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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욱전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11-02-16 ~ 2011-02-22

  • 전시 장소

    갤러리라메르

  • 문의처

    02-730-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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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은 늘 멀리에 있지 않았다


2011 갤러리 라메르 신진작가 창작지원 전시 작가로 선정된 이호욱 작가의 개인전이 2월 16일부터 22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린다. 갤러리 라메르 신진작가 창작지원 전시 프로그램은 매년 다채롭고 독창적인 시각의 창작욕을 가진 신진작가를 선정하여 새롭고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지원 프로그램이다.

작가는 기념사진이라는 소재를 통해 시간 속에 녹아있던 아름다운 기억과 추억들을 작품에 등장시켜 그 귀중한 장면들을 시대적 배경과 결부시켜 새로운 이미지로 재 기록하고자 했다. 전통적 미의식에 입각하여 사회적 의식이 돋보이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일상의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그의 작품은 문화적, 역사적, 환경적 요소에 대한 고찰의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 작가노트 


작품의 내용을 보면 기념사진이 주로 등장한다. 개인이 아닌 군집 형태의 기념사진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과거의 사진은 물론이요, 오늘날 각종 단체들이 답사 혹은 여행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들도 있다. 작품에 등장한 장면의 예를 들면 경주의 불국사, 첨성대, 예산 수덕사,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명동성당과도 같은 한국의 주요 건축물을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들을 볼 수 있으며 스무 명에서 삼십 여 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층을 만들어 키가 작은 이는 앞쪽에 모여서 앉아있고, 키가 중간인 이들은 중간층, 그리고 키가 큰 이들은 맨 뒤쪽에 발 뒤꿈치를 올리고 서서 단체 사진의 정경을 만들고 있다. 어린 시절 여행지에서의 추억은 우리에게 늘 행복한 여유와 웃음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 기념사진,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가족적인 형태의 장면들이 그 정경 안에 등장하는 것이다. 누구나 몇 권씩은 가지고 있을 사진 앨범들, 집의 장롱 속이나 책장 구석에서 곱게 잠자고 있을 그 낡은 앨범 속에는 교복을 일정하게 맞춰 입고 친구들과 함께 소담한 마음으로 여행의 흔적을 기록하고자 촬영한 사진들이 숨어 있다. 지금은 예순이 다 되신 나의 아버지, 어머니의 사진과 함께 이제 서른을 갓 넘긴 내 사진들이 더불어 공존하고 있으며 70년대의 빛 바랜 흑백 풍경과 90년대의 천연색 풍경 사이에서 이질적인 모습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기념사진의 장면을 통해 나이와 세대를 아우르는 일종의 '끈'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념사진의 장면들을 사회적인 시선으로 확장해 들여다보면 이는 우리나라의 시대적 장면과 결부시킬 수 있다. 한국의 다양한 변화상을 피부로 느끼며 지낸 사람들, 1950년대 이후 전란의 극복과 함께 1960~70년대의 개발 운동, 그리고 1980~9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 2000년부터 지금에 이르는 현대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시대상황 속에서 우리들은 무수히 많은 기념사진들을 찍었는데, 그 상황 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군상들의 변화상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 사진의 목적을 불문하고 과거 개화기에서 전란 이후에 이르는 시기의 오래된 기념사진에서는 구성원들의 위계적이고 체계적인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가령 중앙에 가장 연장자가 자리하고 그 주변으로 나이와 성별 순으로 서열을 나눠 자리 잡는 모습들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장면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7,80년대 기념사진의 구성원에게서는 전 시대의 그것에 비해선 좀 덜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대신 단결을 강조하는 조직적인 성격이 좀 더 두드러진 모습이다. 구성의 전체적인 모양이 정리되고 단정한 느낌의 장면들이 많으며 구성원들도 상당히 경직된 표정과 자세로 카메라 앵글을 바라보는 장면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기념사진의 군상에서 시대적인 특징을 가장 독특하게 내보이고 있는 사진들이 바로 이 시대의 사진들이다. 오늘날의 단체사진에서는 구성원들의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그래서 다수 어수선해 보이는 장면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사진 자세의 앞 뒤 층이 명확하지 않고 중간에서 양 측면으로 갈수록 무너지는 경향이 짙다. 아예 촬영의 기본적인 자세를 생각하지도 않는 이들도 많다. 