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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질의 공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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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질의 공명 Now & Here
2011.2.9 ▶ 2011.3.1
초대일시 | 2011.2.9 pm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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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원 | 작업 노트


“인생은 순리에 순응하는 것 같다. 우리는 무엇이 되려하고, 또 원하여도 삶은 인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묵묵히 순리대로... 순리란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인생철학을 얻은 후에 그림은 저절로 그려지더라. 그것을 알게 된 후에는 일획으로 캔버스 위에 표현하며 두 번은 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자연과우주 그리고 물리학에 오랜 관심을 두고 있다. 우리에게 보이는 모든 것은 절대적인 것이 없다.

우주는 아직 실현 되지 않은 잠재성의 총체이고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세계는 일부분일 뿐이다. 사물은 하나이자 전부이다. 우주에는 아직 실현 되지 않은 세계들이 얼마든지 존재하며 우주는 영원히 성장과 수축을 반복 한다. 성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세계, 우주를 형성하는 근본은 빛이며 wave이며 에너지이다. 우주의 본질, 소통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과정의 예술로서 wave를 캔버스에 담는다.”



붓질의 공명

박정수 | 미술투자감상 추상미술편에서



박다원이 한 순간에 긋는 즉발적인 선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화가가 긋는 선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표정을 지닌다. 그것을 근거로 품격과 질적 가치, 혹은 예술성을 따지는 것은 비평가와 같은 전문적인 해석자의 몫이다. 미적 가치의 판단 역시 그러하다. 그렇다고 할 때 박다원의 작품에 대한 판단은 과연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우선 박다원의 작품에서 엿보이는, 의식을 푼 상태에서 나타나는 선의 해방적 측면에 주목하고 싶다. 이는 박다원이 이제까지 자신의 그림을 지배해 온 유희적 특질에서 벗어나 청정한 마음의 상태, 곧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공(空)’의 상태를 지향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마음을 비우는 가운데 나타나는 적멸(寂滅)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적멸이란 무엇인가 한 설명에 의하면, “적멸은 고요히 없는 것이니, 불성 가운데 한 상도 없는 것이다. 상이 없어서 하는 일이 없어 죽고 사는 큰 시름이 다 없으므로 즐겁다고 한 것이다. 적멸은 살지도 않으며, 죽지도 아니하는 것이니, 중생은 번뇌를 없애지 못하였으므로 일이 있어 좋은 일을 한 인연으로 후생에 좋은 몸으로 태어나고, 악한 일을 한 인연으로 후생에 궂은 몸으로 태어나서 살다죽다 하여 한없이 괴로움을 받는데, 부처는 죽고 삶이 없으시므로 적멸이 즐겁다고 한 것이다.”

박다원의 작품은 이처럼 차별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지향한다. 그러한 무차별의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전에 선수행을 하듯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상에 잠긴다. 그의 선들은 세상에 대한 번잡한 판단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그린 선들은 단색의 투명한 바탕위에서 독자적으로 존립한다.



박다원은 “선과 선 사이에 인간의 시간과 역사, 삶이 표현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있는 인간의 시간과 역사가 인간적 삶의 어떤 보편적 계기를 의미한다고 하면 그가 긋는 선은 그것에 대한 농축된 유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역사는 개별적인 것임에 반해서 시나 회화와 같은 예술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명제인 지금 그리고 여기(now & here)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여기 (here)와 숨을 쉬고 있는 지금(now) 이란 두 계기의 겹침을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박다원은 실존적이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작업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박다원의 그림은 붓질이 드러내는 공명에 대한 진술이다. 붓질이 어떻게 공명하는가. 청각적 효과를 나타내는 이 단어를 과연 조형에 대입할 수 있을까 나는 붓이 평면 위를 지나 드디어 평면과 결별을 할 때, 비록 붓은 자취를 남기지 않으나 그 여운이 여전히 평면 위에 남아 있음을 본다. 그것은 마치 동종의 여운이 사라진 것 같으나 어딘가에 남아 떠도는 것과 같다. ‘지금 그리고 여기 -hic et nunc-’에서 벌어진 조용한 한 ‘사건 (event)’이 물결의 파장처럼 조용한 울림을 불러일으킨다. 캔버스에 찍은 점 하나, 그은 선 하나가 하나의 조용한 파장을 일으킨다. 박다원의 그림은 이처럼 적요한 캔버스 공간에 점과 선이 가해질 때 나타나는 붓질의 공명에 대한 진술인 것이다.

윤진섭 | 미술평론가 호남대 교수 (붓질의 공명 중에서)





“우주의 기운은 결(wave)에 실려 그림에 담겨진다.”
여기서 말하는 Wave는 우리말로 숨‘결’이나 바람‘결’ 또는 물‘결’이라고 할 때의 ‘결’을 의미한다. 사색과 사유를 통해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단숨에 그려낸 듯 정돈된 붓질, 생기 가득한 에너지가 있다. 마음이 가는 대로 가는 철학적 언어와 결합된 것이다. 붓질을 통해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기운과 절제된 감흥을 표현한다. 있음과 없음, 음과 양이 한 공간에서 소통 가능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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