다. 그 중 백자항아리는 과거 한국인들의 여유롭고 푸근한 심성을 반영한 조형물로서 기계적이고 삭막해진 도시인들에게 텅 빈 충만감과 편안한 마음의 휴식을 줄 수 있는 백신이다. 또한 우리 민족의 오락거리로 오랫동안 함께해온 화투의 오광(五光)이미지나 사람들의 우상으로 가슴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비틀즈 같은 대중스타를 끌어들여 현대인의 꿈을 구현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닭의 내부 골격을 크로키에서 채집한 인체드로잉으로 구성하는 방식이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과 동물의 친화적 관계와 인간과 동물이 분리되기 이전의 생명의 상태를 동경하는 의도로 보인다.
이처럼 이현성의 작품은 외형적으로 팝아트적 요소가 다분하지만, 의미론적으로는 인간의 소박한 정서와 보는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민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 소비사회에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지만, 이를 비판하거나 냉소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관조하며 그 속에서도 행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엿보게 한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상징체계를 도입해서 소박한 인간의 원초적인 소망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은 개념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현대미술의 그로테스크함에서 벗어나 부적처럼 소박하게 삶의 행복을 부르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