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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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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서문 :   


위장. 전복된 명제-오승환展



김최은영(미학, 자하미술관 책임큐레이터)


모든 일은 서두르지 않고 진행되었다. 사물과 공간 사이, 비좁은 찰나의 간격에서 보이지 않던 시간이 드러났다. 흐릿한 표면질감을 통해 암시되고 있는 사실은 이미 중요한 목적이 아니다. 이 모두는 우발적 탄생이 아닌 명확한 오승환의 의도임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면 위에 드러난 불안정한 선들은 암시된 이들의 정체를 일시적이나마 감추어 주는 안정장치의 역할처럼 보인다. 까발리기엔 너무도 사변적이거나 혹은 너무나 가벼운 일상일 수 있기에 작가는 예술에 존립하기 적당한 양의 상상 여지만을 남겨놓는다. 오승환의 카메라에 잡힌 대상은 질량과 공간을 잃고 대신 그 잃어버린 공간에 시간을 채웠다. 그러나 실존은 반환되지 않았고 다만 다른 형태로 변이되었다. 


작가는 비닐에 노동으로 표면질감을 만든 후 불특정 다수의 소재를 화면에 담아 본래의 모습을 바꿔버렸다. 위장이라 불리는 이러한 행위는 역사상 생물의 시각 출현에 기원을 담고 있으며 이는 생물의 실존 문제를 철학과 고생물학적 특성과 연계하여 드러내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풍부한 영감과 알맞은 방법론으로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위장은 진화 속 시각의 출현으로부터 출발하며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관계를 포식자와 먹이의 관계 혹은 번식의 이유 등의 관점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러한 사고의 과정 중 진화는 진보가 아닌 생물과 생물간 또는 환경과의 적응 축적을 통한 다양성의 증가라는 결론에 다다르며 더 복잡해진 인간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누설한다. 그 누설은 약간의 위트와 함께 사진이라는 시각예술로 다루어졌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건져 올리는 비범한 눈의 힘이다. 그리고 대상을 포착한 작가 특유의 접근 방식과 사진에 대한 미학적 사유의 소산이다. 순간적 감흥으로 선택된 것은 대상만이 아니다. 대상의 위장과 진화 역시 직감으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선택된 대상은 풍부한 상징과 알레고리, 위트와 미감, 아이러니 등을 동원하여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관람자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게다가 대상의 미묘한 각도와 간발의 조명 차이, 정서적 느낌의 포즈와 아다지오적 속도는 그의 사진을 충분히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좋은 장치들이며, 그가 설정한 위장과 진화론에 적합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숨기지 않고 의식적으로 표현한 미묘한 낌새들은 그의 사진 속 대상을 파악하려는 노력보다 그 자체를 바라보게끔 하는 요소가 되어 주니 오승환의 사진은 다각도로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관심을 두지 않던 보잘 것 없는 미물, 시간을 가리키지 못한 채 가라앉는 시계, 과시를 잃어버린 나비, 주목받지 못한 일상의 고무신 따위는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의식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다. 그곳에서 그가 펼치는 새로운 논리는 일반적 사진에서 연상되는 고정관념들을 보기 좋게 배반하고, 좀처럼 사진의 소재가 될 것 같지 않은, 의심스러운 심상들을 끌어 모아 익숙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오승환을 통해 전복된 논리는 위장이라는 속임수의 단순한 변신 방법이 아닌 진화 혹은 적응을 위한 삶의 태도를 말하는 또 다른 명제를 탄생시켰다.


다시 말해, 오승환에게 있어서 일상의 대상을 선택한 후 화면의 상흔으로 그 형태를 해체 하는 것은 곧 위장이고, 그 위장으로 인해 대상의 상징성이 보편화되는 것은 곧 진화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찍은 대상이 무엇이었는가는 중요치 않고 또한 화면에 담긴 후 위장과 진화를 겪은 피사체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러한 개념은 그의 사진이 예술작품이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데 사진적 미감 이외의 한층 더 높은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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