이를 다시 정리하자면, 세월이 지나면서 카메라 앞에 일정한 포즈를 취하는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자세들은 변함이 없지만 그 안의 서로 간 간격과 조율을 정하는 단계에서는 시대적 변화의 흔적들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상당히 많은 기념사진들을 접하고 또 응용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본인은 개화기의 흑백 사진에서부터 오늘날 디지털 카메라에 습관처럼 기록되는 가벼운 사진들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장면들을 노트북의 폴더에 정리하며, 그리고 다시 그림의 장면으로 기록하면서 사진에 투영된 수많은 시간들이 손의 촉감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주의 불국사 앞에서, 혹은 부여 어느 왕의 오래된 무덤 앞에서 무수히 찍었을 수학여행의 기념사진들. 1967년 4월 학창시절의 어느 화창한 날에 친구들과의 추억을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기록한 아버지, 어머니의 기억과 1996년 4월의 동일한 시기에 친구들과의 수학여행을 한 장의 칼라사진으로 기록한 나의 기억은 근본적으로 같을 것이다. 시간 속에 녹아있던 아름다운 기억과 추억들이 기념사진의 장면 안에서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 귀중한 장면들을 본인은 장지와 가죽을 응용한 작품의 이미지로 재 기록하고 싶었다. 장지 기법으로 색을 올린 종이 위에 단체 기념사진의 장면들을 수묵으로 표현하였고, 테두리를 손질한 가죽을 씌워 완성한 작품의 모습은 '사진앨범'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대부분의 오래된 사진앨범들은 가죽 커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족히 몇 십 년은 되었을 낡은 앨범의 가죽 커버를 보면서 작품의 이미지를 떠올렸고 이는 오래된 가죽 의류의 수집과 분해, 그리고 사포를 이용한 수작업을 거치면서 오래된 연식이 느껴지는 재료로 재 탄생되어 작품에 쓰이게 되었다. 짙은 색의 가죽은 연령층이 높은 사진의 재료로, 그리고 가벼운 색의 가죽 재료는 나이가 적은 구성원의 기념사진에 쓰였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리고 기념사진의 이미지를 작품으로 차용하면서 그 안에 등장하는 공동의 추억이란 단어에 대해 어떻게 정의해야 될지 한동안 고민했다. 학원 자율화와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 S.E.S를 듣고 맥도날드의 햄버거와 도미노의 피자를 간식으로 누렸으며 유행처럼 퍼진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에 빠졌던 나의 세대와, 거리에 항상 자욱하던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직장과 학교를 오갔고 학림 다방에서 계란노른자가 동동 뜬 쌍화차를 기울이며 폴 앵카와 카펜터즈의 끈끈한 팝송을 들었던 기성 세대와의 공통된 추억을 논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모순에 빠진 수학의 공통분모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추억이라는 것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어른과 아이 모두가 좋아하듯이 서로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진한 매개체가 되어야 하는데 시간을 초월한 추억거리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 무엇을 추억이라 불러야 하고 어디까지를 시간에 상관없는 공유물로 보아야 하는 지를 파악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더군다나 세대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요즘,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나약한 정신세계를 꾸짖고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안이한 사고방식을 비웃는 이러한 세상에서 추억의 장면을 새삼 떠올리는 게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어느 세대는 불행했고 어느 세대는 행복했으며 또 어느 세대는 어리석었고 어느 세대는 영리했던 간에 우리들은 항상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의 돌잔치에 모인 사람들은 물론이고 막 학교에 들어간 초등학생의 입학식, 올림픽 공원으로 소풍 나간 중학생들, 수학여행, 과 MT에 모인 대학생들과 제대를 앞둔 말년병장, 갓 취직한 신입사원들의 회식, 결혼식을 올리는 청년들, 명예 퇴직 후 새로 가게를 개업한 중년 사장님과 사모님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의 회갑연을 비롯한 가족 잔치, 효도관광 등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들 주변에는 항상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는 행사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행사 안에서 세대들은 좋든 싫든 함께 어울릴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어우러져 촬영하는 카메라의 앵글을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한다. 그렇게 기념사진은 과거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만들어지고 일상에서 늘 감지되며, 그것을 보면서 노인은 젊은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젊은이들은 노인의 건강을 염려한다. 그리고 기성 세대들은 여태껏 그래왔듯 그것을 작고 네모난 사진으로 뽑아 두꺼운 가죽 앨범 안에 차곡차곡 진열하고 오늘날의 세대들은 기십 GB에 이르는 노트북과 아이패드의 하드디스크에 사진을 저장한다. 이것이 바로 세대를 초월해 추억을 나누고 공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서로간의 갈등과 반목은 저절로 사라지고 희망과 행복이 잦아들게 되는 것이다.

소중한 것은 늘 멀리에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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