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개요]
태이의 개인전 <남해금산>이 오는 12월 18일부터 2011년 1월 5일까지 서울 원서동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다. 작가는 국내외에서 비선형적 내러티브와 언어의 개념적 확장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을 활발하게 펼쳐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성복의 시 《남해금산》의 정서적 경험을 바탕으로 비자연언어 (constructed language) 로서의 공간 경험 설치, 몸짓으로서의 언어인 수화를 담은 영상, 불특정한 다이어그램,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더듬거리며 증폭되는 사운드 설치 등을 선보인다.
개인적 경험과 구체적인 연구과제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인 확장을 통해 공간을 완성하는 <남해금산>은 시각언어, 건축 언어, 토포그래픽 언어, 다이어그램 언어, 문구, 소리언어(Visual language, Architectural Language, Typographic Language, Diagrammatic Language, Sign, Phonetic language)들을 통하여 쓰는 자와 읽는 자, 공간을 만드는 자와 공간을 경험하는 자의 ‘사이’를 보여준다.
작가는 ‘남해금산’의 정서적인 풍경과 동시대 작가들과의 대화를 중첩시키면서 자신을 삭제한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함으로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창조적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 세계는 외부에서는 차단되어 있고 막혀 있지만, 내부로 들어갈 수 있으며, 내부로 들어가서는 다시 관객 나름의 이야기를 경험 할 수 있다. 작가는 관객과 설치자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작가는 이산의 경험을 공유하며 도시와 세계의 논리에 대해 미술 안에서 자신만의 능동적 언어를 찾아가려는 동시대 작가들에 귀 기울인다. 여성미술작가들과의 심도 있는 대화를 바탕으로 자신의 역할을 번역하는 주체로 한정하며 텍스트를 탐구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한정된 객체로서의 작가성 (authorship)은 번역되지 않는 말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드러냄으로서 실패한다. 번역자의 과제는 원작의 메아리를 깨워 번역어 속에서 울려 퍼지게 하는 의도, 번역어를 향한 바로 그 의도를 찾아내는 데에 있다. (발터 벤야민, 번역자의 과제)
유목적 정체성 그 자체는 이제 주목할 만한 미술의 주제는 아니다. ‘집없음’과 ‘거소불특정’의 상황은 베트남 이주민에게서, 미국 유학생과, 일본 디아스포라 지식인에게서, 서울에서 부산으로 유학 간 학생에게서, 카자흐스탄으로 이민간 한국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장소와 문화에 대한 변화하는 심리와 생활의 변화이다. 도시인들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예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고 짐을 꾸려 여행을 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학습되고 인지되는 언어는, 우리가 말하거나 글쓰기 이전에 미리 구성되어 있었던 언어의 가시성만을 통해 표현하게 된다. 언어의 틀은 견고하게 정해진 그리드 (grid)이며, 이를 휘젓고 다니며 언어적 사유를 하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움직이고 있는 정체성에 부딪히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언어 내부의 본질로서의 그리드의 안과 바깥을 개념적인 방법을 통해 보여주고자 관객에게 그리드의 미로 여행을 제안한다.
작가 노트
내게 ‘남해금산’이라는 단어만큼 마음의 풍경을 감정적인 형용사를 쓰지 않고 적절히 표현해주는 단어가 또 있을까? 남해금산은 경상남도 남해의 명산이지만, 내 정신 속에 남해금산은 비 많이 오는 여름날의 끈적끈적한 이별이요, 달이 뜬 밤에 혼자 부르는 거친 노랫가락이요, 안개 가득한 새벽녘, 공기 중에 퍼져있는 희미한 불빛 같은 것이다. 남해금산은 물질적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산풍경이라기 보다는 정서적 경험을 상기시키는 중성적 언어이다. 그 발음은 또 어떠한가. ‘남해금산’이라 말할 때,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지고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이 마치 그 사이사이로 다른 말들이 숨어있을 것 같다.
시인 이성복도, 그 정신 속의 남해금산은 ‘남’자와 ‘금’자의 그 부드러운 ‘ㅁ’의 음소로 존재한다 하였다. 모든 어머니와 물과 무너짐과 무두질과 문과 먼 곳과 몸과 물질의 ‘ㅁ’에서 영원한 어울림을 상상한 그는, 남해금산을 실연과 상처의 언저리로 풀이하였다. 그의 시에서도 남해금산은 정녕 묘사되지 않는다. 그의 시들에 나오는 비밀스러운 누이의 이야기들이나, 생경하게 쩍하고 벌어진 수박의 속, 베니어판 집어 타고 날아가는 어머니는 남해금산과는 관계가 없지만, 대신 남해금산을 그들의 삶의 이면 안으로 초대한다. 나에게도, 남해금산은 시각적인 기억과 형태로 느껴진 것이 아니라, 집을 떠난 자의 무조건적 환대에 대한 그리움, 번역할 수 없는 말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 ‘나’와 ‘한 여자’에 대한 사유이다. ‘그’와 ‘나’는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움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며, 이러한 물리적 거리로 인해 우리는 근친의 관계를 중립적인 관계로 응시할 수 있게 된다.
해와 달의 환대를 받으며 떠난 ‘그 여자’는 남해금산에 남아 있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것은 ‘그 여자’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환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 여자의 생과 사는 그 여자의 흔적을 뒤쫓아가며 푸른 물속에 잠기는 화자에 의해서 되풀이 된다.
작업의 제목을 ‘남해금산’이라 짓고, 설명하기 어려운 남해금산의 개인적 정서를 풀어내기 위하여 몇몇의 동시대 여성미술작가들에게 대화를 제안했다. 나는 많은 도시를 여행하고, 그들의 집에 찾아가기도 하였고 그들의 작품이 소장된 곳에 찾아가 아카이브를 뒤져보기도 하였다. 총 120 시간의 대화내용을 텍스트로 옮기고 번역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의 삶에 대한 뜨거운 마음은 물리적 거리와는 상관없이 나에게 전해졌다. 도시와 세계의 논리에 맞서 미술 안에서 자신의 언어를 능동적으로 찾으려 하는 작가들과의 담화를 통하여 미술 내부에 있는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기호들, 외부에 있는 힘과 권력, 소비의 문제들에 대해 의논하고 삶의 일부를 함께함 으로서 위안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들을 통하여 개개인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다고 하여 공동체가 형성된다든지, 동반자가 되기 위한 의식이 행하여지지는 않았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일어나는 일시적 에너지에 비하여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비선형적인 삶이 여기저기 붙었다가 떨어지고, 연결되었다가 끊어질 뿐이었다. 이러한 모양들은 육체에 깊히 박힌 문신의 다이어그램처럼 가시적이지만 성질을 변화시키지는 않고, 영원성을 가지지만 순간으로서 경험한다. 끊어짐과 이어짐의 그 순간, 나와 관객은 이미 다이어그램에 개입하는 일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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