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의
한국최초의 근대적 제실박물관이 개관한지 100년.
성장과 팽창을 거듭해왔다. 그럼에도 박물관 문화를 체득하고 이를 삶과 예술 속에 녹여 또 다른 미술 장르로 연결 통섭시키는 일이 아쉬웠다.
이번 전시 「박물관에 가면 그림이 그리고 싶다」는 그 같은 바람을 이루어주는
좋은 징표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전시작가 이석우는 박물관 유물을 보는 수준에 머무르기보다 그곳에서 역사와 미감을 느껴,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데까지 예술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100년 역사의 박물관이 개인에게 미친
또 다른 성과와 성숙함을 드러낸다.
작가는 박물관의 과거와 오늘에서 우리 미술의 정체성까지 찾아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전시작가의 이채로운 경력
전시작가 이석우는 역사학 전공 교수로 30여년을 봉직하였으나
중학시절에 심어진 미술에 대한 애정, 미술 지향성을 거부할 수 없었다.
작가는 이를 '습벽이며 성정이자 발산하지 않으면 안 될 푸다거리 같은 것'
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전시작가의 변> -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인식과정
그리고 싶어 그렸습니다
내게 가장 행복한 행위의 순간은 언제인가? 감히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릴 때, 책을 읽을 때, 그리고 홀로 조용히 앉아 있을 때라고 한다면 너무 사회회피적인 자위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삶의 짐은 무겁고 괴로우며, 때론 큰 좌절의 늪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생은 또 아름다움이며, 순간순간이 찬란하다. 마음만 바꾸어 주변에 눈을 돌리면 붉은 단풍, 하늘에 덩실 뜬 구름, 풀잎사이에 핀 꽃,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아이들 무엇 하나 놓칠 수 있는가.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인식과정이라고 가히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박물관에서 만난 감동
문화예술유산을 그 곳에서 만날 때마다 미의 감동에 풍성이 젖어들어 즐겁고, 그 감동의 물결을 주체치 못 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습벽처럼 스케치북을 꺼내들고 내 마음에 비추이는 줄기들을 낙서처럼 그리곤 했다. 세월과 함께 쌓인 그런 스케치북이 수십 권에 이르고 이것들은 내 삶의 지나온 흔적이자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잊혀졌던 것을 다시 어떤 흔적이나 기록에서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희열이자 기쁨인가.
가장 현대적인 것과 공존하는 전통
내 그림은 전통적인 것에서 미를 발견하고 또 감흥을 얻어 나름으로 재구성해 보려고 했다. 와당, 민화, 장식, 자수, 문양 등의 아름다움은 실로 지극해서 거기에 빠져들고, 그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일쑤였다. 민화의 자유정신과 꾸밈없는 솔직함, 거기에 고여 있는 흥건한 예술혼, 한 조각의 와당 속에 담긴 역동성과 단순함, 다양한 문화적 차이의 드러냄이 얼마나 우리를 흥분할 만큼 매료 시키는가. 자수의 조형성에서 가장 현대적인 회화의 원형을 발견하며 목가구나 장식, 금관들에서 세계적인 디자인 감각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감동의 강도가 높은 만큼이나 자신의 무력한 창의성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며 창조적 모형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였다. 나의 그림의 형상은 모두 이들 선인들에게 빚지고 있으며, 지난의 역사 속에서도 이를 일구며 살아 온 이들 장인, 화가, 예술인들에게 경외함을 드린다.
우리 것 찾기 - 서구의 눈으로가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서구를 보자
우리미술의 모든 원형은 전통적인 예술, 문화 안에 내재해 있음을 서툴게나마 이 일을 해오는 과정에 다시 확인하였다. 창작의 일에 종사해 온 이들은 한국성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추구하고, 그 원천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고민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감히 박물관에 가면 그 답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서구의 눈으로 우리 것을 보며, 그 눈으로 무언가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 했음을 부인키 어렵다. 이제 역으로 우리의 것으로 오히려 서양의 것을 볼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한국성이 찾아질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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